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산성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백마산성

[ 白馬山城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성곽 · 봉수>성터
유물유적시대 삼국
행정구역 평안북도>피현군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58호

평안북도 피현군 백마노동자구 백마산에 있는 옛 성터. 고구려시기에 축조한 옛 성으로서 10세기 말에 흥화진주성으로 개축하였다. 여러 차례 개축 또는 증축 보수하였는데, 현재의 내성은 1632년에 본래보다 좀 작은 규모로 개축한 것이고 외성은 1753년에 내성 밖에 덧붙여 축조한 것이다. 1636년 청나라에서 쳐들어 왔을 때 임경엄 장군이 성을 지켰으며 고려와 조선을 걸쳐 강감찬 장군을 비롯한 15명의 이름난 장군이 이 성을 잘 수호하였다.

성내에 문화유적으로 현충사가 있으며 내성 안에는 절승당, 연늪, 약수가 있고 진명학교가 있었다. 백마산은 북으로는 의주, 남으로는 용천, 피현 일대의 사면팔방을 손금처럼 굽어볼 수 있어 적의 동정을 살피는 데서나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요격하는데 매우 유리하였다.

백마산성은 또한 북으로는 압록강을 건너 요동지방으로 통하고 남으로는 선천, 정주, 안주 또는 구성, 박천, 안주를 거쳐 평양에 이르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하였다. 하여 옛날부터 북으로 북한에 침입해온 외적들은 의주를 지나 백마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졌다. 내성은 고구려시기에 쌓은 우마성을 기초로 하여 1014~1017년에 강감찬의 지휘 밑에 고쳐 쌓았다.

우마성은 북장대를 배경으로 하고 능선 바깥쪽을 깎아 내린 다음 4각추형태로 다듬은 성돌로 바깥면만 성벽을 일매지게 쌓았다. 내성의 성벽은 그 대부분이 우마성자리에 다시 쌓은 것으로서 둘레는 2,590m이다. 백마산성의 북장대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마루와 남쪽으로 뻗은 등성이에 북쪽벽과 서쪽벽을 쌓고 두 성벽의 동쪽 끝과 남쪽 끝을 잇대어 남쪽벽을 쌓았다. 그리고 그 남쪽에는 외성성벽을 잇대어 방형으로 쌓았다. 외성의 둘레는 2,430m이로서 1753년에 쌓은 것이다.

외성성벽은 안에 막돌과 흙을 채워 넣었으며 그 높이는 5~7m이다. 남쪽 평평한 곳에는 일부 양면축조방법으로 쌓은 곳도 있다. 성벽 위에는 전면적으로 성가퀴를 돌렸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외성성벽 위에는 성가퀴가 잘 남아 있다. 성가퀴에는 벽돌로 지붕처럼 만들고 그 밑에는 화약을 넣어두는 홈까지 만들었다. 성벽에는 또한 각루와 치를 설치하였던 자리가 남아 있다. 내성과 외성의 동, 서, 남, 북 네 면에는 모두 홍예문길을 냈던 자리가 있다.

그 중 외성의 남문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2층 문루가 잘 남아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다. 성 안에는 13개의 못과 32개의 우물을 파놓았던 자리가 있고 여러 채의 무기고와 식량창고, 병실 등 집터들이 있다. 옛날에는 이곳 무기고에 활, 화살, 창, 화승총, 화약 등이 가득 차 있었고 건물들에는 100여 개의 소금더미와 수백 섬의 숯이 저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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