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흥사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법흥사

[ 法興寺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사찰 · 사당>절
유물유적시대 삼국
행정구역 평안남도>평원군
등급 준국보급(보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보존급 제23호

평안남도 평원군 신성리 강룡산에 있는 절. 법흥사는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이 절을 근거지로 삼아 승병들을 이끌고 왜적들을 몰아내기 위한 의병투쟁을 적극 벌린 것으로 하여 유명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인용한 김부식의 글에 의하면 법흥사는 그때에 벌써 터만 남은 오랜 절이므로 옛 터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새로 절을 세웠는데(계묘년 3월부터 을사년 봄까지) 불당, 승방 등이 무려 80여 칸이 되었다고 한다. 김부식이 1151년에 사망하였으므로 이 글에 의하면 법흥사는 아마 고구려 때부터 있었는데 그 후 황폐화된 것을 고려 때인 1123년부터 1125년 사이에 재건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시대에 다시 중건한 것이다. 지금 법흥사에는 극락전과 장경각, 삼화상각, 승방이 남아 있다. 불경을 보관한 건물인 장경각은 이 절의 유일한 포식건물이다. 장경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합각집으로서 두공은 안팎이 같은 5포로 되였다. 두공의 바깥쪽제공은 비교적 짧은 소혀형이며 안쪽은 닫긴형인데 첨차의 꺾임부분을 원활한 곡선으로 처리하였으나 외목도리를 받고 있는 포의 첨차는 꽃가지장식으로 되였다. 내부 대들보 위에는 소란반자천장을 낮게 설치하였다.

수리당시 대들보에 먹으로 쓴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에 의하면 지금의 건물은 1401년 4월에 세운 것이라 한다. 기와막새에도 ‘건문원년’(1399년)의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에 큰 규모의 중건공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되면서 후기양식이 가미되었으나 기본적으로 원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삼화상각은 나옹, 무학, 지공의 화상을 안치한 전각으로서 2익공 외목도리식 뱃집이다. 두공의 제공은 연꽃봉오리를 겹친 꽃가지형이고 두공 사이에는 나치조각이 도리를 받치고 있다. 18세기 초에 중수가 있었는데 그때에 다시 지은 건물로 추정된다(법흥사중수비). 법흥사의 주전인 극락전은 근세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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