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드로잉

다른 표기 언어 drawing 동의어 소묘, 素描

요약 14세기까지 다른 미술에 종속되었으나 그 이후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장르로 독립했다. 오늘날에는 인체·공간·깊이·실재감뿐 아니라 감정 표현의 폭넓은 가능성을 보이는 것으로 인식된다.
아웃라인 드로잉은 조형적 표현과 공간을 선으로 정교하게 그리는 것이며 다양한 선들을 조합함으로써 개성적 표현을 얻을 수 있다. 단색 드로잉은 칼라 초크, 드로잉 잉크, 수채용 물감 등의 채색 재료를 사용하여 독특한 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
기본 스케치에 쓰인 점에서 드로잉과 다른 미술형식들 사이는 밀접하다. 척도, 비례, 주위 공간에 대한 인물의 관계 그리고 질서, 대칭, 균형 혹은 동적인 대비, 독특한 소실점, 개별 요소들의 강조에 따른 구성 등은 드로잉과 회화 모두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형식적 기준들이다.

목차

접기
  1. 바탕재료
  2. 도구와 기법
  3. 역사
드로잉
드로잉

가시적인 세계 속에 존재하는 대상들 뿐 아니라 개념·사고·태도·감정·환상, 나아가 상징과 추상적 형태 등을 평면 및 입체의 표면 위에 선으로 표현하는 것 일반을 지칭한다.

또한 이러한 정의는 회화에 국한되지 않고 매스와 색채보다는 형태와 형상을 특징적으로 강조하는 모든 유형의 그래픽 미술과 기법에도 적용된다. 드로잉은 재작업이나 복제가 가능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탕재료(대개의 경우 종이) 위에 직접 제작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시각예술의 기본으로서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 되거나 완성할 작품의 밑그림으로 쓰인다.

과거의 시각예술의 유물들이 발견된데다 연구가 더욱 진전됨에 따라 드로잉은 벽화, 패널, 책 삽화의 실질적인 기초가 되었음이 입증되었다.

14세기말까지만 해도 드로잉은 다른 미술형식에 개념적 또는 기능적으로 종속되었으나 그 이후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장르로 독립하게 되었다. 오늘날 드로잉은 인체·공간·깊이·실재감뿐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데 가장 폭넓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드로잉은 그 제작방식이 직접적이기 때문에 선의 사용에 따라 제작자의 개성이 즉각적으로 드러나므로 모든 미술형식 가운데서 가장 개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가와 대중들은 드로잉의 독자성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드로잉의 미술사료들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서양미술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드로잉에서의 선은 그 자체로서 표현되었다기보다 인체, 색면, 면 분할 등의 경계설정이나 대상의 재현적 표현수단이 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선은 대상을 재현하는 수단에서 독립하여 자율적인 요소로 인식되었다. 드로잉은 선으로 3차원의 대상을 평면 위에 표현하고 그것을 추상화시킨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상당히 정신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을 묘사하는데 있어 선을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시각적 해석이 달라진다. 예컨대 2개의 선이 다른 각도에서 만날 때 그것은 평면의 경계일 뿐이지만 또 하나의 선을 그었을 때는 3차원 덩어리의 개념을 얻게 되고 집적(集積)된 곡선은 공간의 깊이를 표현한다. 이집트·그리스 미술에 있어 외곽선을 강조하는 스케치 방식은 고대 말기와 중세 미술에서 의사소통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쓰였다.

그것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쓰였을 뿐 아니라 고전주의 시대의 거의 모든 대가들의 작품에 사용되었고 신고전주의에서 또다시 지배적인 형식이 되었다.

아웃라인 드로잉은 대상물의 조형적 표현과 공간 사이를 구분하는 선으로 정교하게 드로잉하는 것이다. 선의 다양한 굵기는 대상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며 선의 강도 변화로 빛과 그림자의 명암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 같은 각도의 선을 같은 방향으로 여러 번 긋거나 선들을 부분적으로 집중시키는 방식은 대상의 실재감보다는 회화적 표현의 효과를 더해준다.

