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동 유적

삼양동 유적

[ 濟州 三陽洞 遺蹟 ]

지역 제주
유적전경(집자리)

유적전경(집자리)

원삼국시대 제주도를 대표하는 마을유적으로, 제주시 동쪽에 위치한 삼양동의 동서 1.2-1.5㎞, 남북 0.5-0.6㎞의 2만여 평 범위에 위치한다. 그 대부분은 밭으로 조성되어 있고, 유적지 주변부로는 민가가 들어서 있다. 해발 높이 12-14m 정도의 해안단구상의 편평한 대지에 위치하는데, 유적지 동쪽으로 속칭 ‘음나물내’ 건천이 있고, 북쪽 해안으로 수량이 풍부한 용천수가 발달하여 있는 바, 현재 제주시 상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음나물내를 건너 동쪽으로 해발 172m의 원당봉이 솟아 있는데, 지표조사에 따르면 이 원당봉 기슭에도 유적이 분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1973년에 동 유적 남쪽으로 고인돌(支石墓) 3기가 보고된 바 있고, 1986년 제주대학교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서 이 일대에서 원삼국시대에 속하는 적갈색토기와 돌도끼 등의 유물을 수집한 바 있어 이미 유적의 존재가 알려졌지만, 주거지 유구는 1996년 제주시에서 실시한 토지구획정리 공사에 의해서 노출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제주대학교박물관에서 수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한 결과, 확인된 주거지는 총 220여 기에 이른다. 이 중 155기의 주거지 내부조사가 이루어지고, 나머지는 윤곽만 확인되었다.

유적은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각 필지별로 대체로 1-5구역으로 구획되어 발굴되었다. 1996-97년의 1차조사는 1 · 2-2구역 시굴조사, 1997년의 2차 조사는 1 · 2-2 · 3구역 발굴과 4 · 5구역 시굴조사, 1998-99년의 3차 조사는 2-1 · 2 · 4 · 5구역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결과 거의 전범위에서 집자리가 확인되었지만, 도로시설 예정구역의 집자리는 상당수가 이미 구획정리공사로 잘려나간 상태였다.

228여 기 주거지 중 반움집 형태로서 원형(圓形)이 167기로 가장 많고, 장방형(長方形) 17기, 부정형(不定形) 7기, 지상식으로서 부정형 주거지 20기와 굴립주 건물지 7기가 확인되었다. 원형주거지는 이른바 송국리형으로서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내부 양쪽 끝에 중심기둥의 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작은 것은 직경 2.2m 내외이고, 가장 큰 것은 6.6m로서, 평균적으로 직경 4-5m의 크기를 갖고 있다.

주거구역이 중심과 주변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대체로 제Ⅱ구역이 그 중심에 해당하고, 그 중 중심 거주지는 Ⅱ-2구역의 6호 주거지로 추정된다. 6호 주거지에서는 중국 한대(漢代)의 환옥을 비롯하여 유리구슬, 청동기, 철기 등의 외래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6호 주거지의 북쪽으로 인접하여 각종 토기와 유리구슬, 동물뼈, 조개껍질 등이 다량 폐기된 유구가 있다. Ⅱ-2구역의 서쪽에 인접한 Ⅱ-1구역에는 원형 주거지 사이사이로 다량의 토기가 완전 소성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는 부정형의 집자리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토기제작 등의 작업장으로 추정된다. 굴립주 건물로서 대표적인 것이 제3구역에 위치하는데, 직경 50㎝ 정도의 기둥구멍이 4기씩 3열 배치되어 있는 바, 대체로 창고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각 단위 주거지군 배치상에 두드러진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10여 기 전후의 주거지가 군을 이루어 한가운데를 비우고 원형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가장 동쪽에 위치한 Ⅴ구역의 예가 대표적인데, 한 가운데에는 야외 화덕자리(爐址)가 배치되어 있다. 주거지 이외에 마을을 구성하는 시설물로서는 석축담장지 2개소, 폐기장 1개소, 구상유구(溝狀遺構) 1개소가 확인되었다.

주거지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로는 우선 토기를 들 수 있는데, 단면 원형·삼각형 점토띠토기(粘土帶土器)와 제주도의 특징적인 적갈색 외반구연항아리형토기가 특징적이며, 석기로는 간돌검(磨製石劍), 간돌화살촉(磨製石鏃), 홈자귀(有溝手斧), 돌도끼(石斧), 돌끌(石鑿), 숫돌(砥石), 갈돌(石棒), 갈판(碾石) 등이 있고, 금속유물로는 한대 삼각형 동화살촉(銅鏃), 주조쇠도끼(鑄造鐵斧), 그리고 장신구류로서는 유리구슬, 환옥 등이 있으며, 자연유물로서, 보리, 콩과 쌀이 수습되었다.

200여 기가 넘는 주거지로 구성된 마을 유적지로 지금까지 조사된 남한 최대의 마을 유적지 중의 하나로서 원삼국시대에 초기복합사회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제주도에 원삼국시대 집자리가 남한지방에서 청동기시대에 유행하였던 송국리형주거지라는 점에서 집자리 짓기 방식의 전통이 남한에서 제주도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참고문헌

  • 제주 삼양동유적(제주대학교박물관 1999년, 현장설명회자료)
  • 제주 삼양동유적-발굴조사중간보고(제주시·제주대학교박물관, 1998년)
  • 제주시 삼양동유적 발굴조사 중간보고(강창화 외, 제21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발표요지, 한국고고학회, 19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