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 안 해도 깨끗한 차!?

세차 안 해도 깨끗한 차!?

주제 재료(금속/소재)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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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판옥선의 모양을 날씬하게 바꿔야 하옵니다!”

지난 2005년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궜던 ‘불멸의 이순신’에는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 함정이던 판옥선의 형태를 두고 장수들이 갑론을박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판옥선은 바닥이 편평하고 배 외곽선이 직사각형에 가까웠다.

편평한 바닥 덕에 얕은 바다에서 잘 움직일 수 있고, 직사각형 외곽선 덕에 함정 앞뒤에도 안정적으로 대포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느린 속도가 문제였다. 물을 헤쳐가기 쉬운 유선형이 아니었기 때문에 추격전을 벌이거나 위험 지역을 벗어날 때 왜군보다 불리했다.

현재 대부분의 군함은 앞이 좁고 몸통이 볼록한 유선형으로 만들어진다. 현대 해상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속도이기 때문이다. 군함뿐 아니라 대부분의 배에 적용된 유선형 디자인은 두말 할 것 없이 물고기에서 비롯됐다. 인간의 머리에서 발명된 게 아니라 자연을 그대로 따 온 결과다. 그런데 알고 보면 자연을 닮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제품은 ‘찍찍이’, 즉 벨크로 테이프다. 지난 1948년 프랑스의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발명한 벨크로 테이프는 엉겅퀴 씨앗의 모양을 그대로 흉내 냈다. 벨크로 테이프를 보면 갈고리처럼 생긴 한 쪽 면이 털이 붙어 있는 다른 쪽 면에 달라붙는 구조를 띠고 있다. 사람의 옷이나 동물의 털에 달라붙는 엉겅퀴 씨앗과 같은 모양새다.

벨크로 테이프는 등장 이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의복, 신발, 가방 등 많은 제품에서 단추를 대체했으며 최근에는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에서 물건을 고정하는 데 활용하는 등 쓰임새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자연모사를 향한 인간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연꽃잎의 매끈한 표면을 닮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폭우가 쏟아져도 연꽃잎은 젖는 법이 없는데, 이는 연꽃잎 표면에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산봉우리가 수없이 솟아 있고 이 산봉우리에 나노미터 크기의 돌기가 마치 나무처럼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방울은 연꽃잎에 난 크고 작은 ‘골짜기’와 ‘숲’ 사이를 타고 일정한 크기로 모인 채 흘러내린다. 이 과정에서 표면의 먼지까지 말끔하게 씻긴다. 바로 ‘로터스 효과’다.

자동차에 로터스 효과를 지닌 페인트를 바르거나 필름을 입히면 세차를 안 해도 된다. 빗물을 쓸어내릴 와이퍼도 필요 없다. 먼지가 조금 묻어도 비를 한번 맞으면 깨끗해지는 데다 빗물이 즉시 흘러내려 시야를 가릴 일이 없어서다. 건물 외벽이나 도로 표지판을 청소할 이유도 사라지고 인공위성의 태양전지판을 언제나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다. 현재 독일에서 이런 효과를 내는 페인트를 개발했고 우리나라에서도 필름 형태의 제품을 내놓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 최정상급 수영선수들이 입는 수영복에는 상어의 피부에서 따온 기술이 녹아 있다. 수영을 하면 몸의 표면에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 추진력을 떨어뜨린다. 이 소용돌이를 몸에서 최대한 밀쳐내야 추진력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상어의 피부에 돋아난 돌기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 오톨도톨하게 솟은 돌기는 소용돌이를 몸에서 튕겨낸다. 상어는 물의 저항이 센 코 정면에는 거친 돌기를, 코 아래에는 부드러운 돌기를 갖고 있어 부위별로 튕겨내는 힘을 차등화한다. 추진력을 최대한 보존하고 쓸 데 없는 마찰은 줄이는 것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수영 6관왕을 차지한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는 이런 특수한 돌기가 박힌 ‘패스트 스킨’이라는 수영복을 입었다. 팔, 어깨, 다리(상어의 코 정면)처럼 물과 직접 부딪치는 부위는 거친 옷감을 썼고 가슴과 배(상어의 코 아래)에는 부드러운 재질을 썼다. 펠프스는 결국 상어의 피부를 입고 금메달을 딴 셈이다.

뼈를 본 따 로켓의 부품소재를 만들기도 한다. 1997년 미국 탄도미사일방어기구(BMDO)는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서도 충격에 잘 견디는 로켓 부품의 소재를 개발하면서 뼈의 내부 구조를 설계에 직접 반영했다. 뼈는 쉽게 깨지거나 부러지지 않는 데다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어 상당히 가볍기까지 하다.

BMDO는 이를 모방해 작은 구멍이 수없이 뚫린 탄소 입자에 티타늄을 입힌 소재를 만들었다.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뼈의 구조를 그대로 끌어온 것이다. 대기권 바깥의 극한 환경에서도 로켓이 정상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환경을 뼈가 제공한 셈이다.

생명체는 짧게는 수 만 년에서 길게는 수억 년을 거치며 개량돼 왔다. 다양한 환경에서 혹독한 검증을 거친 결과물이다. 그만큼 기능과 내구성이 입증됐다. 따라서 현재 태동기에 있는 자연모사 기술엔 앞으로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새가 나는 모습을 기록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공책이 현대 비행기의 기반을 닦았듯이 앞으로 선보일 많은 첨단기술의 고향도 자연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이정호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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