짧은 곡선으로 이루어진 드로잉은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자코포 틴토레토의 작품에서 보이듯이 회화적·색채적 요소들을 두드러지게 하는 부드러운 구성을 이룬다. 19세기 점묘화가인 조르주 쇠라의 드로잉에서는 선이 점으로 분해되어 나타난다. 다양한 선의 특성들을 조합함으로써 고유한 개성적 표현을 얻을 수 있다. 심한 예각으로 강하게 내리그은 선들은 극적이고 표현적인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특징은 피렌체의 회화와 독일 표현주의 양식에서 두드러지며 렘브란트와 반 고흐의 드로잉에서도 잘 나타난다. 반면 우아하고 서정적인 특성을 지닌 부드러운 선은 초기 르네상스, 특히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작품들과 라파엘로의 초기 스케치, 대개 종교적 주제를 다룬 19세기 낭만주의 경향의 나자렛파의 작품들, 아르 누보의 양식 그리고 앵그르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한편 선을 그을 때 크레용과 같은 재료를 사용해 한가지 톤의 독특한 효과를 낼 수도 있고, 마른 상태나 젖은 상태에서 문질러 다양한 명암의 변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평면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붓질이다. 의 장점은 선의 굵기와 톤의 명암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며, 색채의 톤과 순도를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다. 같은 톤을 반복하여 적용하면 공간과 실재감을 나타낼 수도 있다. 붓으로는 공간과 대상을 묘사할 수도 있으며, 선 자체의 독자적인 특성으로 비구상적인 드로잉을 할 수도 있다.

단색 드로잉은 칼라 초크, 드로잉 잉크, 수채용 물감과 같이 다양한 채색 재료를 함께 사용하여 독특한 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료들은 드로잉의 기법을 풍부하게 해 줄 뿐 그 자체로 드로잉의 기본영역을 확대시키지는 못한다.

오랫동안 드로잉이 주로 기본적인 스케치에 쓰였다는 점에서 드로잉과 다른 미술형식들 사이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무엇보다 드로잉과 회화의 관계는 내용과 세부적인 형식에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척도, 비례, 주위 공간에 대한 인물의 관계 그리고 질서, 대칭, 균형 혹은 동적인 대비, 독특한 소실점, 개별 요소들의 강조에 따른 구성 등은 드로잉과 회화 모두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형식적 기준들이다.

바탕재료

드로잉은 파피루스와 양피지, 옷감, 목판, 금속판, 도자기 그리고 벽, 유리, 모래 등 다양한 재료의 평면 위에 그려진다. 그러나 15세기 이후에는 종이가 드로잉의 가장 일반적인 바탕재료로 사용되었다(→ 그라운드). 초기에는 흡수력이 좋은 한지가 많이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는 견고하고 자연스러운 외곽선이 있는 수제 종이도 많이 사용된다.

양피지
양피지

수채화용 종이는 백반이나 기름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면 성분의 것으로 양쪽면의 결이 다르다. 파스텔화에는 바탕표면의 결이 약간 거친 것이 좋으며 펜화에는 바탕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좋다. 목탄·초크·흑연과 같은 재료들은 종이의 종류에 그다지 제한받지 않으나 이러한 재료들은 접착력이 약하기 때문에 표면을 보호할 목적 이외에 드로잉한 것을 표면에 고착시키는 정착제가 필요하므로 그 위에 아라비아 고무용액을 바르거나 달걀 흰자를 발라주면 효과가 있다. 파스텔의 경우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표면의 미세한 입자들의 특징이 사라지게 되므로 가장 좋은 보존방법은 파스텔 드로잉에 유리 액자를 씌우는 것이다.

도구와 기법

드로잉 도구
드로잉 도구

드로잉의 도구로는 석필·목탄·철필·초크 등과 펜·연필·붓 등이 있다.

