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노장은 불교에서 나이 많고 덕이 높은 승려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노장은 오랫동안 불도를 닦은 노승(老僧)이다. 하지만 가면극에서는 파계승으로 형상화된다. 노장은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퇴계원산대놀이, 봉산탈춤, 가산오광대, 진주오광대, 남사당 덧뵈기에서는 노장이라 불리고, 강령탈춤, 은율탈춤에서는 노승, 고성오광대에서는 중,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는 중광대로 지칭된다.
노장은 검은 탈에 송낙을 쓰고 먹장삼을 입고, 그 위에 다홍가사(紅袈裟)를 걸치고 염주를 목에 걸고, 한 손에 삼불제석이 그려진 부채를 들고 한 손에 육환장을 짚고 등장한다. 노장은 수도 생활을 하다가 세속에 내려와 소무에게 반하여 파계(破戒)를 한다. 노장은 먼저 땅에 엎드렸다가 염불장단에 맞추어 일어나는 춤으로 시작하여, 굿거리장단으로 소무와 어울려 논다. 그러다가 취발이가 등장하면 소무의 치마가랑이 속으로 들어가 부채만 내놓고 얼굴을 감춘다. 이어 취발이와 대결하다가 취발이에게 패하여 퇴장하게 된다.
노장은 대사 없이 몸짓과 춤으로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노장은 취발이와 대결하다가 취발이에게 패하여 퇴장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 관계 유형은 봉산탈춤,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강령탈춤, 은율탈춤, 남사당 덧뵈기 등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에 약간의 지역적 차이만 보이면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본산대놀이 가면극과 해서탈춤에서는 파계승과장인 노장과장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등장인물도 많다. 노장과장은 먹중들과 노장이 티격태격하는 노장춤, 노장과 신장수가 승강이를 벌이는 신장수춤, 노장과 취발이가 대결하는 취발이춤 등 여러 삽화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양주·송파 등 별산대놀이에는 이밖에도 옴중과장, 연잎·눈끔적이과장, 염불놀이과장, 침놀이과장, 애사당법고놀이과장 등 중이 등장하는 삽화가 계속 이어진다. 야류와 오광대에서는 노장과장이 축소되어 있다.
본산대놀이 가면극과 해서탈춤의 노장과장에는 노장, 소무, 먹중, 취발이, 신장수, 원숭이가 등장한다. 노장과장은 노장이 파계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먹중들이 노장을 놀이판으로 끌고 나와 욕보인다. 먹중들은 노장의 제자이지만 원래 풍류를 즐기고 놀기 좋아하는 자들이다.
먹중 1 : (노장 쪽을 가리키면서) 저 동편을 바라보니 비가 오실랴는지 날이 흐렸구나.
먹중 2 : 날이 흐린 것이 아니다. 내가 자서히 들어가 보니 옹기장사가 옹기짐을 버트려 놨더라.
먹중 3 : 내가 이자 자서히 들어가 본즉 숯장수가 숯짐을 버트려 놨드라.
먹중 4 : 내가 이제 자서히 들어가 본즉 날이 흐려서 대명(大蟒, 대망)이가 났더라.
먹중 5 : 사실이야 대명이 분명하더라.
먹중 6 : 대명이니 숯짐이니 옹기짐이니 뭐니뭐니 하더니, 그것이 다 그런 게 아니고 뒷절 노(老)시(스)님이 분명하더라.
인용문과 같이, 먹중들은 노장의 정체를 계속 반복해 확인한다. 먹중들은 자기들이 자세히 살펴본즉 노장이 흐린 날씨, 옹기짐, 숯짐, 대망이로 보인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그것이 노장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먹중들이 노장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여러 번 반복하여 정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노장은 검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비유된다. 노장은 가면부터가 시커멓고 의상도 검은 회색의 칡베 장삼을 입었으니, 검은색의 대상물로 비유되는 것이 당연한 듯도 싶다. 그러나 사실은 정체확인형식의 극적 전개를 통해, 노장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속성 자체가 검고 부정적인 인물로 풍자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노장은 먹중들이 데려온 소무에게 미혹되어 파계를 한다. 계율과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던 노장이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노장은 소무를 차지하기 위해 불교의 상징인 염주를 소무에게 주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소무를 차지한 노장은 소무와 어울려 흥겹게 춤을 추고, 신장수를 불러 소무의 신을 사준다. 그리고 신장수를 위협해 쫓아버리고 신 값을 떼어먹는다.
