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런드슨

롤런드슨

다른 표기 언어 Thomas Rowlandson
요약 테이블
출생 1756. 7, 영국 런던 올드주리
사망 1827. 4. 22,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화가·풍자만화가.

18세기의 영국생활을 묘사하면서 골동품 수집가, 노처녀, 술집 여급, 그러브 거리의 삼류 문필가 등, 그당시의 낯익은 사회적 유형을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의 주인공들 중에는 공들여 다듬은 머리 모양에 넓은 장식끈이 달린 정장을 차려 입고 거대한 가슴과 엉덩이를 과시하며 우스꽝스러울 만큼 잘난 체하는 여자들도 있고, 길게 늘어진 손수건으로 우울한 기분을 나타내며 감상에만 젖어 있는 여자들도 있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롤런드슨은 왕립 아카데미 학생이 되었다. 16세 때 파리로 그림을 공부하러 갔고, 초상화가로 화실을 차린 뒤, 모자라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풍자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얼마 후에는 이것이 그의 주요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윌리엄 의 시에 덧붙인 〈교장선생님의 시찰 The Schoolmaster's Tour〉이라는 연작 드로잉은 예술출판업자인 루돌프 애커먼이 창간한 〈포이티컬 매거진 Poetical Magazine〉(1809~11)에 발표되었다. 애커먼은 롤런드슨의 주요고객이었다.

화가와 작가 및 출판업자의 이같은 협동작업은 신택스 박사가 등장하는 인기있는 연속출판물을 낳았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을 찾는 신택스 박사의 순회여행〉(1812)·〈위안을 찾는 신택스 박사의 2번째 순회여행〉(1820)·〈아내를 찾는 신택스 박사의 3번째 순회여행〉(1821)은 이 3명의 공동작품이다. 그들은 또한 〈죽음의 영국식 무도〉(1815~16)와 〈삶의 무도〉(1816~17)도 제작했다. 롤런드슨은 스몰렛과 골드스미스 및 스턴의 책에 삽화를 그렸다.

그는 밑그림을 그릴 때 대개 갈대펜으로 윤곽을 그린 뒤, 물감을 엷고 섬세하게 칠했다. 그런 다음 이 밑그림을 구리판에 새기고, 대개는 전문적인 재판공에게 넘겨 애쿼틴트 처리를 한 뒤 인쇄된 그림에 손으로 마지막 채색을 했다. 말년에 수준이 떨어지는 드로잉을 대량으로 제작하여 명성을 잃었으나 전성기의 작품은 윤곽이 생기에 가득 차 있고 인간의 약점을 재미있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