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자귀

홈자귀

홈자귀 복원 모습

홈자귀 복원 모습

목재도구를 만드는 공구(工具)로서 날〔刃〕은 한쪽에만 있으며 그 반대쪽에는 나무자루에 착장하여 끈으로 묶기 위한 오목한 홈〔溝〕이 있다. ‘홈자귀〔有溝石斧〕’, ‘오목자귀’, ‘주상편인석부(柱狀偏刃石斧)’, ‘결입석부(抉入石斧)’라고도 하며, 크기는 8∼17㎝, 단면은 마름모꼴, 날의 반대면은 비스듬히 경사지면서 홈으로 연결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형태이다.

청동기시대의 벌채석부(伐採石斧), 대팻날도끼〔扁平偏刃石斧〕, 돌끌〔石鑿〕 등과 달리 홈자귀는 시기에 따라 일정한 형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따라서 청동기시대 편년의 지표로도 이용되는데, 특히 송국리유형(松菊里類型)의 표지적인 유물의 하나로서 송국리문화의 파급 여부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증거자료이다.

벌채석부로 잘라낸 나무로 만들고자 하는 도구의 전체적인 형태를 다듬는 1차 가공구이며, 대부분이 집자리〔住居址〕 내에서 출토되지만 간혹 고인돌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본격적인 농경사회에 들어선 송국리유형 단계에 홈자귀가 가장 성행하였는데, 이는 그만큼 목제농경구(木製農耕具)의 생산이 활발하였음을 의미한다.

중국이나 대동강유역의 턱자귀〔有段石斧〕에서 발생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남한의 주상편인석부가 형식변화하여 기능이 향상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즉 역삼동유형(驛三洞類型) 및 흔암리유형(欣岩里類型) 단계의 주상편인석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형화되고 날의 반대면에 끈을 묶기 위한 홈이 생기면서 송국리유형 단계가 시작되기 직전에 홈자귀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홈자귀 각종

홈자귀 각종

이러한 송국리유형 단계의 홈자귀는 주상편인석부의 가장 발달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기능적인 면에서도 이전 시기의 주상편인석부에 비해 기능의 효율성이 향상되었다. 이후 덧띠토기〔粘土帶土器〕 단계에도 출토되지만, 송국리유형 단계에 비해 크기가 커지는 등 형식변화를 일으키면서 기능의 효율성은 낮아지는 바, 철기가 석기를 점진적으로 대체하는 현상과 관련된다.

분포지역을 보면 함경북도·량강도·자강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과 일본열도에 한정되며,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벌채석부·대팻날도끼·돌끌 등의 공구류는 중국에서 먼저 사용되었는데 비해 홈자귀는 한반도에서 처음 출현하여 유행한 독특한 석기이다. 일본열도의 야요이시대(彌生時代) 초기유적에서도 출토됨으로써 일본 야요이시대의 초기도작농경문화가 한반도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고고학적 증거의 하나이기도 하다. (배진성)

참고문헌

  • 유구석부에 대한 일고찰(노혁진, 역사학보 89집, 역사학회, 1981년)
  • 주상편인석부의 변화와 획기(배진성, 한국고고학보 44, 한국고고학회, 2001년)

동의어

유구석부(有溝石斧), 결입석부(抉入石斧), 오목자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