이때 취발이가 등장해 노장으로부터 소무를 빼앗으려고 한다. 새로운 생활의 기쁨을 발견한 노장은 소무를 빼앗으려는 취발이와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 취발이는 술 잘 먹고, 춤 잘 추고, 놀기 좋아할 뿐만 아니라, 힘이 천하장사이고, 돈도 많다. 결국 노장은 취발이에게 패하여 쫓겨나고 만다. 취발이는 노장을 힘으로 내쫓고 금전으로 소무를 유혹하여 차지한 후 아들을 낳는다. 신체적·경제적·성적인 힘을 가진 취발이를 통해서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근대적 민중의 전형을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노장과장은 노장이 지닌 초월적인 관념론의 허무함을 비판하고, 먹중이나 취발이가 지닌 세속적 사고의 중요성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나례의 구나(驅儺) 형식과 취발이와 노장의 관계는 관련된 모습을 보인다. 노장은 가면부터가 시커멓고 음흉한 모습이다. 봉산탈춤에서 노장이 놀이판에 입장하다가 자취를 감추었을 때, 먹중들은 노장을 흐린 날씨, 옹기짐, 숯짐, 대망이(큰 뱀) 등 검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비유한다. 이는 노장이 물리쳐야 할 사회적 재앙으로 간주되는 인물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취발이가 노장을 쫓아내는 극적 형식은 나례에서 나자(儺者)가 귀신을 쫓아내는 구나 형식과 대응된다.
강이천(姜彛天, 1769-1801)의 한시 〈남성관희자(南城觀戱子)〉에서는 18세기 행해진 본산대놀이 가면극의 내용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강이천이 기록한 상좌춤·노장춤·샌님 포도부장춤·거사 사당춤·영감 할미춤의 내용은 오늘날의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에서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
노장스님 어디서 오셨는지?(老釋自何來)
석장을 짚고 장삼을 걸치고(拄杖衣袂裕)
구부정 몸을 가누지 못하고(龍鍾不能立)
수염도 눈썹도 도통 하얀데(鬚眉皓如鷺)
사미승 뒤를 따라오며(沙彌隨其後)
연방 합장하고 배례하고(合掌拜跪屢)
이 노장 힘이 쇠약해(力微任從風)
넘어지기 몇 번이던고?(顚躓凡幾度)
한 젊은 계집이 등장하니(又出一少妹)
이 만남에 깜짝 반기며(驚喜此相遇)
흥을 스스로 억제치 못해(老興不自禁)
파계하고 청혼을 하더라.(破戒要婚娶)
광풍이 문득 크게 일어나(狂風忽大作)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즈음(張皇而失措)
또 웬 중이 대취해서(有僧又大醉)
고래고래 외치고 주정을 부린다.(呼號亦恣酗)
위 인용문은 현재의 노장과장에 해당한다. 노장이 젊은 여자에게 반해 파계하면서 청혼하는 내용이다. 노장의 가면에 대해 수염과 눈썹이 온통 하얗다고 묘사하며 늙은 중임을 말한다. 인용문 뒷부분에서는 '술 취한 중' 즉 취발이가 등장해 주정을 부린다. 지금도 양주별산대놀이와 봉산탈춤 등의 노장과장에서 노장이 소매를 차지한 후 취발이가 나와서 노장으로부터 소매를 뺏기 위해 노장과 싸우는데, 이 시에서도 노장이 소매를 차지한 후 술 취한 중 즉 취발이가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취발이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정현석의 『교방제보(敎坊諸譜)』에도 〈승무〉라고 하여 노장과장과 동일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노장은 취발이의 거듭된 세찬 도전에 직면해서, 이미 정상적인 중이기를 포기하면서 완강히 저항한다. 그러나 힘에 밀려 상대와 현실적인 타협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노장은 젊은 여자를 사이에 두고 취발이라는 속세의 인물과 대립하는 인물이다.