건조한 드로잉 도구는 선의 강약이나 밀도가 손의 압력에 따라 조절되기 때문에 수성도구에 비해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는 데 용이하다. 최근에는 수성과 건성 재료의 장점을 모아 만든 만년필·볼펜 등이 개발되어 드로잉에 사용된다. 수성과 건성의 재료들을 함께 사용할 수도 있는데, 예컨대 선묘적 부분은 건성의 재료를 사용하고 널찍한 면에 수성의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이다. 접착력이 약한 목탄은 문질러서 희미한 중간톤의 명암과 섬세한 변화를 표현하는 데 좋으며, 끝이 뾰족한 목탄연필로는 머리카락 만큼이나 미세한 선도 표현할 수 있다(목탄화). 접착력이 약하기 때문에 수정이 용이하지만 보존을 위해서는 정착액을 꼭 뿌려주어야 한다.

목탄은 다양한 포즈들을 쉽고 빠르게 표현할 수 있는 재료적 특성이 있어서 모델수업과 아카데믹한 작업에 많이 사용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유화의 밑그림으로 사용되거나 습작이나 스케치에도 사용되지만,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마네의 〈여인의 초상〉을 보면 의자의 나무결, 드레스에 장식한 모피, 머리결의 밀도 그리고 부드러운 피부묘사 등을 모두 목탄만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목탄만을 드로잉의 재료로 사용하는 작가는 많지 않으나 그 대표적 인물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파우투스 포터를 들 수 있다.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의 탁월한 작가들, 예컨대 드가·로트레크·콜비츠 그리고 바를라흐 등이 이것을 자주 사용했다. 초크는 목탄과 흡사한 재료로서 15세기말에 자연에서 채취되었다(초크화). 견고한 정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미세한 점으로부터 굵직하고 부드러운 선까지 나타낼 수 있다.

검은 초크를 만들 때 탄소를 섞듯이 안료를 첨가하여 만든 초크는 풍부한 검은색으로부터 갈색조의 회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농담(濃淡)을 낸다. 흰색의 초크는 대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때 악센트로서의 빛의 반사를 표현하기 위해 다른 재료들과 함께 쓰이며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드로잉의 재료로 쓰이지는 않는다.

초크는 다양하게 선의 굵기를 낼 수가 있고 미세한 농담을 내는 데 적합하기 때문에 15세기 때부터 습작과 스케치에 많이 사용되었다. 많은 탁월한 작가들이 흔히 초크를 이용한 드로잉을 했는데 인물화보다는 풍경화에 많이 사용되었다. 화학적 초크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초크 드로잉의 회화적 특성은 더욱 활용되어 목탄과 같은 건성 초크로부터 석판화에 사용되는 유성 초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드로잉 재료로 생귄(Sanguin)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부드럽고 물에 잘 녹기 때문에 문질러 균일한 면을 만들거나 물을 묻혀 선을 긋거나 가볍게 문질러 섬세한 농담효과를 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 붉은 색의 생귄은 산화물로 만들어진 것으로 선사시대 회화에서 사용되었는데 15세기까지는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15세기에 들어와 장 클루에, 홀바인 등의 초상화가, 루벤스 등의 플랑드르 화가들, 그리고 특히 18세기 프랑스 작가들이 애용했다. 초크 드로잉은 다른 색의 초크를 함께 사용하거나 채색종이에 그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17~18세기 프랑스에서 특히 유행했다.

장 앙투안 와토는 다양한 색의 조화를 탁월하게 나타냈고 3가지 칼라 초크를 이용한 작가로 니콜라스 랑크레, 장 에티엔 리요타르, 자크 앙드레 포르타이, 프랑수아 부셰 등이 있다. 파스텔은 색채의 섬세한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파스텔은 다양한 색채의 선묘(線描)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염소가죽이나 손가락으로 문질러 면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17세기에 이 기법이 구이도 레니에게 소개되었으나 18세기까지는 폭넓게 활용되지 못했다. 프랑스와 베네치아에서는 파스텔의 효과가 선묘적 드로잉보다는 색채회화에 가까운 이유로 인물화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드가는 드로잉의 재현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하는 자세로 복귀했다. 다양한 색채로 전반적인 중간톤을 내고 나서 선으로 강조하여 묘사하는 드가의 독특한 기법은 기존의 것과 다른 것으로 르동·모로·뷔야르·보나르 등의 작가들에게 수용되었다. 현대에는 매우 부드러운 표면의 금속판이나 유리 등의 표면에 그릴 수 있는 유성 초크가 개발되었고 이 재료는 파스텔과 흡사한 효과를 낸다.

