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산성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황룡산성

[ 黃龍山城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성곽 · 봉수>옛성터
유물유적시대 삼국
행정구역 평안남도>용강군>옥도리
등급 준국보급(보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37호

평안남도 용강군 옥도리 오석산에 있는 옛 성터. 고구려시기의 옛 성터이다. 오석산성(烏石山城)이라고도 한다. 황룡산성은 오석산(566m)의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축성한 석성으로서 둘레는 6,620m이다. 성은 여러 개의 봉우리와 용선들을 따라 고로봉식으로 쌓았다. 성벽의 대부분은 외면축조방법으로 쌓았으며 골짜기를 넘어서는 곳과 평지를 통과하는 부문에서만은 양면축조방법으로 쌓았다. 현재 남은 성벽의 높이는 산지대에서 4~5m이고 평지에서 10m이다.

성벽은 고구려성들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한 방법대로 정면은 네모나고 뒤초리는 뾰족하게 4각형태로 다듬은 성돌을 서로 어긋물려 쌓았다. 성가퀴는 높이 1.1~1.6m, 두께 1~1.3m 길이 1~6m로서 모두 2,877개였다. 성가퀴에는 각이한 형태와 크기를 가진 쏘는 구멍들을 냈다.

남쪽과 서쪽의 성벽에는 접근하는 적을 정면과 좌우에서 족치기 위한 4개의 치가 있었다. 성문은 동, 서, 남, 북 4면에 지형상 통행에도 좋고 방어에도 유리한 곳에 냈다. 지금은 문터만 남아 있지만 남문과 북문, 서문에는 무지개문길을 내고 동문에는 위에 이맛돌을 올려놓은 미식문길을 냈으며 이 네 대문에 문루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룡산성의 정문인 남문에는 불위루라는 웅장한 2층문루가 있었는데 왜적들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었다. 성문에는 옹성을 쌓았다. 지금 남아 있는 남문의 옹성은 성문 밖을 ‘ᄀ’형으로 감싼 형식으로 되었다. 남문부근에 있는 수구문은 오석산의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성 밖으로 빼기 위한 것이다. 지금도 수구문에는 적들이 기어 들어올 수 없게 한 기둥(은주)자리가 있다. 성 안에는 풍부한 수원이 있었는데, 지금도 못자리와 우물자리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산성에는 동, 서, 남, 북의 봉우리마다에 장대터가 있다. 이곳은 전시에는 전투지휘처로, 평상시에는 감시처로 이용되었다. 성의 부강대인 오석산에는 봉수터가 있고 성 안의 여기저기에는 무기고, 식량창고, 병실 등의 집터와 수많은 고구려시기의 기와조각들이 있다. 성 주변에는 수백기의 고구려무덤들이 널려 있다.

황룡산성은 고구려시기 수도 평양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서남쪽에서 막는 첫 관문이었다. 고려는 919년에 이 산성을 보수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산성은 계속 유지되어 왔는데, 이 시기에 성 안에는 용가창, 함총창, 삼화창 등 식량창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