노장 양주별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의 노장은 제6과장 노장의 제1경 파계승놀이, 제2경 신장수놀이, 제3경 취발이놀이에 등장하여 먹중들에 의해 그 정체가 확인되고 희롱 당한다. 노장은 새롭게 등장한 소무 두 사람을 보고 현혹되어 다가가 유혹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노장은 송낙과 장삼을 벗어 던지고 노름을 해서 돈을 딴다. 그러자 소무들은 노장의 옷을 들고 오라는 손짓을 하며 그를 받아들인다. 노장은 옷을 입고, 소무들에게 장삼띠를 매어주고 염주를 걸어주면서 같이 어울려 춤을 춘다. 두 명의 소무에게 접근해서 욕망을 충족시키지만, 취발이의 도전을 받아 소무 한 명을 취발이에게 양보하고 다른 한 명의 소무와 도망치듯 물러난다. 숭고한 존재라기보다는 파계승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정현석의 『교방제보』에도 노장의 상대역으로 소기(少妓) 두 명이 등장한다. 이는 봉산탈춤, 덧뵈기(남사당패)의 노장과장에서 소매가 두 명 등장하는 점과 일치한다. 『교방제보』에서 신을 가지고 기생을 유혹하는 내용도 양주별산대놀이와 봉산탈춤의 노장과장에서 노장이 신장수에게 신을 사서 소매에게 주는 내용과 유사하다.
양주별산대놀이의 노장탈은 얼굴 바탕은 검은색이며, 얼굴 전체에 흰색과 붉은색의 작은 점이 무수히 찍혀 있다. 양쪽 볼에 큰 점이 하나씩 부착되어 있고, 눈썹 가운데에 작은 점이 있다. 그리고 세 줄의 깊은 주름이 있다. 눈초리는 좌우로 안정되어 있다. 입은 타원형으로 매우 크며, 약간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송파산대놀이의 노장은 제7과장 노장놀이에 등장하는 인물로 오랫동안 불도를 닦은 노승(老僧)이다. 회색 바지저고리에 회색 장삼을 입는다. 다리에도 회색 행전을 치고 어깨에 빨간색 가사를 메었으며 머리에 송낙을 쓴다. 목에는 백팔염주를 걸고 한 손에 육환장을 다른 한 손에는 흰색 부채를 들고 있다. 노장과장에서 노장은 팔먹중에 의해 놀이판으로 등장하며 팔먹중들에게 심한 야유와 조롱을 받는데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두 명의 소무를 보자 본능적 욕망이 생겨 파계를 하는 파계승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노장탈은 바탕이 검은색이고 이마에는 세 줄의 굵은 주름이 있다. 눈썹은 전체에 흰색과 녹색 줄이 쳐 있고, 눈초리가 좌우로 처져 있으며 눈 속은 흰색이다. 광대뼈가 높이 솟아 있고, 주먹코와 넓적하고 아래로 처진 붉은 입술을 가지고 있다. 코 아래로는 흰 점이 전면에 불규칙하게 찍혀 있다.
퇴계원산대놀이의 노장은 늙은 중으로서 소무에게 빠져들어 파계하는 대표적인 파계승이다. 노장은 제7과장 팔먹중과 노장놀이에 나오는데, 회색 바지저고리에 검은색 베 장삼을 입고 붉은 가사를 두른다. 머리에는 송낙을 눌러쓰고, 백팔염주를 목에 걸고, 손에는 흰 부채와 지팡이를 들고 등장한다. 퇴계원산대놀이에서 옴중·먹중·상좌 등이 각기 다른 깨끼춤을 추며 판을 한 바퀴 돌면서 등장을 한다. 그러면 관중(완보)이 등장을 해서 불도를 반상(反常)하는 먹중들을 꾸짖으며 계도를 한다. 이때 노장이 상좌와 같이 등장을 한다. 먹중들은 노장이 내려온 것을 보고 혼비백산을 한다. 관중이 상좌를 보내 누구인지 알아오라고 보냈으나 상좌는 노장인 것을 알고 혼비백산하여 부산을 떤다. 또한 옴중도 가서 노장을 보고 혼비백산을 한다. 이때 관중이 알아보려 하지만 옴중과 먹중이 가지 말라고 한다. 이를 뿌리치고 가서 노장인 것을 알고 노장을 달래서 절간으로 올려 보내려고 먹중들을 불러 백구타령을 부르면서 모시려고 한다. 이때 장난기와 흥이 많이 있는 옴중이 훼방을 놓아 노장이 노하여 옴중을 엎어놓고 곤장을 때리게 한다. 먹중들은 화가 풀린 노장을 데리고 민가로 내려가서 노장이 파계하게 유도한다.
