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명왕

대광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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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비유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현우경

석존께서 탄생하신 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다. 그런 시대에, 총명과 슬기로써 이름 높은 대광명왕(大光明王)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이웃나라와 친하게 지내었다.
어느 때 이웃나라의 왕이 대산(大山)에 사냥을 가서 두 마리의 새끼 코끼리를 잡았다. 그 새끼 코끼리는 수정산(水晶山)과도 같은 하얀 살갗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생김새도 매우 예뻤다.
더욱이 일곱새끼 코끼리를 대광명왕에게 바치려고 금, 은, 구슬 등으로 몸을 장식하고, 신하를 보내어 대기의 명인이 있었으므로 그를 불러,
『이웃나라 왕으로부터 이번에 세상에서도 희한한 새끼 코끼리를 보내 왔으니 네가 이것을 길러서 잘 길들여 다오.』
하고 명령하였다.
그는 왕명에 따라 그로부터 자기의 경험과 기술로써 정성을 들여 새끼 코끼리를 길들이기에 힘썼다. 그 결과 코끼리는 충분히 길들여졌으므로, 그는 칠보(七寶)로 코끼리를 장식하고 왕궁으로 데리고 가서 왕에게,
『어명을 받들어 기르고 길들인 결과 코끼리도 이제 길이 잘 들었으므로 오늘 데리고 왔습니다. 한번 타 보시기 바랍니다.
하고 여쭈었다.
광명왕은,
『그래 빨리도 길들였구나. 수고했다.』
하고 매우 기뻐하며, 금으로 만든 복을 울려 신하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 앞에서 타 보려고 하였다. 금북 소리를 들은 신하들은 곧 왕궁으로 모여들었다.
『이 코끼리를 오늘 처음으로 타볼 터이니, 모두들 구경하라.』
하고 왕은 새끼 코끼리를 탔다.
아침 해가 산위에 그 광명을 나타낸 것처럼 대왕이 흰코끼리를 탄 모습은 위풍이 당당하였다.
『이로부터 마장(馬場)으로 갈 터이니 모두들 따르라.』
하고 코끼리 위의 광명왕은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성을 나와 마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 도중에 연꽃이 피어 있는 못이 하나 있어, 그 연못에 많은 코끼리들이 들어가 연뿌리를 캐어 먹고 있었다.
그것을 본 새끼 코끼리는 곧 성질이 거칠어지고, 욕정이 일어나, 암코끼리의 뒤를 쫓기 시작하였다. 신하들은 이것을 보고,
『저런,』
하고 놀라 소리치면서 왕이 탄 새끼 코끼리의 뒤를 쫓아갔다.
새끼 코끼리는 돌아다 보지도 않고 암코끼리를 뒤쫓아 나무, 숲, 풀밭 할 것 없이 마구 뛰어 달아났다. 타고 있는 광명왕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삐를 꽉 붙잡고 있었다. 그러나 나뭇가지에 걸려서 왕관은 벗겨지고 옷은 찢기고 온 몸에 상처를 입고 출혈까지 보게 되었다.
그래도 왕은 고삐를 꼭 붙잡고 있었으나, 새끼 코끼리가 너무도 빨리 달아나므로 왕은 눈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하였다.
한편 코끼리지기 산쟈는 자기가 길들인 코끼리가 암코끼리에게 미쳐 왕을 태운 채, 숲속을 정신없이 쫓아갔다.
산쟈가 뒤따라 온 것을 본 왕은,
『산쟈야, 나는 살 것 같지가 않다.』
하고 비명을 질렀다.
『대왕님, 붙잡을 만한 나뭇가지가 있거든 그 가지를 붙잡고 코끼리에게서 떨어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그러냐.』
하고, 가까스로 왕은 적당한 나뭇가지를 발견했으므로 거기에 매달리니, 새끼 코끼리는 숲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왕은 겨우 나무에서 땅위로 내려 올 수가 있었다.
왕관도 옷도 다 잃어버리고, 더욱이 몸에 상처까지 입은 것을 알고 괴로워 하면서 수풀을 나왔으나, 따라오는 신하의 모습이 하나도 안 보이므로 더욱 왕은 낙심과 쓸쓸함을 느끼면서 할 일없이 나무 밑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뒤쫓아 온 산쟈는 왕이 어디에 계시는가 하고 찾아 다녔더니, 어느 나무 밑에 낙심천만의 모습으로 나무 밑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다.
『대왕님,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 새끼 코끼리는 곧 음란한 마음도 가라앉아 침착해질 것입니다. 저 코끼리는 산속의 나쁜 풀을 먹거나 흐린 물을 마시기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궁중의 맑은 물과 맛있는 음식이 생각나서 틀림없이 왕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나는 코끼리에게는 데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하였다. 네 조련(調練)도 믿을 수가 없다.』
