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암행어사

[ 暗行御史 ]

시대명 조선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을 받고 지방행정의 잘잘못과 민심 및 백성의 생활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던 임시직책.

수의(繡衣) 또는 직지(直指)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 초에는 행대(行臺) 또는 찰무(察務) 등의 이름으로 지방에 조사관을 파견했으며 세종 대에는 임명과 행동이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관리를 파견했다. 중종 대에 들어 비밀리에 어사를 파견하는 경우가 늘어났으며 명칭도 암행어사라고 불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암행어사의 파견에 대한 반대의견도 강해 선조 대까지는 별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왜란과 호란으로 정치의 기강이 흐트러짐에 따라 인조 이후 암행어사의 파견이 빈번히 이루어지면서 상설 제도화되다시피 했다. 특히 18, 19세기 삼정의 문란으로 민란이 자주 발생하자 이를 수습하고 민심을 회유할 목적으로 자주 파견되었다.

암행어사에게는 역마를 사용할 수 있는 증명서인 마패와 형구의 크기 등을 검열할 수 있는 유척(鍮尺, 놋쇠로 만든 자)이 지급되었다. 암행어사는 왕의 명령을 직접 집행하므로 관리의 파면 및 직무의 정지, 옥에 갇혀 있는 죄인의 재판, 백성의 고통과 청원의 처리 등 모든 문제를 현지에서 즉결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으며 그 결과를 서면으로 왕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당쟁이 치열해지면서 암행어사 역시 자기가 속해 있는 당파나 인연이 있는 가문의 관리를 두둔하는 등 문제점을 발생시켰으며, 하급관리들의 부분적인 비행만을 들춰내는 데 그쳐 근본적인 행정개혁이나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