20세기 영국의 조각가 헨리 무어는 딱딱한 표면 위에 펜이나 수채용 물감 등으로 드로잉의 가능성을 모색해 오다가 마침내 유성 초크로 높은 효과를 보게 되었다.

철필은 고대의 기록문서에 사용된 이래 필기와 선묘에 사용되었다(메탈 포인트). 부드러운 납으로 만든 철필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며 연한 회색톤의 색을 내며 지워지기 때문에 밑그림의 스케치에 매우 적합하다.

개별적인 부분이나 변질된 페이지 전체가 연필로 수정되기는 했지만 15세기 베네치아 화가 벨리니의 스케치북은 이 기법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보티첼리가 삽화를 넣은 〈단테의 신곡〉 역시 후에 흐려진 선들을 펜으로 수정하였다. 철필은 18세기에 들어와 특히 건축 드로잉에서 투시도나 설계도에 사용된다. 은첨필은 납침보다 영구적이며 수정이 불가능하므로 드로잉 할 바탕의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다(은첨필). 이것 역시 엷은 회색톤이지만 산화되면서 밤색으로 변하고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그릴 형태를 미리 확실히 해야 하고, 수정할 경우 흔적이 남고 지나친 압력은 바탕에 균열을 만들기 때문에 균일한 힘으로 그려야 한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은첨필 드로잉은 15세기와 16세기에 많이 사용되었다. 뒤러는 이 기법으로 풍경과 인물을 비롯한 다양한 대상을 묘사하였다. 이 기법은 15세기에서 17세기의 인물 드로잉에, 18세기 낭만파 시대에 다시 사용되었고 아직도 현대작가들 사이에서 이따금 사용되고 있다.

16세기말 흑연이라는 새로운 재료가 등장하여 스케치와 밑그림에 금속침 대신 사용되었다.

콩테는 1790년 경 니콜라스 자크 콩테가 고안해낸 것으로 정제된 흑연에 섞는 진흙의 비율에 따라 딱딱함의 정도가 다양하게 조절된다. 끝이 단단하고 견고하여 깨끗하고 가는 선을 낼 수가 있으므로 신고전주의낭만주의의 뛰어난 거장들의 의도에 적합했다.

19세기 후반 들라크루아처럼 회화적 경향이 강한 작가들은 드로잉에서 특정부분을 조형적으로 두드러져 보이게 하려고 부드러운 연필을 많이 사용했다. 반면에 쇠라는 거리를 두고 보면 혼색이 되어 보이는 색점으로 이뤄진 점묘기법을 흑연을 사용한 단색 드로잉에 적용시키기도 했다(신인상주의). 종이를 거친 표면 위에 놓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는 프로타주는 초현실주의 작가 에른스트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졌고, 드로잉에서 형태를 창출해내는 것이 손에 의한 것만이 아님을 시사해 주었다.

다색 크레용은 19세기말부터 널리 사용되었고 검은 흑연의 장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흑연과 혼합되지 않아 초크보다 강한 색감을 나타낸다. 클림트와 피카소의 드로잉을 보면 선의 고유한 특성들이 살아 있고 독자적 형태를 지님을 알 수 있다.

