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루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백상루

[ 百祥樓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누각 · 정자>누정
유물유적시대 고려
행정구역 평안남도>안주시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31호

평안남도 안주시 등방산동 안주성 서북쪽에 있는 누정. 백상루는 고려시대 처음 세워지고 조선시대 읍성의 면모가 완성되면서 개건되었으며 6 · 25전쟁시기에 폭격에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원상 복구하였다. 청천강의 맑은 물이 굽어보이는 높은 둔덕 위에 위치한 백상루는 ‘관서팔경’의 하나로, 특히 ‘관서팔경’으로 이름난 평양의 연광정, 강계의 인풍루, 의주의 통군정 등 누정 가운데서도 손꼽히어 ‘관서제일루’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며 내려왔다.

백상루란 이름도 여기서 백 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다 볼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백상루의 이름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14세기 10~20년대(충숙왕 때)이다. 백상루가 고려 때 처음 지은 누정이라는 것은 그 터에서 고려자기가 발굴된 사실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다. 그 후 1753년에 다시 지은 백상루는 조선시대 누정건축을 대표하는 누정이었다. 백상루는 복구할 때 본래 위치에서 서쪽으로 약 400m 옮겨 세워 풍치에 더 잘 어울리게 하였다. 지금의 것은 1753년에 건축한 양식이다. 백상루는 밑에는 정연한 기단이 갖추어져 있고 장방형으로 생긴 2개의 누정이 가로세로 맞붙인 것처럼 생긴 2층의 겹처마 합각누정으로서 규모가 크다.

누정의 평면은 ‘T’형으로서 남쪽 정면 7칸(25.82m), 동쪽 측면 6칸(18.9m), 서쪽 측면 4칸(12.24m)이다. 동쪽 측면이 서쪽 측면보다 2칸 넓게 된 것은 동쪽 끝의 2칸이 1칸 너비만큼씩 앞뒤로 내밀어졌기 때문이다. 백상루의 기둥배치에서는 네 면 가운데 칸들을 넓게 하여 중심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누정건축에서 흔히 써내려온 전통적인 수법이다. 백상루에는 밑에 주춧돌을 받친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위 2.23m 높이에 마루를 깔았다.

그리고 서쪽 5칸은 앞뒤에 각각 두 줄로 기둥을 배열하고 가운데는 기둥을 세우지 않았다. 마루테두리에는 옛날부터 누정건물에 흔히 쓰는 계자각기둥을 세우고 굴대로 연결하였으며 옆에는 바람구멍을 뚫은 판자를 댔다. 마루 가운데칸에는 오르내리는 계단이 있다. 마루의 기둥은 모두 마루 밑기둥에 잇대어 곧추 세워져 있다. 기둥은 윗부분보다 밑부분이 조금 굵은 아름다운 흘림기둥이다.

두공은 3익공외목도리식이며 그 물림이 아주 치밀하다. 두공의 꽃가지형 제공은 아래 위에 연꽃봉오리를 재치있게 새겨 하나의 훌륭한 조각예술품을 이루었다. 액방 위에 얹은 화반은 두 가지 형태이다. 그 하나는 한 포기의 연뿌리가 퍼지면서 피어나는 연꽃을 형상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환상적 동물인 나치형이다. 제공과 화반은 모두 선을 굵게 하면서도 섬세한 부분까지 새겨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동한 느낌을 받게 한다. 백상루에서는 지붕처리가 흥미있게 되었다.

지붕의 용마루 높이와 박공의 위치를 건물의 규모에 어울리게 바로 정하였기 때문에 지붕이 몸체와 잘 조화되었다. 그리고 2개의 긴 합각지붕이 교차되듯 4개의 박공을 네 면에 냈기 때문에 마치 여러 채의 합각집을 잇대어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누정의 사방은 틔우고 안은 통천장으로 하여 시원하게 하였다. 그리고 주위환경에 어울리게 건물에 모루단청을 입혔다. 건축구조와 부재에 어울리게 그려놓은 아름다운 단청은 백상루의 건축장식적 효과를 훌륭히 돋구고 있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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