‘전설의 섬’에서 ‘해양과학기지’로

‘전설의 섬’에서 ‘해양과학기지’로

이어도의 이유있는 변신

주제 우주/항공/천문/해양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07-20
원본보기
‘전설의 섬’에서 ‘해양과학기지’로 본문 이미지 1

수면 아래 전설처럼 잠수해 있는 이어도.
제주 사람들, 특히 제주 여인에게 이어도는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나 남편이 깃든 곳, 자신들도 결국 그들을 따라 떠나게 될 곳으로 굳게 믿는 환상의 섬이요, 피안의 섬이다.

이처럼 이어도는 남편을 영영 바다로 보낸 제주 해녀의 애환을 담은 노동요 ‘이어도’ 가락에서나 들을 수 있는 상상의 섬이었다. 고려 때부터 중국과 탐라(제주) 사이 바다 어디엔가 있다는 소문만 있을 뿐 아무도 가보지 못한 섬이었다. 그런데 1900년 영국 상선이 암초에 부딪치면서 그 위치가 확인되었고 그 배의 이름을 따 ‘소코트라 암초’로 명명됐다.

한국의 최남단 도서인 마라도에서 남서쪽 149km, 일본의 토리시마에서 서쪽으로 2백76km, 중국의 퉁타오로부터 북동쪽으로 2백45km 떨어져 있는 이어도는 섬이 아니다. 평균 수심 50m, 남북과 동서 길이가 1천8백m, 1천4백m인 수중암초다. 암초의 정상도 해수면 4.6m 아래에 잠겨 있어 파도가 심할 때에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한과 전설의 섬 이어도가 첨단시설을 갖춘 4백평 짜리 인공섬으로 탈바꿈하여 첨단 종합해양과학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해상호텔이라고나 할까? 기지를 떠받치는 웅장한 철구조물은 40m가 바다에 잠겨 있고 36m는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전체 무게는 3400t. 최소한 50년 동안 25m의 파고와 초속 60m의 태풍에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지어졌다. 암초 위에 25층 높이의 건물을 세워 놓은 셈이다.

이러한 해양기지는 어떻게 활용될까?

우선 기상예보 면에서 정확성이 높아진다.

이어도가 우리나라로 오는 태풍 및 폭풍의 길목에 위치해 있어 기상학적으로 이들의 연구 및 예보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태풍 중 약 40%가 이 해역(이어도에서 약 2백km 이내)을 통과했는데, 특히 우리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라, 베라, 셀마, 브렌다 등의 태풍이 이 해역을 경유했다. 또 동중국해에서 갑자기 발달한 폭풍도 자주 이어도 부근을 통과한다. 이 해역을 통과한 태풍은 약 10시간 후에 남해안에 상륙했다. 따라서 해양기지를 통한 정확한 예보는 그만큼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고 정확한 태풍의 진로 예측도 가능하기 때문에 강한 태풍의 피해 또한 막을 수 있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최고 자랑거리는 파랑, 해류, 풍향, 풍속, 기온, 기압, 강우량, 수질, 염도 등을 측정하는 44종 1백8개의 최첨단 관측장비다. 컴퓨터실에 들어가 현재 가시거리를 보면 ‘1만1천7백40m’라는 수치가 정확히 측정돼 나온다. 기지 내의 모든 장비는 무궁화위성 2호를 통해 안산의 한국해양연구원 본부에서 원격 조정한다. 관측기록과 영상은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연구소와 기상청으로 전송돼 기상예보와 해양과학연구에 활용된다.

인공위성 원격탐사로 얻은 수온, 해류, 파랑, 바람 같은 해양관측자료가 실제 바다에서 측정한 데이터와 일치하는지 검증하는 것도 과학기지의 중요한 임무다. 바다에 기지가 들어섬으로써 위성자료가 더욱 정확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기지는 매년 이 근처를 지나는 25만 척의 선박과 어선에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고 비상시 피난처 역할도 한다.

또한, 암초 주변은 돌돔, 조피볼락, 붉바리 같은 고급어종이 많은 황금어장이다. 이곳에 서식하는 해면, 말미잘, 히드라, 군체멍게 등 무척추동물들은 대개 햇빛을 좋아하지 않는 ‘피복성 동물 군집’이다. 특히 대형 아열대성 회유 어종인 재방어가 목격되기도 했다. 생물분포로 보아 이어도 주변 해역은 조류가 빠르고 탁도가 높은 날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양기지가 제 역할을 하게 되면, 이러한 해양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어장 예보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한편, 한국해양연구원은 평상시 이 기지를 무인 운전하고 필요할 때만 헬기를 타고 가 시설을 점검한다. 이곳에는 8명이 2주일 동안 외부의 지원 없이 숙식할 수 있다. 비상시에 대비해 발전기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기는 풍력 발전기와 태양광 전지로 충당된다. 빗물 정화시설과 하수처리시설까지 있다.

도난 방지시설도 철저하다. 폐쇄회로 TV와 적외선 센서가 침입자를 감지하면 4개국 언어로 경고방송을 하고 계단을 자동으로 들어올려 못 올라오게 한다.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춘 이어도 해양기지는 기상예보와 해양과학연구의 전초기지다. 올 여름에는 전국의 시청자들이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폐쇄회로 카메라를 통해 북상하는 태풍의 위력을 실감나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연관목차

730/1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