음각화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남긴 행위의 기록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원시 아프리카 문화에서 선사시대의 뼈와 돌에 새겨넣은 드로잉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장식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를 도자기 위에 새겨서 장식하는 기법은 수천년 계속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금속도구나 용구의 세부장식, 특히 그리스 시대의 거울, 로마 왕조 말기의 보석장신구, 중세 병기 그리고 르네상스 갑옷에 이르기까지 이 기법과 흡사한 형식을 보인다. 액체 염료에 의한 드로잉에는 펜과 붓이 드로잉 기법에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된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붓이, 서양에서는 고대 이래로 이 드로잉의 도구로 애용되었다(펜화). 가장 오래된 펜은 갈대펜으로 파피루스나무와 대나무를 잘라 만든 것인데 필선이 독특하게 강하고 단단하여 르네상스 시대에 작가의 개성적 표현을 위한 일반적인 재료로 부각되었다. 렘브란트는 갈대펜에 또다른 펜이나 또는 붓을 첨가하여 강하고 조형적인 악센트의 효과를 냈다.

19세기초의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 및 많은 화가들이 갈대펜으로 강렬하게 그린 드로잉을 제작했고, 게오르크 그로츠 같은 표현주의 화가도 이 도구를 자주 애용했다. 서양미술에서 드로잉이 부각되기 시작한 중세말 이래 깃펜은 액체염료를 사용하는 드로잉의 가장 일반적인 도구로 사용되었다. 깃펜의 부드러운 끝은 다양한 강도의 선을 낼 수가 있고 비교적 넓은 굵기의 선을 처리할 수 있다. 펜 드로잉에는 점성이 적은 다양한 종류의 잉크가 사용되는데 중세 때에는 걸넛 잉크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철과 황산에 아라비아 고무 용액을 섞어 만든 것으로 많은 시간이 경과하면 황산이 종이를 변색시켜 뒷면에 흔적을 남기게 된다. 다만 공장에서 제조된 화학 잉크만이 필요한 이온 밸런스를 갖고 있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방지할 수 있다. 필기용으로는 적절치 않으나 드로잉 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비스터 잉크가 있으며 물에 잘 용해되고 흐린 것으로부터 어두운 것에 이르기까지 투명한 갈색을 낸다.

바로크 시대가 도래한 17세기부터 18세기초까지 이 잉크는 드로잉에 앞서 바탕을 엷게 칠하는 보조 재료로 종종 사용되었다. 한편 은 물을 조절함에 따라 깊고 풍부한 검은색에서 엷은 회색까지 낼 수 있으며 세월이 지나도 변색하지 않는다. 이것은 19세기 이래로 기교적인 스케치의 펜화에서 모든 염료를 대신하여 가장 일반적인 재료가 되었다.

필사본에 쓰인 펜 드로잉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랜 예술적 기록물이다. 이미 고전주의 시대에 견고한 외곽선과 부분적인 장식으로 필사본에 그림이 들어갔으며 중세시대에 펜으로 가장자리의 장식그림이나 책의 삽화를 넣었다. 붓으로 그린 매우 묘사적인 양식의 책그림 역시 펜화 방식으로 그려졌다. 16세기에 펜화를 이용한 미술이 크게 발전했는데레오나드로 다 빈치는 과학드로잉으로 세밀한 선을, 라파엘로는 형태의 다양함을 표현하는 느슨한 선을, 미켈란젤로는 끌작업을 연상케 하는 짧은 선을 사용하는 등 자신의 재능에 맞는 가능한 형식의 영역을 넓혔다.

뒤러는 순수하게 선묘적인 드로잉에서 모델링에 이르기까지 펜 드로잉의 모든 가능성에 숙달하여 많은 작가들을 고무시켰다. 16세기말, 특히 마니에리스모 양식에서 종종 표현되는 주관적인 표현의 드로잉은 공간적인 부조화와 인체를 지나치게 수직적으로 늘여 표현하는 등 작가의 개성을 강조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17세기에는 펜이 붓 등 다른 도구와 함께 드로잉에 이용되었는데 특히 렘브란트는 드로잉에서 다양한 펜과 붓을 조화시키고 붓놀림에 차이를 두어 아주 미묘한 조형적 특징을 이루어냈다(워시 드로잉). 18세기 전반에 걸쳐 또다른 기법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회화적인 양식에서 펜화로 대상의 골조를 표현한 것이며 선묘적 드로잉은 습작이나 밑그림에 보다 많이 사용되었다.

