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어참성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발어참성

[ 拔禦塹城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궁궐 · 관아>궁궐
유물유적시대 고려
행정구역 황해북도>개성시>만월동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29호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의 송악산 기슭에 있는 고려왕궁성. 황성, 밀떡성, 보리참성이라고도 한다. 후삼국의 하나인 태봉국의 궁예에 의해 896년부터 898년 사이에 축성되었다. 궁예는 898년에 도읍을 철원에서 송악으로 옮기고 발어참성에 태봉국의 수도를 정하고 있다가 905년에 다시 철원으로 천도하였다. 당시 고려의 세조가 송악군 사찬으로 있다가 궁예에게 귀순하면서 제의하였는데, 궁예는 세조의 말을 듣고 곧 태조로 하여금 발어참성을 쌓게 하고 그를 성주로 삼았다 한다.

918년 고려왕조가 선 다음 919년에 수도를 발어참성에 정하고 성 안에 궁성을 쌓았다. 11세기 초에 쌓은 나성과 고려 말~조선 초에 쌓은 내성은 다 발어참성을 연결하여 쌓은 성들이다. 발어참성은 석비레와 진흙을 엇바꾸어 층층이 다져 쌓는 방법으로 쌓았는데 그 둘레는 약 10리이다. 성 안에는 왕이 있던 궁성과 중앙관청들이 있던 황성이 있었다.

발어참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성을 쌓을 때 송악산 부근 사람들은 물론 멀리 강원도 등 지역의 사람들까지 동원되었는데 축성공사는 여러 해를 두고 진행되었다. 강원도 이천땅의 한 농민도 이 부역에 끌려나와 혹사당하면서 해가 바뀌도록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못해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천신만고하여 남편을 찾아 공사장으로 왔다.

몰라보게 수척해진 남편을 만난 아내는 때묻은 베보자기를 풀며 남편과 함께 고생하는 부역꾼들에게 밀떡을 내놓았다. 부역꾼들은 검푸른 밀떡을 바라보면서 역시 비참하게 살고 있을 자기 집들을 생각하여 일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는 부역꾼들 모두에게 통치자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로 가슴을 치게 하였다. 이처럼 백성들이 밀떡을 먹으며 쌓은 성이라 하여 이 성을 밀떡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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