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동학

[ 東學 ]

시대명 조선

1860년 가 창시한 종교.

이라는 이름은 당시 서방 종교인 천주교를 이라고 부르는 데 대해 동방의 학문, 즉 조선의 학문이라는 뜻을 붙인 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동학에는 단지 서학에 반대하는 사상뿐만 아니라 봉건 사회질서와 신분제도에 토대를 둔 유교 윤리를 반대하는 사상도 포함되어 있다. 동학의 발생과 확대는 조선 후기 농업·상업·수공업·광업 등에서 나타난 일련의 변화와 신분제 붕괴 등 봉건사회의 해체현상, 민중의식의 성장, 그리고 천주교의 전파에 따른 위기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던 사회의 현실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민중의 의식에 바탕을 둔 종교의 출현이 요구되었으며, 특히 19세기 중반 계속된 민란의 과정에서 나타난 이념과 조직의 필요성은 동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동학의 중심사상은 「한울님을 모시고(시천주(侍天主)), 나라를 지키고 을 평안하게 한다.(보국안민(輔國安民))」는 데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울님이란 절대적 신이 아니라 인간화된 존재로 「사람은 곧 하늘(인즉천(人卽天))」이며 「하늘의 마음은 곧 사람의 마음(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이다. 따라서 「사람을 받드는 것이 곧 하늘을 받드는 것」이요 「하늘과 사람은 하나」라는 인간중심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보국안민의 표방 아래 지상에 천국을 건설한다는 동학의 이념은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동학이 민간에 퍼지자 정부는 「세상을 현혹시키고 백성을 기만한다(혹세무민(惑世誣民))」고 하여 동학을 사교(邪敎)로 탄압하고 1864년 3월 최제우를 체포해 처형했다. 그러나 2대 교주 때 최제우가 지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출판하고 교리를 더욱 구체화하는 한편 곳곳에 포교조직인 포·접을 두면서 동학은 더욱 확대되었다. 포와 접에는 포주·접주를 두었으며 그 위에 도접주·대접주를 두어 여러 포를 통솔했다. 동학의 교세는 급속히 확대되어 1878년(고종 15)경에는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강원·경기지역까지도 포교조직이 성립되었다. 그중 전라도지역의 교세가 가장 번성했는데 이는 이 지방이 농민의 몰락·영세화가 가장 심각하게 진행되었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학조직에 농민의 참여가 크게 늘어나면서 종교적 이념 못지않게 사회개혁을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데 대한 관심도 높아져 갔으며 이러한 경향은 후에 갑오농민전쟁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