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

산조

[ 散調 , 酸調 ]

요약 기악독주곡의 한 갈래. 일명 시나위·허튼가락.

산조는 삼남(三南) 지방 중 특히 전라도에서 발달하여 오늘날 전국적인 민속예술로 사랑을 받는 기악독주곡이다. 를 반주 삼아 ····젓대·· 등의 악기로 연주된 산조는 로 느리게 시작하여 점차 빠른 ··로 바꾸어 연주하는 독주곡이다. (羽調)와 (界面調)로 된 감미로운 가락과 처절한 애절함도 산조에 나온다.

1918년에 간행된 『朝鮮美人寶鑑』에는 현행 산조(散調)의 한자와 다른 산조(酸調)라는 한자가 사용됐다. 식초 냄새를 맡았을 때 콕 쏘는 듯한 코끝의 느낌이 슬프거나 가슴 아플 때 코끝을 자극하는 찡한 느낌과 상통하기 때문에 산조(酸調)라는 명칭이 사용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한자명은 그 후 애틋한 가락을 듣고서 느낀 감정을 한자로 표기한 산조(散調)로 바뀌었다.

허튼가락의 뜻하는 산조(散調)는 의 굿판에서 합주를 담당한 (巫夫)로서의 (廣大)가 자기 악기로 독주한 과 같은 허튼가락이 산조의 유래와 직접적으로 관련됐다고 추정된다. 그런 추정의 근거는 현행 나 를 예전에는 젓대시나위 또는 해금시나위라고 불렀고, 산조를 연주하는 (散調大笒)을 시나위젓대라고 부른 사실이다. 따라서 산조의 원형은 19세기 이전부터 체계 없이 단편적으로 연주되던 허튼 가락을 의 창시자로 알려진 김창조(金昌祖)와 같은 사람이 음악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으로 짐작된다.

산조의 초기 형성과정에서 시나위 이외 가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추정된다. 첫째로 산조의 (樂調)와 장단(長短)이 판소리의 것과 같다는 것이 그런 추정의 근거이다. 다시 말해서, 판소리에서 사용되는 우조·(平調)·계면조··(岡山制) 등과 같은 악조명과 ·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 같은 판소리 장단이 산조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둘째로 굿판에서 (巫樂)을 담당했던 무부로서의 광대는 조선후기 판소리와 시나위의 발달과정에서 모두 관련됐으므로, 산조의 유래가 판소리와 관련됐을 개연성(蓋然性)이 짙다. 연주자가 장구 반주에 맞추어 여러 악장의 독주곡을 연주하는 산조는 연주자의 악기에 따라서 가야금산조··젓대산조··해금산조·아쟁산조· 등으로 구분된다.

산조는 느린 장단으로 시작하여 보통 빠르기의 장단을 거쳐서 빠른 장단으로 진행한다. 옛 산조 들은 장단으로 시작하는 본 곡의 연주에 앞서서 무반주의 을 연주했지만 요즈음 연주자들은 진양조부터 시작하고 있다. 연주자는 여러 조로 구성된 선율을 농현(弄絃)하거나 퇴성(退聲) 등의 연주기법에 따라서 다양하게 연주하고 반주자는 연주자의 가락에 적절하게 반주를 한다. 산조 한 바탕을 전부 연주할 경우 한 시간 내외가 걸리고, 짧은 산조의 경우 10분 내외로 짜서 연주하기도 하지만, 짧은 산조라도 기본적으로 진양조·중모리·자진모리 악장을 넣어서 골격을 구성한다. 옛 산조명인들은 스승에게 배운 가락을 단순하게 모방 단계에 머무르지 않았고, 자신들의 독특한 가락을 즉흥적으로 엮어서 색깔 있는 산조를 만들었다. 그것이 여러 유파(流派)를 형성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어원적 의미 및 유래〉 산조의 한자는 두 가지로 사용됐다. 하나는 '헤어질 산' 또는 '헤칠 산'의 산조(散調)이고, 다른 하나는 '슬플 산' 또는 '가슴 아플 산'의 산조(酸調)가 그것이다. 산조(酸調)의 '산'은 식초 냄새를 맡았을 때 콕 쏘는 듯한 코끝의 느낌이 슬프거나 가슴 아플 때 코끝을 자극하는 찡한 느낌과 상통하는 한자이다. 이 산조(酸調)의 한자명은 『朝鮮美人寶鑑』(1918) 소재의 (券番妓生)의 기예란에 사용됐다. 아마도 산조의 애틋한 가락을 듣고서 느낀 감정을 한자로 그렇게 적은 명칭인지 모른다. 이 산조(酸調)가 후에 흐트러진 가락 또는 흩어진 가락, 곧 허튼 가락이라는 우리말의 뜻을 담은 산조(散調)라는 한자명으로 대치됐고, 그 한자명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허드래 가락이나 허튼 가락의 뜻을 담은 후자의 한자명은 시나위합주의 무악이나 (鳳長醉)의 가락 또는 나 판소리의 가락과 직접 또는 간접적인 관련성을 암시해준다. 무당의 굿판에서 시나위합주를 담당한 무부로서의 광대가 자기 악기로 독주한 시나위 가락 같은 허튼 가락이 초기 산조의 유래와 직접적으로 관련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현행 대금산조를 젓대시나위라고 불렀고, 해금산조를 해금시나위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그런 추정의 근거이다. 따라서 산조의 원형은 19세기 이전부터 체계 없이 단편적으로 연주되던 허튼 가락을 김창조 같은 명인이 음악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으로 짐작된다.