퇴계원산대놀이의 노장탈은 흑색의 바탕에 성난 입(못마땅하여 심술이 드러나 보이는 입 모양)을 한 탈이다. 눈과 입은 아래로 처지고 아래턱을 둥글게 앞으로 내밀었다. 이마와 콧등, 양 볼과 턱에 주름이 있고, 눈썹과 수염은 노란 반점으로 되어 있다.
봉산탈춤의 노장은 제4과장 노장춤의 제1경 노장춤, 제2경 신장수, 제3경 취발이춤에 등장하여 파계승의 역할을 한다.
제1경 노장춤에서는 먹중들이 노장의 육환장을 어깨에 메고 노장을 끌고 개복청으로부터 타령곡에 맞춰 탈판으로 들어온다. 노장은 어느 정도 끌려오다가 지팡이를 슬며시 놓고 멈추어 선다. 먹중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대로 지팡이를 메고 가다가 노장이 없는 것을 알고 차례로 노장을 찾아 나선다. 그러면서 노장이 있는 데를 다녀와서는 날이 흐렸다느니, 옹기짐을 벗어 놓았다느니, 숯짐을 벗어 놓았다느니, 대망이 나왔다느니 하다가, 여덟째먹중이 자세히 본즉 노장님이시더라고 하며 함께 백구타령과 오도독이타령을 불러준다. 이어 먹중들이 다시 노장을 모시지만, 노장은 탈판 가운데쯤에서 쓰러진다. 먹중들이 노장을 찾다가 노장이 죽었다고 하여 염불을 외면서 재를 올리자 노장이 다시 살아난다. 그러면 먹중들이 퇴장하고 소무가 남여를 타고 들어온다. 남여에서 내린 소무가 도드리곡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하면, 생불(生佛)이라는 칭송을 받던 노장이 소무의 요염한 교태와 능란한 유혹에 빠져, 드디어는 자기의 염주까지 걸어주는 파계 과정을 대사 한마디 없이 춤과 무언극만으로 표현한다.
제2경 신장수춤에서는 노장과 소무가 한참 맞춤을 추고 있을 때 신장수가 등장한다. 노장이 신장수를 불러 소무의 신을 사는데, 신짐 속에서 원숭이가 튀어나와 신장수와 수작을 하다가 신 값을 받아 오라는 말에 노장에게 가서 소무 뒤에 붙어 외설스러운 짓을 한다. 원숭이가 신 값 대신 "신 값을 받으려면 장작전 뒷골목으로 오너라"라는 편지를 갖다 보이자 장작찜을 당하겠다고 여긴 신장수는 도망간다.
제3경 취발이춤에서는 두 손에 푸른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한쪽 무릎에 큰 방울을 달고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등장한 취발이가 노장에게 면상을 얻어맞고 정신을 차려 보니 중이 소무를 데리고 노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꾸짖는다. 취발이가 춤으로 내기를 하여 이기면 소무를 뺏기로 작정을 하고 노장과 춤을 겨루지만 이기지 못하고 끝내는 때려서 내쫓는다. 취발이는 소무에게 돈으로 환심을 사서 사랑춤을 추고, 그 결과 소무는 취발이의 아이를 낳는다. 취발이는 아이에게 마당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천자문과 언문을 가르쳐 준다.
봉산탈춤의 노장탈은 검푸른 바탕색에 흰점과 금색점을 눈 아래 얼굴 전면에 찍었고, 내민 입술은 붉다. 흰색으로 눈썹을 표시하고 눈은 금종이와 검은 선을 둘렀으며, 백색으로 흰 눈자위를 나타냈다. 미간에 두 개, 볼에 두 개, 아래턱에 세 개의 혹을 만들고 금종이를 발랐다.
