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호주에 나무를 수출한 적 있다? 없다?, 현신규 박사

우리나라가 호주에 나무를 수출한 적 있다? 없다?, 현신규 박사

주제 농림/수산(축산/임업)
칼럼 분류 인물기사
칼럼 작성일 200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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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나무하고만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나무는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내가 나무 속에 있는지 나무가 내 속에 있는지조차 모를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또 그러다 보니 사람의 마음속은 헤아릴 줄 몰라도 나무의 생리나 애환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눈이 트였고, 나무와의 대화 속에서 나무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됐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임학자(林學者) 고 현신규 박사(1911~1986)가 남긴 말이다. 일제의 수탈과 6 · 25전쟁을 거치며 금수강산이라 불리던 우리 국토는 헐벗게 됐다. 하지만 오늘날은 숲이 너무 울창해 해마다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를 솎아내야 할 형편이다. 이처럼 우리 국토를 울창하게 만든 일등공신은 바로 현신규 박사다. 아직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현신규 박사의 공로를 돌아보자.

1963년 미국 상원의 알렉산더 와일리 의원은 한국에 ‘기적의 소나무’가 만들어졌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바로 현신규 박사가 리기다소나무(Pinus rigida)를 엄마로, 테다소나무(Pinus taeda)를 아빠로 삼아 좋은 점만 타고난 리기테다소나무(Pinus rigitaeda)다.

미국 동북부 지역에 자라는 리기다소나무는 재래종 소나무(육송, Pinus densiflora)에 비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추위와 병충해에도 강해서 일제시대 헐벗은 산에 많이 심어졌다. 하지만 리기다소나무는 곧게 자라지 않고 재질도 연약해 목재로서의 가치는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반면 테다소나무는 주로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며 생장이 빠르고 재질도 좋지만 척박한 토양과 추위에 약한 수종이다. 현신규 박사는 두 나무의 장점만 모아 추위와 병충해에 강하면서 생장이 빠르고 재질이 좋은 나무를 만든 셈이다.

사실 리기테다소나무는 1930년대 미국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현신규 박사는 미국 여러 곳에서 테다소나무의 꽃가루를 채집해 추위에도 강한 품종을 만들었기 때문에 기존의 리기테다소나무가 내한성을 갖도록 재발견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유럽의 잡종낙엽송과 에테뉴 라디아타소나무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성공한 ‘교잡종’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우수한 형질에도 불구하고 현재 리기테다소나무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현신규 박사의 소나무 연구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보다는 과학자 개인의 관심과 노력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정부가 산림정책을 주도한 제1차 치산녹화사업(1973~1978)은 경제적으로 유용한 나무보다 빠른 시일 내에 산림을 푸르게 만들 수 있는 속성수 위주로 진행됐다.

또 리기테다소나무의 종자를 얻으려면 리기다소나무의 암꽃에 비닐봉지를 싸서 그 안에 테다소나무의 꽃가루를 주사하는 수작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테다소나무가 남부지역 이상에서는 자라지 않고 개화시기가 4월 21부터 5월 2일까지로 리기다소나무의 개화시기인 5월 1일부터 8일과 겹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숲의 조성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계획해야 함에도 단기적인 녹화사업에 치중한 결과 오늘날 전국의 숲에는 쓸모없는 나무가 많은 셈이다. 최근 북한에서는 현신규 박사의 리기테다소나무를 더욱 개량한 리기리기테다소나무의 종자를 우리나라 정부에 요청해 왔다. 그만큼 헐벗은 자연에 살아가는 것은 인간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 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신규 박사는 “포플러나무속은 평지에서 자라고 수분을 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경사진 산지에는 심을 수 없다”는 기존 통념을 깬 ‘은수원사시나무’(Populus alba×glandulosa)를 개발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은 현신규 박사의 노고를 기려 이 은수원사시나무에 ‘현사시나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현사시나무는 현신규 박사가 15년이 걸려 만든 ‘걸작’이다. 씨앗을 심으면 그해에 자라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만드는 풀과 달리 나무는 10년은 지나야 자손을 만들어 오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헐벗은 산을 푸르게 만들고 싶어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은백양과 수원사시나무를 교잡해 만든 현사시나무는 빨리 자라고, 건조에 강하며, 꺾꽂이가 잘 돼 대규모 번식이 용이하다.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어 목재로 쓰기에 좋다. 게다가 녹병균에 의해 생기는 낙엽병에 저항성을 갖고 있어 헐벗은 땅을 녹지로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1980년대 호주는 포플러나무의 낙엽병으로 골치를 썩고 있었다. 현사시나무가 낙엽병에 저항성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호주 정부는 숲을 현사시나무로 대규모 교체할 계획을 세웠다. 호주 정부가 현사시나무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길 원했기 때문에 현신규 박사는 ‘Yogi’란 이름을 지어줬다. ‘Yogi’는 현사시나무의 아빠나무인 수원사시나무가 처음 발견된 경기도 수원시 서둔동의 여기산(麗妓山)에서 따온 것이다.

현신규 박사는 2003년 2월 20일 과학기술 명예의 전당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기술자인 장영실과 허준, 우장춘 등과 함께 헌정됐다. 현신규 박사는 황폐해진 국토를 위해 재질이 좋고 빨리 자라는 나무를 개발해 보급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임목육종연구소가 문을 열고 현신규 박사가 작사한 ‘육종의 노래’ 1절의 후렴부분에는 그 마음이 잘 표현돼 있다.

“칠보산 넘어드는 정기의 바람에, 붉은흙 무르익는 내음새 풍기며 푸른솔밭 넘어드는 조화의 바람에, 가지각색 나무꽃이 향기를 풍긴다. 정열과 의지의 연장을 들메고, 동지여 오늘도 일하러 갑시다. 육종! 육종! 임목의 육종은 하늘이 우리에게 준 사명이라네.”

현사시나무가 심어진 숲 가운데 경관이 가장 빼어난 곳으로 알려진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 가보면 누구나 ‘아름답다’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꿈을 안고 있듯 하얀 나무껍질을 두르고 곧게 위로 뻗은 나무가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 서금영 -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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