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

김종기

[ 金宗基 ]

요약 가야금 연주가. 가야금산조명인. 백낙준(白樂俊)의 문하생.
출생 - 사망 1905년 ~ 1945년
김종기

박한용에게 가야금산조를 배웠고, 산조를 김삼태(金三泰)와 유대봉(柳大奉)에게 가르쳤다.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의 발기인 중 한 사람. 1934년 5월 11일 그는 이동백·강태홍·김동강·김용승·김창룡·김채련·박녹주·송만갑·심상건·오태석·정정렬·한성준, 이상의 발기인과 함께 1934년 4월 24일에 설립한 조선성악원(朝鮮聲樂院)을 조선성악연구회로 개칭하여 다시 출범시켰다. 개성권번(開城券番)에서 가야금을 가르치고 있을 때 개성으로 백낙준을 초빙하여 거문고산조를 배웠으나 1945년 40세로 요절하였다. 그의 가야금산조는 진양조·중모리·자진중모리·늦은자진모리·자진모리·휘모리로 구성됐다. 백낙준 문하에서 박석기·신쾌동과 함께 백낙준의 거문고산조를 전승하였다.

1928~1934년 가야금병창·가야금산조·"개고리타령"·"공도난"(公道難) 등의 여러 곡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그가 취입한 가야금독주·남녀합창·잡가 "보렴"과 "새타령"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김소희·오비취·오태석 등과 함께 취입한 가야금병창·가야금산조·거문고산조·"공도난이"를 비롯한 여러 민요, 그리고 그의 반주로 취입한 김소희·박녹주·박종기 등의 음악은 오케음반에 전한다.

김영근과 함께 문산옥의 노래를 반주하는 사진은 『三千里』(1934) 6권 11호의 "방송야화"에 게재됐다. 1934년 5월 11일에 열린 조선음악연구회의 발기총회 때 송만갑·이동백·김창룡 등과 함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김종기(가야금)과 박종기(대금)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김종기(가야금)과 박종기(대금)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2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