18세기 말의 신고전주의에서는 가는 외곽선을 두르는 드로잉이 재인식되어 중요시되었는데 나자렛파와 낭만주의 화파들은 초기 르네상스방식, 즉 가는 선으로 모델링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적용시켰다. 외곽선에 머리카락과 같은 필치 또는 같은 방향으로 반복되는 선 등 순수한 회화적 수단에 의해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다 회화적인 측면에서 드로잉은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며 작가의 손에 의한 개성적 표현이라는 인식하에 19세기에는 상당히 발전하게 된다.

마티스피카소가 입체적인 일루전을 거부하는 최소한의 선으로 대상을 표현한 반면, 영국의 아르누보 작가인 오브리 비어즐리는 드로잉에서 강한 흑백의 대조를 보인다. 러시아 태생의 화가 칸딘스키의 비구상적 구성에서는 선이 독자적인 형식 요소로서 독립되어 드로잉의 새로운 테마를 제공했다.

그리고 20세기 독일의 작가 볼스는 손이 약간만 움직여도 진동하는 자동기술적 진동기를 만들어 재현적 미술이라는 전통적 개념의 드로잉을 넘어서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역사

드로잉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고대와 중세에는 다른 미술형식을 위한 종속적인 수단으로 발전했다. 당시 드로잉은 중세고딕 건축과 모자이크나 벽화의 밑그림 스케치 또는 조각상과 부조에 대한 준비그림이나 건축 드로잉에 사용되는 보조수단이었다. 자율적인 예술적 기록물로서의 드로잉의 역사는 14세기말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드로잉 자체가 독자적인 발전을 이룬 것은 아니며 화가·삽화가·조각가 또는 건축가 등의 뛰어난 거장들에 의해 드로잉은 보편적으로 지역성과 시대적 양식에 발맞추어 발전하였다.

따라서 다른 미술형식에 나타난 양식적 현상은 드로잉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드로잉은 그러한 특성들을 드로잉 자체의 매체적인 특징을 통해 다른 예술형식들과는 다른 해석과 표현을 이루었다. 드로잉은 초기 르네상스시대에 북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독자적 예술형식으로 인정되었다.

15세기초 당시의 국제적인 양식인 부드러움이 개별적인 장인들의 필체에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역적·작가적 개성이 드로잉에 서로 다르게 표현된 것은 15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이때부터 시대에 따라 다른 특징과 기본적인 기준의 변화가 뚜렷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알프스 북부에서 제작된 드로잉에서는 회화적으로 압축하여 표현하는 경향과 부분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특징이 나타났다. 많은 화가의 드로잉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하우스부흐'라는 이름 외에는 달리 알려지지 않은 독일의 거장과 그와 동시대 작가인 마르틴 숀가우어의 작품이다.

마르틴 숀가우어(Martin Schongauer)
마르틴 숀가우어(Martin Schongauer)

두 사람 모두 판화가이기 때문에 그 작품이 밑그림 스케치인지 아니면 독립된 드로잉인지는 식별하기가 어렵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드로잉은 다양한 예술영역의 양식을 가르는 분기점의 면모를 명백하게 보여준다(르네상스 미술). 이 시대 작가들이 보편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독자적인 드로잉 제작이 아니라 스케치와 대상 연구의 중요성이었다. 드로잉과 회화의 주제적 연관성이 매우 높았고 그것은 예비적인 것이 아닌 경우에도 그러했다.

베네치아와 북부 독일의 거장들은 드로잉에서도 작가의 상상력에 부응하는 회화적 효과를 내기 위해 유연하고 분절적인 선묘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개방된 형태를 선호했다. 이와 달리 이탈리아 중부지역, 특히 피렌체에서는 폐쇄된 견고한 외곽선의 형태와 정적이고 조형적인 특성이 지배적인 명료한 외곽선을 지닌 드로잉을 제작했다.

