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주의

신인상주의

다른 표기 언어 Neo-Impressionism , 新印象主義

요약 인상주의자들이 빛과 색채의 순간적인 효과를 좇아 자연을 임의로 묘사한 것에 반해 신인상주의자들은 과학적 광학 이론에 따른 색채 구사를 통해 엄격한 형식의 그림을 그렸다. 신인상주의를 이끈 사람은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였으며, 그밖에 앙리 에드몽 크로스·알베르 뒤부아 필레·막시밀리앙 뤼스 등이 있다.
분할주의와 점묘파라는 용어는 대조적인 색채의 물감을 화폭에 점점이 찍는 쇠라의 기법을 말한다. 이 점들은 멀리서 바라보면 1가지 색채로 어우러지도록 과학적으로 선택되었으며, 점들의 일정한 크기는 그림의 전체 크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치밀하게 계산되었다.
1890년대에 신인상주의의 영향력은 차츰 줄어들었으나, 빈센트 반 고흐·폴 고갱·앙리 마티스 등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화가들의 화풍과 기법에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인상주의의 경험론적 사실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체계적인 계산과 과학이론을 이용하여 미리 정해진 시각효과를 얻고자 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과 색채의 순간적인 효과를 좇아 자연을 임의로 묘사한 것에 반해 신인상주의자들은 과학적인 광학 이론에 따른 색채 구사를 통해 엄격한 형식의 그림들을 그렸다. 신인상주의를 이끈 사람은 이 양식을 창시한 이론가이자 가장 중요한 화가였던 조르주 쇠라와 그의 충실한 동료였던 시냐크였다.

조르주 쇠라가 그린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가 그린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그밖에 신인상주의 화가들로는 앙리 에드몽 크로스와 알베르 뒤부아 필레, 막시밀리앙 뤼스, 테오 반 레이셀베르흐가 있고, 인상파 화가인 카미유 피사로도 잠시 이 운동에 가담했었다. 이들은 1884년에 '독립미술가협회'(Société des Artistes Indépendants)를 결성했다.

분할주의와 점묘파라는 용어는 대조적인 색채의 물감을 화폭에 점점이 찍는 쇠라의 기법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색점들은 멀리서 바라보면 1가지 색채로 어우러지도록 과학적으로 선택되었다. 온통 이런 색점들로만 뒤덮인 화폭은 선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형태를 뚜렷이 나타내며, 묘사된 모든 대상들은 흔들리는 강렬한 빛을 흠뻑 받고 있다.

이 점들의 일정한 크기는 그림의 전체 크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치밀하게 계산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대상을 흐릿하고 몽롱하게 묘사한 반면, 신인상파 화가들은 견고하고 분명하게 묘사했고, 주의깊게 짜인 대상들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형태를 되도록 단순화 시켰다. 신인상주의의 그림에 나타난 빛의 성질은 인상파의 그림처럼 밝고 찬란했지만, 전체의 효과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채 움직이지 않는 기념비와 같았다. 인상주의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빛을 묘사했지만, 신인상주의는 그 덧없는 빛을 붙잡아 결정체로 만들었다.

폴 시냐크는 후기 작품에서 그의 시적 감수성과 좀더 어울리는 분할법을 더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쇠라는 색채와 형태의 표현적 특성을 과학적 공식으로 바꾸는 등 그림과 기법에 관한 다양한 문제를 연구하는 이론적인 시도를 계속했다. 1890년대에 이르자 신인상주의의 영향력은 차츰 줄어들었다.

그러나 신인상주의는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및 앙리 마티스를 비롯한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예술가들이 각각 그 독자적인 화풍과 기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