강령탈춤에서는 노장을 노승이라 부른다. 노승은 제7과장 노승춤에 등장한다. 칠베장삼에 붉은 가사(袈裟)를 메고, 목에서부터 배까지 늘어뜨린 긴 염주를 걸고, 머리에 송낙을 쓰고 있다. 손에 6개의 고리가 달린 커다란 육환장을 들고, 모란꽃이 그려져 있는 부채로 얼굴을 가린다. 대사는 하지 않고 춤과 행위로만 구실을 한다. 노승은 소무의 미색에 현혹되어 염주와 붉은 가사를 소무에게 걸어주며 소무를 유혹하는 파계승으로, 팔먹중과 취발이의 '정체확인 사설'을 통해 노승의 정체가 드러나며, 강자이자 젊고 힘이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취발이에게 소무를 빼앗기고 쫓겨난다. 따라서 노승은 중의 신분으로 소무에게 현혹되어 본분을 망각함으로써 풍자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취발이의 공격에 제대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소무를 쉽게 포기하고 쫓겨 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강령탈춤에서 노장이 등장하는 과장은 제1경 팔먹중춤, 제2경 노승춤, 제3경 취발이춤으로 세분되는데, 과장을 주도하는 인물이 팔먹중→노승→취발이로 바뀌어 가는 것을 나타낸다. 지역적으로 내용에 차이가 있으나, 노승이 산에서 내려와 환속(還俗)을 하고, 팔먹중에 의해 정체가 확인되며, 미모의 여성에게 반한 노승이 본분을 망각하게 되어 여인을 취하여 함께 즐기지만, 젊은 남성의 등장으로 그에게 여성을 빼앗기고 쫓겨 가는 구조가 일반적이며, 노승이 무언의 인물이라는 점도 공통된다.
노장 봉산탈춤
강령탈춤의 노승탈은 진한 감청색의 바탕에 누런색의 큰 반점이 얼굴·코·이마·턱에 여러 개 찍혀 있다. 눈은 타원형에 끝이 뾰족한 상태로 약간 아래쪽을 향하고, 주위에 흰색의 굵은 선이 그려져 있다. 눈썹은 길고 약간 아래로 처져 있는데, 흰색의 작은 점으로 그렸다. 볼에 있는 누런색의 큰 점 주위에는 작은 흰 점이 여러 개 찍혀 있다.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 있고 입은 살짝 벌린 상태로 큰 편이며, 입술은 두껍고 붉은색이다. 머리에는 먹중과 마찬가지로 가운데를 묶은 형태의 송낙을 쓰고 있다.
은율탈춤에서는 노장을 노승이라 부른다. 제5과장 노승춤에 나오는 인물로, 신분은 승려이다. 회색 바지저고리에 장삼을 입고 머리에는 송낙을 쓴다. 백팔염주와 목탁을 목에 걸고, 붉은 가사를 어깨에 메었으며, 다리에는 회색 행전을 치고, 한 손에는 육환장을 든다. 다른 가면극에서 노승은 시종 무언이나 은율탈춤의 노승은 중타령을 부르고, 『천수경(千手經)』의 내용을 진언(眞言)으로 소리 내어 외는 장면이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노승은 산간에서 내려와 속세(俗世)를 이리저리 구경하고 나서 광덕산(廣德山) 청룡사(靑龍寺)로 가는 도중에, 국화주를 취하게 먹고 기력이 없어 비틀거리며 놀이판에 당도하여 쓰러진다. 그리고 중중모리장단에 맞춰 중타령을 부르고, 『천수경』의 진언을 외면, 말뚝이와 최괄이가 등장하여 노승을 비웃는 시늉을 하고 있다가, 새맥시를 데리고 나와 대꽃타령과 병신난봉가를 부른다. 새맥시는 말뚝이와 최괄이가 대꽃타령을 부르는 동안 교태스런 춤으로 노승을 유혹하려 하나, 노승은 이리저리 피하기만 한다. 이러기를 여러 번 하다가 노승은 드디어 새맥시의 교태에 도취되어 멍청히 바라보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대꽃타령 마지막 부분에 일어나 새맥시에게로 다가가 안으려고 한다. 이어 말뚝이와 최괄이가 병신난봉가를 부르는 동안 노승은 새맥시의 주위를 돌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새맥시는 노승을 바라보면서 교태스런 춤으로 대무한다. 말뚝이와 최괄이의 노래가 거의 끝날 무렵, 노승은 "놀아난다 놀아난다. 뒷절 중놈이 놀아를 난다. 별 수 없네, 별 수 없네, 새맥시한테는 중놈도 별 수 없네"라며, 자신을 희롱하는 노래에 크게 노하여 말뚝이의 면상을 장삼으로 후려친다. 그러면 최괄이가 노승을 때려서 내쫓고 새맥시를 차지하여 돔부리장단에 맞춰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다른 가면극에서는 이 대목에서 소무가 취발이의 아이를 낳고, 취발이는 아이를 안고서 아이 어르는 소리를 한다.