시나위 이외 산조의 초기 형성과정에서 판소리가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추정도 어렵지 않다. 첫째로 산조의 조(調)와 장단이 판소리의 것과 대체로 같다. 판소리의 우조·평조·계면조·경드름·강산제 등의 악조명과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엇모리·휘모리 등의 장단명이 산조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조선후기 판소리와 시나위의 발달과정에서 무부로서의 광대는 그 두 갈래의 음악과 모두 관련됐으므로 산조의 유래가 판소리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틀 및 음악적 구성〉 산조의 틀은 반주장단에 따라서 여러 부분 곧 악장으로 구성된다. 각 악장의 이름은 장단의 명칭과 같다. 가장 기본이 되는 산조의 틀은 진양조·중모리·자진모리의 세 악장이고, 각 악기로 연주되는 산조에 따라서 악장의 수는 증가된다. 가야금산조의 경우 중중모리나 가 진양조와 중모리 사이에 나오고, 자진모리 다음에 휘모리· 악장이 추가된다. 다음의 표는 유파별 가야금산조의 악장을 정리한 것이다.

각 유파별 가야금산조의 악장 일람표

각 유파별 가야금산조의 악장 일람표
구분 악장
다스름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빠른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
유파 한성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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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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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홍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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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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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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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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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죽파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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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야금산조와 거문고산조 이외 해금산조·젓대산조·피리산조·퉁소산조·태평소산조·단소산조는 모두 세 기본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조의 선율과 리듬은 여러 악조 및 장단에 의해서 전개된다. 선율의 특징을 만드는 악조는 우조·평조·계면조 및 강산제·경드름·(鳳凰調) 등이 사용됐다. 리듬의 특징은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엇모리·자진모리·휘모리·단모리 등의 장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연구현황 및 악보〉 산조의 최초 연구는 1968년 『음대학보』 제4집에 발표된 이재숙(李在淑)의 "자진모리의 Rhythm형태의 연구"이다. 그 후 김정자(金靜子)의 "가야금산조의 우조와 계면조," 이재숙의 "가야금산조의 틀에 대한 소고," 그리고 조위민(曺偉敏)의 "현금산조의 원형과 현행형"이 『』(1969)에 발표됐다.

1967년 조위민은 의 거문고산조를 해 제록스본의 악보를 냈다. 1969년 (金琪洙)는 가야금·거문고··피리·해금산조를 채보하여 『』 제3집에 출간했다. 1971년 이재숙은 5선보로 채보한 『가야금산조』를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1975년 송방송(宋芳松)은 신쾌동의 거문고산조를 연구한 "Kŏmun'go Sanjo: An Analytical Study of a Style of Korean Folk Instrumental Music"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박상원(朴尙元)은 "가야금산조의 종지형"으로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이재숙의 "최옥산 가락 가야금산조 고" 및 송방송의 "거문고산조의 조성(調性)에 관한 분석적 고찰"이 『』에 발표됐다.

1975년 (韓範洙)는 『』(韓範洙大笒散調譜)를 그리고 신쾌동(申快童)은 『』(玄琴曲全集)을 출간하였다. 이후 1980년대부터 수많은 산조 관련의 논문과 단행본이 출간됐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3.1121~24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447~48쪽
  • 『民俗藝術事典』, 서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9년, 1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