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동읍성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벽동읍성

[ 碧潼邑城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성곽 · 봉수>성터
유물유적시대 조선
행정구역 평안북도>벽동군>동주리
등급 준국보급(보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보존급 제173호

평안북도 벽동군 동주리에 있는 옛 성터. 1403년의 유적이다. 이 지역에는 임토라는 고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1357년에 은동으로 개칭되었다가, 후에 벽단에 속하게 되었다. 1403년에 벽단에 군이 설치되면서 벽동군으로 명명되었으며 이때 벽동읍성을 쌓게 되었다. 벽동읍성을 중심으로 하여 3개의 행성이 뻗어 나가고 벽단진성 · 광평보와 신성보를 비롯한 여러 성보들, 책성들이 이어졌다.

동주리를 중심으로 하여 에워싼 높이 50m 안팎의 능선을 따라 돌로 쌓은 읍성의 평면은 한쪽이 조금 넓은 타원형이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그 둘레는 1만 3천자, 높이는 8자, 성가퀴는 1천 3백개이고 성 안에는 9개의 우물이, 성 밖에는 4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였다. 성벽은 길쭉한 4각형으로 다듬은 성돌로 차곡차곡 포개어 쌓았는데, 그 높이는 약 3m이다.

성문은 동, 서, 남, 북 네 면에 다 있었는데, 지금은 동문과 남문이 남아 있다. 성문 가운데서는 서문이 가장 크고 웅장하였다. 성문들은 성벽에 홍예문을 내고 그 위에 문루를 세운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남문에는 완월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완월루란 여기서 대덕산쪽에서 뜨는 달부터 구봉산쪽으로 지는 달까지 달구경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완월루는 정면 3칸(9.5m), 측면 3칸(6.3m)의 겹처마합각집이다.

성벽 위에 다듬은 돌로 기단을 쌓고 자연석 주춧돌 위에 흘림기둥을 세웠으며 두공은 2익공외목도리식으로 하고 천장은 통천장으로 하면서 가운데칸 일부에만 소란반자를 댔다. 밑에는 마룻바닥을 깔았고 건물에는 모루단청을 하였다. 동문의 구조형식도 이와 비슷하게 되었다. 이 읍성에는 사방에 다 장대가 있었다.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동주봉에 동장대가 있었고 지금 남아 있는 오사헌은 남장대였다. 오사헌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합각집이다. 수풍호가 이루어진 후 이 호수에 생긴 섬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앞에 펼쳐진 풍치는 자못 수려하다. 벽동읍성은 나라의 북방방위상 하나의 거점으로서 여진족을 비롯한 외적들의 침입을 반대하는 민족의 투쟁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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