드로잉의 기능적인 목적에 따라 작가들의 개인 작업실은 드로잉 제작의 중심이 되었다. 개인 작업실에서 드로잉은 창조적인 연구뿐 아니라 작업구상과 완성된 작품 사이의 연구와 그 매개의 역할을 했다. 또한 드로잉에서는 거장 밑에서 일하는 조수를 지도하는 역할과 개인 작업실의 전통을 형성하고 보조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가 과학적 관심을 가지고 많은 드로잉 작품을 밀도있게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인체에 대한 이상적인 드로잉들은 그 자신보다는 그의 조수와 추종자들이 더 많이 남겼다.

라파엘로미켈란젤로 역시 완숙한 작품을 위한 구상을 표현하기 위해 드로잉을 사용했고 모두 수준높고 독특한 드로잉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라파엘로는 부드럽고 뭉툭한 선을 사용하는 반면에 미켈란젤로는 조각적인 강하고 분절적인 선을 사용했다. 수많은 드로잉이 라파엘로의 작업실에서 제작된 듯한데, 그것은 주로 라파엘로가 판화를 제작하기 위해 그린 밑그림이었던 것 같다.

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Raffaello Sanzio da Urbino)
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Raffaello Sanzio da Urbino)

알프스 북부 지역의 독립된 형식의 드로잉은 모든 기법과 경향을 익힌 뒤러에 의해 생겨났다.

그의 드로잉의 특성은 회화 작품에서까지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16세기의 드로잉에서 보다 자유롭고 폭넓은 회화적 양식을 보여준 그뤼네발트를 비롯한 독일 미술의 보편적 양식의 특성에 잘 어울린다. 한스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에는 회화적인 개념이 놀랄 만큼 치밀하게 잘 나타나 있으며 16세기 영국에 체류하고 있던 그의 추종자들을 통해 여러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와 유사하며 덜 딱딱한 선묘방식으로 인해 홀바인보다 덜 개성적이기는 하나 프랑스의 초상화가 장과 프랑수아 클루에도 홀바인의 영향을 받았다. 베네룩스 지역에서도 이탈리아의 이상화된 이미지와 결합시킨 풍경 드로잉이 제작되었는데 내세에 관한 풍경 드로잉에 있어 뒤러의 기법이 오랫동안 그의 선배인 피테르 브뢰헬에 의해 유행하였다.

드로잉은 마니에리스모 시대(1525~1600경)에도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예술적 창조의 기록으로서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수단으로서 중추적인 의미를 획득했다. 피렌체의 자코포 폰토르모, 북부 이탈리아의 파르미자니노, 그리고 베네치아의 틴토레토는 끝이 뾰족한 도구나 펜을 써서 자유로운 표현을 나타냈다.

그들의 드로잉은 내용과 선묘적인 방식에 의한 섬세한 외곽선과 대담한 원근법적 축소의 측면에서 그들의 회화작품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17세기초 프랑스의 자크 칼로는 뛰어난 상상력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대담한 생략법을 이용해 펜으로 묘사했다. 예술가의 성장과 인식 지평을 확대시키는 드로잉의 중요성은 루벤스의 창조적인 완벽한 업적을 이루는 스케치와 연구작업이 두드러진 루벤스에 의해 확인된다.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회화적인 주제와 형식의 개념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그는 장인과 판화가를 위한 학교를 운영했다. 그의 주변의 플랑드르 화파 중에서 자코프 조르댕과 안토니 반 데이크는 고유의 기법을 지닌 뛰어난 거장들이다. 17세기에 헤르쿨레스 세헤르스는 판화제작중에 드로잉과 에칭에 의한 풍경화를 고안해냈다. 그는 기법과 형식면에서 볼 때 네덜란드의 대가 렘브란트에게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세헤르스는 특히 〈구약성서〉의 주제에 대한 해석과 드로잉 기법의 이해를 결합시켜 독특한 장르를 만들었다. 그의 작업실에는 다른 작가와 마찬가지로 드로잉이 학습의 역할과 형식적 연구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17세기 이탈리아 특히 볼로냐를 중심으로 드로잉은 아카데미에서 연습과 실험의 방식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의미있는 것은 풍경화가 지속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화가 클로드 로랭은 로마의 전원풍경 드로잉을 발전시켰으며 자연의 대상물 연구와 이상화시킨 회화적 개념이 독특하게 결합되어 있어 그러한 방식은 그만의 독자적인 장르로 인정된다.