은율탈춤 노승탈의 바탕색은 회색이고 얼굴에 다섯 개의 혹을 가지고 있다. 이마 가운데에 큰 혹이 하나 있고, 그 양옆에 작은 혹이 하나씩 붙어 있고, 양 볼에도 혹이 하나씩 있다. 은율탈춤의 가면은 얼굴에 큰 혹을 많이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보통 가면에 3-6개의 혹이 표현되어 있다. 혹의 맨 위는 황금색이고 그 아래로 녹색·붉은색·회색·검은색의 테를 둘렀는데, 이는 오방색(五方色)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고성오광대에서는 노장을 중이라고 부른다. 중은 고성오광대 제4과장 승무과장에 등장한다. 중은 속세의 연정을 이기지 못하고 기생의 유혹에 빠진다. 먼저 선녀(소무) 두 명이 손을 잡고 등장하여 무대 양편에 마주 선다. 뒤를 이어 절 만(卍)자가 그려진 고깔을 쓴 중이, 회색 칡베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목에 염주를 걸고 등장하여 두 선녀의 중앙에 위치한다. 중은 이마의 한가운데 큰 점이 찍혀 있고, 듬성듬성 콧수염이 난 누런 탈을 썼다. 두 선녀는 놀이판의 양편에 마주 서서 거의 위치를 이동하지 않고, 시종 부드럽고 섬세한 여성적인 춤사위로 춤을 춘다. 중은 두 선녀 사이에서 승무를 한바탕 춘다. 그리고 한 선녀에게 접근하여 선녀의 어깨에 한삼을 걸치고 치근대다가, 한 번은 어깨, 한 번은 등을 마주 대고 희롱한다. 다시 중은 선녀의 양손을 잡고 마주 돌거나, 자기의 긴 소매와 선녀의 소매를 얽히게 하여 춤을 추는 등 선녀를 유혹하는 동작을 한다. 이를 다른 선녀에게도 반복한다. 주로 중은 두 선녀의 중앙에서 늘어진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큰 춤사위로 승무를 추다가, 두 선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일직선의 동선을 그린다. 이를 몇 차례 반복한 후, 중이 양손에 각각 선녀들의 손을 잡고서, 처음 등장했던 방향으로 세 명이 함께 퇴장한다. 이는 서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종교의 구도자가 오히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상황을 풍자하는 내용으로서, 시종 대사가 없이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허종복의 제보에 의하면 현재는 중이 한 명만 등장하지만, 고성오광대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기 전에는 두 명의 중이 등장했다고 한다.
고성오광대 중탈의 얼굴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살이 찐 듯 얼굴 전체가 둥글게 만들어져 있다. 눈은 타원형으로 뚫려있는데 그 위에 입체적인 눈썹이 그려져 있고, 눈초리는 아래로 약간 쳐진 형태이다. 붉은 입술이 여자의 입술처럼 가늘고 고우며 이는 없다. 부처님 귀를 연상시키는 8자 모양의 큰 귀가 좌우에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사용하는 탈에는 미간의 큰 점이 일부 지워져 반달의 형태를 하고 있다.
가산오광대의 노장은 제5과장 중과장에 상좌와 함께 등장하여 탈판을 빙빙 돌다가 서울애기를 발견하는데 성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 파계하게 된다. 노장은 은가락지를 보여주는 등 온갖 방법을 써서 서울애기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 이어서 노장은 서울애기를 업고 달아나는데 상좌는 뒤에서 노장을 부축하며 퇴장한다. 이후 양반의 명령에 따라 말뚝이에게 붙들려온 노장은 신분의 차이에 따라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리고 중신세타령을 부르며 법문을 떠나야겠다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가산오광대의 노장탈은 짙은 회색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검은 눈썹이 나 있다. 눈과 입은 구멍을 뚫었고 입술은 살구색이다. 눈 옆에 구멍을 뚫어 고무줄을 연결하여 목에 걸친다. 코는 삼각형으로 덧붙여 입체적이다. 귀는 검은색으로 탈의 양 옆면에 그려 놓았다.
