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미자니노

파르미자니노

다른 표기 언어 Parmigianino 동의어 지롤라모 프란체스코 마리아 마촐라, Girolamo Francesco Maria Mazzola
요약 테이블
출생 1503년 1월 11일, 밀라노 공국 파르마
사망 1540년 8월 24일, 크레모나 카살마조레
국적 이탈리아

요약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개발한 화가로 주요 작품은 <성녀 카타리나의 신비한 결혼>. 초기에는 파르마파 코레조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으며 로마에서 제작한 작품에서는 라파엘로의 후기 양식을 극도로 발전시켰다. 파르미자니노는 16세기 베네치아 바깥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초상화가 중 한명이기도 했다. 그는 가늘고 우아한 형태와 뛰어난 기교로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구사했는데 미술사가 바사리는 이러한 파르미자니노의 양식적 특징을 '세련미'라고 표현한 바 있다.

코레조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그가 초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코레조임이 틀림없다. 주요작품인 〈성녀 카타리나의 신비한 결혼 Mystic Marriage of St. Catherine〉(1521경)을 보면 코레조의 영향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1522~23년경 2편의 프레스코 연작을 그렸는데, 하나는 파르마에 있는 산조반니에반젤리스타 교회의 두 예배당에 그린 것으로 교회의 돔과 펜덴티브의 대형 벽화는 같은 시기에 코레조가 제작했다. 다른 하나는 파르마 외곽에 있는 폰타넬라토 성의 천장에 그린 〈디아나와 악타이온의 전설 Legend of Diana and Actaeon〉이다. 이 작품의 구성은 파르마의 카메라디산파올로에 있는 코레조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

1524년 그는 볼록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록한 패널에 담은 유명한 자화상을 포함하여 3점의 작품을 가지고 로마로 갔고 이 작품들은 교황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로마에서 제작한 대표적 작품으로는 〈성 히에로니무스의 환상 Vision of St.Jerome〉(1527)이 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몸매와 얼굴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점에서 라파엘로의 영향이 보다 지배적이라 할 수 있다. 1527년 〈성 히에로니무스의 환상〉을 제작하던 중 로마를 약탈한 제국 군대의 방해로 작업을 중단하고 볼로냐로 갔다. 그곳에서 걸작 중 하나인 〈성모와 성녀 마르가레트와 여러 성인들 Madonna with St.Margaret and Other Saints〉을 그렸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환상(Vision of St.Jerome)
성 히에로니무스의 환상(Vision of St.Jerome)

1531년 파르마로 돌아가서 남은 생애를 보냈는데, 후기의 주요작품으로는 〈목이 긴 성모 Madonna dal Collo Lungo〉(1534)와 산타마리아델라스테카타 교회의 돔에 그린 프레스코가 있다. 후자의 작품은 거대한 규모의 교회의 장식계획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그가 제작을 극도로 지체했기 때문에 결국 계약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목이 긴 성모(Madonna dal Collo Lungo)
목이 긴 성모(Madonna dal Collo Lungo)

파르미자니노는 16세기에 베네치아 밖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초상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잔 갈레아초 산비탈레 Gian Galeazzo Sanvitale〉(1524)·〈안테아 Antea〉(1535경~37) 등 젊은 여성을 그린 뛰어난 초상화 중 몇 점이 현재 나폴리의 카포디몬테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양식은 가늘고 우아한 형태와 뛰어난 기교로 가장 화려하고 널리 알려진 마니에리스모 양식의 하나였다. 그것은 전성기 르네상스 고유의 자연주의 원칙을 약화시키고 라파엘로의 후기 양식을 극도로 발전시킨 것이었다.

잔 갈레아초 산비탈레(Gian Galeazzo Sanvitale)
잔 갈레아초 산비탈레(Gian Galeazzo Sanvitale)

그의 작품의 특징은 모호한 공간적 구조와 길게 변형시킨 인물형태, 그리고 자연미를 초월하는 율동적·감각적인 아름다움으로서, 미술사가인 바사리는 이 3번째 특징을 '세련미'라고 표현했다. 특히 가느다란 형태를 통한 우아미의 추구는 회화에서뿐만 아니라 많은 데생에서도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처음으로 에칭을 사용한 이탈리아 화가의 한 사람으로 주로 수요가 많은 자신의 드로잉을 복제하기 위해 에칭을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