로랭처럼 푸생 역시 야외에서 풍경화를 제작했는데 그는 다양한 기법으로 실제의 경험과, 인물·풍경을 이상적으로 구성하는 인본주의적 개념을 조화시킨 풍경화를 제작했다. 와토 역시 회화작품을 위한 많은 드로잉을 제작했다.

시기에 따라 변모되는 그의 회화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의 초기 드로잉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장대한 규모와 회화적 요소에 대한 숙고는 18세기를 풍미했던 정신에 루벤스의 기법을 혼합한 것이다. 18세기 전반에 프랑스 미술을 이끌었던 작가들은 인물화·풍속화 및 풍경화를 그렸던 부셰, 프라고나르, 위베르 로베르 그리고 가브리엘 드 생토뱅 등이다. 18세기말~19세기초에 스페인의 화가 고야가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시대를 앞서 갔다.

궁정화가들의 그림과는 달리 기묘한 대조를 이루는 형식으로 붓과 생귄으로 그린 드로잉은 그의 에칭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드로잉에서 티에폴로의 빛으로 반짝이는 듯한 효과와 렘브란트의 극적인 효과의 음영을 혼합시켰다. 19세기에 들어와 영국 만화가이며 사회비판적 풍자화가인 토머스 롤런드슨은 다양한 색채의 많은 수채화를 제작했다.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까지도 드로잉 양식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적 이상과 함께 선묘적 요소가 재강조되었다.

단단한 연필로 그린 고전주의적 양식의 선묘가 다시 유행되었는데 앵그르를 그 대표적 화가로 꼽을 수 있다. 나자렛파와 로마의 낭만주의 화파 그리고 알프스 지역의 화파들은 독일 북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보다 서정적 표현을 쓰지만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은 엄격했다. 19세기 미술가들 가운데 선묘적 기법을 중요시한 작가로는 독일의 모리츠 폰 슈빈트와 영국의 존 밀레즈이다.

들라크루아의 드로잉은 활달한 필치를 통해 보다 회화적 경향을 보였다. 프랑스 역시 드로잉 기법의 선두적 역할을 해왔는데 그 점은 드가, 로트레크, 반 고흐와 세잔의 개인적인 노트에 잘 나타나 있다. 드로잉의 선묘적 요소의 중요성은 쇠라가 나타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게 되면 타시슴과 같은 양식적 조류를 제외하고 드로잉은 모든 작가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그것은 현대미술 자체와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양식이었다. 다른 예술형식이 비재현적 경향 즉 외부세계의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별개의 자율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드로잉 역시 다른 예술형식으로부터 독립되어 독자적인 작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드로잉은 건축·조각 그리고 회화의 보조작업 이상으로 인식되었다. 몇몇 화파와 작가들은 개별적이고 내밀한 방식으로 드로잉을 제작했다.

예컨대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은 강렬한 선묘와 힘있고 과장된 형태의 묘사를 통해 역동적인 방식의 드로잉을 제작했다. 이런 작가들로는 에른스트 바를라흐, 케테 콜비츠, 알프레드 쿠빈, 에르네스트 루트비흐 키르히너, 칼 슈미트 로틀루프, 막스 베크만 그리고 게오르크 그로츠가 있다.

청기사파의 칸딘스키는 비재현적인 선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데 최초의 토대를 만든 작가이다. 클레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드로잉은 펜화에 있어 전대미문의 극치를 보여주어 현대 드로잉에 있어 매우 탁월한 작품으로 인정된다. 프랑스에서 드로잉은 특히 에콜 드 파리 출신의 화가들에 의해 중요한 형식으로 간주된다. 다양한 기법의 가능성들을 자유자재로 이용했던 피카소의 작품에서도 드로잉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는 20세기의 미술과 드로잉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의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