하고 왕은 코끼리의 이야기조차 듣기 싫고, 코끼리가 무서워지기까지 하였다.
이러는 동안에 왕을 잃어버린 신하들은 대왕이 코끼리 때문에 부상을 하여 돌아가셨을 것이니, 유해나마 구해 가지고 돌아가려고, 길을 더듬어 왕관, 또는 옷의 찢어진 조각 등을 주우면서, 군데군데 피자욱을 따라갔더니, 부상한 왕이 산쟈와 마주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겨우 안심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코끼리에 왕을 태우고 시름에 잠기어 왕궁에 돌아왔다. 성안 사람들은 왕이 시름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모두들 걱정을 하였다.
암코끼리를 보고 욕정을 일으켜, 그것을 탐하여 산이며 숲이며, 골짜기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달려간 코끼리는 늪에서 여러 가지 나쁜 풀도 뜯어먹고 흐린 물도 마셨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지금까지의 욕정이 갑자기 멎고, 왕국에서 마시던 맑은 물이며 맛있는 음식 생각이 나서, 질풍같이 늪을 뛰어나와 궁중의 자기집으로 돌아왔다.
새끼 코끼리가 생각했던 대로 돌아온 것을 본 코끼리 지기는, 곧 왕에게로 가서,
『대왕님이여, 저 새끼 코끼리가 방금 돌아왔사오니 한번 보아 주십시오.』
하고 여쭈었다.
『싫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코끼리 한테도 볼 일도 없거니와 또 보고 싶지도 않다.』
『노여워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그러시다면, 제가 코끼리를 조련하는 방법만이라도 한번 보아 주십시오.』
이러한 코끼리 지기의 희망에 따라 왕은 자리를 평탄한 곳에 마련하고, 코끼리 지기가 어떻게 코끼리를 길들이고 있는가를 구경하게 되었다.
이 소리를 들은 성안 사람들은 코끼리지기가 왕에게 코끼리를 길들이는 모습을 보여 드린다는 말을 듣고, 앞을 다투어 왕궁으로 모여들었다.
왕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마련해 놓은 자리에 앉았다. 코끼리지기는 코끼리를 끌고 들어와 일곱 개의 청환(鐵丸)을 새빨갛게 불에 달구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바라본 왕이나 신하, 그리고 일반 구경꾼도 코끼리 지기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보고 있었다.
한편, 코끼리 지기는 철환이 달구어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코끼리가 새빨갛게 달구어진 이 철환을 먹으면 죽어 버린다, 세상에서도 희귀한 이 흰코끼리가 죽으면 왕은 후회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였다.
『대왕님, 이 코끼리는 전륜성왕(轉輪聖王)만이 가질 수 있는 귀중한 보배입니다. 그것을 지금 대왕이 얻을 수가 있었는데, 대왕께서는 새끼 코끼리의 작은 잘못을 따져, 지금 그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얻기 힘든 보배를 내버리는 격이 됩니다. 코끼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코끼리가 잘 길이 들어 탈만 하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는 타지 않을 것이다. 지난날의 일로 미루어 보아 이 코끼리는 내가 타기에 적당하지 않음을 알았으니까, 이제 너에게 볼일도 없고 새끼 코끼리에게도 미련은 없다.』
『세상에도 희귀한 이 보배의 흰 코끼리를 안 쓰시는 것은 대왕을 위하여 유감이옵니다.』
『귀찮게 굴지 말아라.』
하고 왕은 벌컥 성을 내어 코끼리 지기를 물리쳤다.
코끼리 지기는 할 일없이 코끼리에게로 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새끼 코끼리야, 너도 들은 바와 같이 되었으니 이 새빨간 철환을 먹고 죽어 다오. 만일에 먹지 않는다면 이 쇠갈고리로 네 골을 으깨어 버릴 것이다.』
하고 잘 타일러 자살을 권하였다.
이 코끼리 지기와 코끼리의 슬픈 심정을 동정한 군중은 모두들 그 처지를 딱하게 여기어 울었다. 코끼리 지기의 말을 알아들은 새끼 코끼리는,
『쇠갈고리로 골이 으깨어지는 것보다 이 철환을 먹고 깨끗이 죽자. 사람이 교살(絞殺)은 당하여도 소살(燒殺)은 바라지 않는 것처럼 자기도 도저히 쇠갈고리의 죽음을 참을 수가 없다.』
하고 각오를 굳히었다. 그러나 코끼리로서도 목숨에 대한 애착은 있었다.