진주오광대에서 노장은 소무를 유혹하여 춤을 추다가 영감에 의해 징치된다. 가산오광대에서는 양반과 중의 대립을 통하여 유교와 불교의 갈등을 다룬 놀이마당과 영감과 할미와 첩 사이의 삼각관계를 다룬 놀이마당을 분화시켰지만, 진주오광대에서는 복잡한 인물구성을 통하여 한 마당에서 이 두 주제를 통합적으로 형상화했다. 이러한 현상은 18세기 서울 산대놀이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노승이 미녀를 보고 파계하고, 취승이 나타나 주정을 부릴 때 양반이 등장하여 노승을 질책하면, 무부가 나타나 유생과 노승을 내쫓고 미녀를 차지하고서 호쾌한 칼춤을 추었다. 연쇄적인 구성법에 의하여 승속(僧俗)의 갈등, 유교와 불교의 갈등, 문무(文武)의 갈등을 혼합시킨 것이다. 중과 상좌가 함께 어울리지는 못하고 한쪽에서 저들끼리 춤을 추고 있다가, 틈을 보아 중은 상좌를 버려두고 팔선녀 둘에게 수작을 걸면서 함께 마주 춤을 춘다. 가사 장삼도 벗어 놓고, 염주 죽장마저 던져 버리고, 두 선녀와 어우러져 춤이 무르익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춤추며 물러나고, 남녀 세 명만 남아서 정겹게 춤춘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노장은 중광대라고 부른다. 중광대는 속세를 떠나 구도하는 자의 엄숙함과 자비로운 모습이 없고, 본능적 삶을 즐기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파계승마당에서 등장하는 중광대는 부네의 오줌 냄새를 맡고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불교적 계율을 어기고 본능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즐기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재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중광대는 송낙을 쓰고 회색 바지저고리 차림에 행전을 치고, 끌릴 정도의 긴 회색 장삼을 입는다. 장삼 위로는 왼쪽 어깨에 큼직한 붉은 가사를 걸치며, 버선과 짚신형 가죽신을 신었다. 목에는 나무 염주를 걸었다. 이러한 중광대의 모습은 전형적인 중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광대의 복식은 실제 행동에서의 중답지 못한 모습과 배치가 된다.
중탈은 얼굴 전체 바탕이 대춧빛이며, 머리 부분과 눈썹은 검은색을 칠한 흔적이 있다. 양쪽 뺨과 눈초리에 주름살이 새겨져 있고 두 눈은 실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입은 한껏 벌어져 있다. 이마 미간에 백호(白毫)처럼 작은 혹이 있고 코는 매부리코로 오뚝하다. 턱은 따로 노끈으로 매어 달아 움직인다. 가늘게 뜬 실눈과 박장대소하듯 맘껏 벌린 입에서 계율을 어기고 파계한 중의 능청스러움과 엉큼함이 드러나 있다. 이마 미간에 자리한 작은 혹은 부처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백호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중탈은 196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중광대 하회별신굿탈놀이
노장 남사당 덧뵈기
남사당 덧뵈기에서 노장은 남사당 덧뵈기 연희의 넷째마당인 먹중잡이의 먹중으로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나와서 타령장단으로 피조리를 데리고 한동안 춤을 춘다. 이때 취발이가 등장하여 먹중과 수작하며 서로 대무하다가 먹중이 취발이에게 밀려나 퇴장한다. 그러면 취발이는 피조리와 더불어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다가 피조리 둘을 얼싸안고 퇴장한다. 먹중잡이에서 먹중과 피조리는 재담 없이 모든 행위를 묵극의 형식으로 드러낸다. 취발이는 잽이와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취발이는 자신을 가리켜 "여기저기 싸다니며 한푼 두푼 모아다가 갑자거리 취발내고 내새복에 치부하고 중놈 급살탕국 멕이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취발이는 먹중에 대하여 격렬한 공격을 퍼붓는다. 한편, 취발이와 대결하는 먹중은 춤을 능수능란하게 춤으로써 세속인(世俗人) 이상의 현실성을 드러낸다. 결국 싸움은 취발이의 승리로 돌아가는데, 먹중은 데리고 놀던 피조리들을 그대로 둔 채 달아난다. 취발이는 다시 피조리들과 어울린다. 먹중잡이에서 먹중은 다른 가면극의 노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결국 먹중잡이는 승려의 타락과 현실지향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취발이의 승리를 통하여 현실적인 세계관의 확장이라는 의의를 보여주고 있다.
북청사자놀음에서 대사(大師)는 사자의 소생을 기원하는 인물이다. 북청사자놀음 사자춤중장에서 사자가 쓰러지면 그때까지 등장했던 모든 배역들이 나와서 사자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늘어선다. 이때 대사가 승복을 입고 손에는 목탁을 들고 들어와 불경을 외우며, 사자가 소생하기를 기원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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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어
노승, 대사, 중, 중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