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저호 <외계에 보내는 메시지>는 누가 만들었나?, 칼 세이건

보이저호 <외계에 보내는 메시지>는 누가 만들었나?, 칼 세이건

주제 우주/항공/천문/해양
칼럼 분류 인물기사
칼럼 작성일 200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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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에는 수많은 분야가 있지만 그 연구방법은 대부분 ‘관측’이라는 한정된 수단에만 의존하고 있다. 수십, 수백광년에서 멀게는 수십억광년씩 떨어져 있는 외계 천체들은 오로지 광학망원경이나 전파망원경으로만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계만큼은 얘기가 달라진다. 시간이 꽤 걸리기는 하지만 탐사선을 직접 연구대상으로 보내서 근접 거리에서 아주 자세히 관찰할 수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표면에 착륙시켜 샘플을 채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난 1996년에 타계한 칼 세이건은 태양계 안의 행성들과 그 위성들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왔던 태양계천문학의 일인자였다.

예를 들어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금성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이 그저 지구보다 따뜻한 일종의 열대 낙원 같은 곳으로 막연하게 간주되고 있었으나, 세이건은 금성 표면이 섭씨 수 백 도가 넘는 극도로 건조하고 뜨거운 곳이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금성 표면의 전자파 방사 양상에 따르면 표면 온도가 섭씨 500도에 달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1962년에 금성 탐사선 마리너 2호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다. 또한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이나 목성의 달 유로파 등에 바다가 있을 거라는 가설도 그가 처음 내세웠는데, 오늘날 그의 이론은 사실상 정설로 굳어진 상태이다.

세이건이 지닌 태양계 천체들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은 곧 미국의 우주개발 프로그램에서 중추적인 자문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제까지 발사된 거의 대부분의 태양계 무인 탐사선 계획에서 실험장치의 설계와 배치 등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유인 달착륙선인 아폴로 우주선 비행사들조차 출발 전에 그의 브리핑을 들을 정도였다.

특기할만한 내용은 파이오니아 10호(1972)와 11호(1973), 그리고 보이저 우주선(1977)에 탑재된 ‘외계에 보내는 메시지’가 그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우주선들에는 각각 태양계의 구조와 인간 남녀의 모습, 그리고 우리말을 포함해서 세계 각국 언어로 녹음된 인사말 등이 담겨있다. 태양계 탐사를 마치고 머나먼 바깥 우주로 나간 탐사선들이 먼 훗날 지적인 외계 문명과 조우할 것에 대비하여 우리 지구 인류에 대한 정보와 인사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파이오니아의 메시지는 손을 들고 인사하는 사람 모양 등 간단한 그림 형태이며, 보이저에 실린 음성메시지는 LP레코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재생되는 금제 디스크에 실려 있다. 이 디스크에는 문명이 어느 정도 발달한 외계인이라면 충분히 해석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간단한 조작 방법의 설명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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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은 또한 ‘스타 과학자’ 칭호를 들을 만큼 대중과학계에서 발군의 명성을 얻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이미 <에덴의 용>(1978)으로 과학 논픽션 분야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유명한 과학저술가였지만, 1980년대 초에 선보인 과학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시리즈를 기획하고 직접 출연하여 진행까지 맡으면서 전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 내용을 정리한 책 <코스모스>(1980)는 과학자를 꿈꾸는 모든 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아, 발행한 지 2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남아 있다.

세이건은 특히 외계 생명체, 더 나아가서는 지적인 외계문명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가 1973년에 낸 책 <우주와의 연대>를 보면 나중에 <코스모스>에서 언급된 은하문명 등의 개념이 이미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관심은 근거가 빈약한 ‘UFO와 외계인’ 부류의 이론들과는 확연히 선을 그은 것이었다. <코스모스> 등에서 SF에 대해 따로 소개할 만큼 자유분방한 과학적 상상력을 중시했지만, 그것과 대중을 현혹시키는 사이비과학과는 엄격하게 구별했다. 미확인비행물체(UFO)도 그 존재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것의 정체가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이라는 이론에는 회의적이었다.

그는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1996)에서 ‘외계인이 정말로 우리를 방문했는지에 대해서 나보다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그러나 철저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사해본 결과 모두가 조작이나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외계인의 존재를 입증하는 공인된 물리적 증거가 이제까지 단 하나도 없다는 점, 사회심리학적으로 UFO나 외계인 목격, 피납 증언은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대중심리 현상이라는 점을 들어 이 같은 이론을 반박했다.

태양계 천체 전문가에서 스타 대중과학자로 변신했던 그가 말년에 새롭게 매진한 분야는 바로 대중들을 일깨우는 일이었다. 1996년에 작고하기 직전까지 그는 ‘비판적 사고’를 주제로 삼은 특별 강좌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수강신청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세이건은 각자의 지원에세이를 꼼꼼하게 읽어본 뒤 20여명만 선발하여 가르쳤다고 한다.

그가 과학대중화를 위해 이런저런 활동을 시도할 때 동료들은 그의 이런 태도를 마땅찮게 생각했었다. 대중들이 과학의 전문적인 내용을 이해하기란 어차피 힘든 일이므로 그냥 과학자들만의 ‘성역’으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이건은 그런 생각에 반대해서 꾸준히 대중을 위한 글쓰기에 힘썼다.

이제 생애 마지막까지 그가 애썼던,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확산이 이루어진다면 우주 어딘가에서 그가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만 같다.

  • 박상준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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