코끼리는 기운 없이 왕에게로 가서 무릎을 꿇고 왕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말은 비록 못하지만 그 태도에 그것을 나타내어 구원을 청하였다. 그러나 왕의 노여움은 커서, 코끼리가 목숨을 구해 달라는 것을 알았지만 곧 눈길을 돌려 외면해 버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코끼리 지기도 도저히 왕의 노여움을 풀고 코끼리의 목숨을 구할 도리가 없음을 알고,
『너는 왜 이 철환을 먹지 않느냐.』
하고 매정하게도 코끼리에게 자살을 강요하였다.
죽음을 강요당한 새끼 코끼리는 사방을 둘러보고,
(구름처럼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내 목숨을 구해 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가, 아, 서글프다.)
하고 생각하면서 새빨갛게 달구어진 철환을 꿀꺽 삼켰다. 입도, 배도 다 타서 괴로워하면서 새끼 코끼리는 무참히도 목숨이 끊어졌다.
입에서 배로, 배에서 창자로 코끼리의 온 몸 안을 태운 철환은 마치 금강의 절굿공이로 수정산을 내려친듯한 소리를 내면서 터진 채로 땅위에 굴러 떨어졌다. 이것을 본 군중은 한꺼번에 그 비참한 코끼리의 최후를 슬퍼하며 울었다.
그 슬픔의 울음소리는 천지를 진동하는 듯 하였다. 심한 노여움 때문에 코끼리 지기의 말을 듣지 않고 새끼 코끼리에게 슬픈 최후를 마치게 한 대왕도, 그 최후가 너무도 참혹함을 보고 놀람과 동시에 뉘우치는 마음이 생겨 코끼리 지기 산쟈를 불러,
『지금 보니, 너는 코끼리를 잘도 길들일 수가 있는데, 어찌하여 지난 날 숲속에서 내가 고생하고 있을 때에는 그것을 말리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그 때에 오늘처럼 코끼리를 길들여 주었더라면 지금의 이 비참한 광경을 서로 보지 않아도 될 것을 하고 못마땅해 하였다.
그 때, 정거천(淨居天)은 광명왕이 바로 더없는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킬 것을 미리 알고, 신통력으로써 코끼리 지기로 하여금 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였다.
『대왕님, 나는 다만 코끼리의 몸만을 잘 단련시키고, 그 마음까지는 단련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왕은,
『그러면, 누가 코끼리의 몸도 마음도 함께 단련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이냐.』
하고 물었다.
『불타세존(佛陀世尊)만이 심신을 모두 고르게 할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고 여쭈었다.
처음으로 세존의 이름을 들은 왕은 마음에 놀라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네가 방금 말한 세존이란 대체 무슨 종족의 출신이냐.』
『세존은 지혜와 자비를 그 종족의 성질로 하여 태어나, 깨달음의 길을 수행하여 공덕과 지혜를 갖추고 있으므로 부처라고 합니다. 이 부처는 자기의 지(智)와 행(行)이 성취함과 동시에 또한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같이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세상에서도 존귀한 분이십니다.』
불세존(佛世尊)이 그렇게 넓은 자비와 공덕을 갖추고 있다는 말을 들은 광명왕은, 기뻐서 궁중으로 달려 들어가 향수를 뿌린 물에 목욕하고 다시 새 옷을 입고 높은 다락에 올라가 사방을 향하여 예배하고 일체 중생에게 대자비심을 일으키고 그윽한 향을 피우면서,
『원컨대, 나의 모든 공덕은 불도로 돌려, 내 성불(成佛)하여 그 마음을 고르고 또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고르게 하리라. 만일에 일체 중생이 아비지옥에 빠져 있다면 이것을 구하기 위하여 지옥에 들어가더라도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대자비심을 버리지는 않겠습니다.』
하고 서원(誓願)을 하였다.
이 광명왕의 대서원이 끝나자 천지는 여섯 번이나 진동하여 산도 바다도 모두 기뻐하고, 공중에는 저절로 음악 소리가 들리고, 무량(無量)의 제천(諸天)은 하늘 풍류를 울리며 광명왕의 서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노래 하였다.

『진정 거룩하신 원행(願行)이나,
부처님의 길도 멀지 않으니.
불도가 성취하는 날에는,
고생의 바다에 가라앉는 우리들은,
자비로운 손에 건져 주소서.』

철환을 삼키고 무참한 최후를 마친 흰 코끼리는 지금의 아난(阿難)이며, 이때의 코끼리 지기는 사리불(舍利佛), 자비 구제의 대서원을 일으킨 광명대왕이란 지금의 석가모니이시다.

<賢愚經第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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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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