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탈춤

해서탈춤

[ 海西- ]

황해도 일대의 가면극을 해서(海西)탈춤이라고 부른다. 해서탈춤은 1930년대까지만 해도 봉산·사리원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쪽 지대인 기린·서흥·평산·신계·금천·수안, 북쪽 지대인 황주, 서쪽 지대인 안악·은율·재령·신천·송화, 남쪽 지대인 강령·옹진·연백·해주 등지에서 전승되고 있었다. 황해도에서는 5일장이 서는 거의 모든 장터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가면극을 초청해 놀았다고 한다.

해서탈춤은 가면·의상·춤사위·대사의 유형으로 보아, 기린·서흥·봉산·재령·신천·안악 등지의 가면극을 대표하는 봉산탈춤형과 옹진·강령·해주 등지의 가면극을 대표하는 해주탈춤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봉산탈춤형의 가면은 기본 재료인 종이를 잘 활용해 형태나 색채 면에서 조형 감각이 뛰어나며, 팔먹중가면과 취발이가면은 비사실적인 귀면형(鬼面型)으로 요철(凹凸) 굴곡이 심하다. 그러나 해주탈춤형은 사실적인 인물 가면으로 요철이나 혹이 많지 않고 눈망울만 크다. 봉산탈춤형의 기본 의상은 좌청(左靑), 우홍(右紅)의 원동에 초록색 소매를 단 등거리를 나삼 위에 입은 후 붉고 푸른 띠를 매는 것이다. 그러나 해주탈춤형은 주로 회색의 칡베 장삼을 입는데, 소매는 팔을 내리면 땅에 닿을 정도로 길다. 봉산탈춤형의 춤사위는 장삼 소매를 휘어잡고 뿌리거나 한삼을 경쾌하게 휘뿌리면서 두 팔을 빠른 사위로 굽혔다 폈다 하는 깨끼춤이 기본이다. 그러나 해주탈춤형의 춤사위는 느린 사위로 긴 소매를 고개 너머로 휘두르는 동작이다.

먹중춤

먹중춤 봉산탈춤

북한에서는 1960년대 중반 이후 그들의 문화정책에 의해 해서탈춤의 전승을 중단시켰다가, 1988년 무렵부터 다시 봉산탈춤을 복원해 공연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월남한 연희자들에 의해 봉산탈춤·강령탈춤·은율탈춤이 계속 전승되어 왔다.

한국 가면극의 악사는 원래 예전부터 지역에 따라 무부(巫夫), 재인촌의 재인, 악사청의 악사, 농민, 연희자를 겸하고 있는 악사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서울의 본산대놀이는 총융청의 공인, 양주별산대놀이는 양주 관아의 악사, 송파산대놀이는 무부를 초청하여 삼현육각의 음악 반주를 맡겼다. 동래야류수영야류에서는 농악대의 풍물재비들이 악사를 담당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농민이었다. 고성오광대의 반주 악기는 꽹과리, 징, 북, 장고 등이어서 농악기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악사는 농민이었다. 그러나 통영오광대의 반주 악기는 꽹과리, 징, 북, 장고 등이어서 농악기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나, 악사는 원래 통제영의 취고수청에 속해 있던 악공들로서, 무계 출신들이었다.

사자춤

사자춤 은율탈춤

노장과 취발이

노장과 취발이 강령탈춤

해서탈춤에서는 재인촌의 재인을 초청하여 삼현육각의 음악 반주를 맡겼다. 그래서 산대놀이와 해서탈춤의 악사는 전문적 연주자로서 연희자와 분리되어 있고, 앉아서 반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이 연주하는 삼현육각은 피리·대금·해금 같은 선율악기가 있어서 농악기로만 연주하는 것보다 음악성이 풍부하다. 전문적 악사들이 앉아서 연주하는 음악 반주는 가면극의 춤사위, 노래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현전하는 가면극 가운데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와 봉산탈춤, 강령탈춤의 춤사위가 뛰어나고 다양하게 세분되어 있으며, 삽입가요가 많으면서 그 가락이 좋은 것이다.

황해도와 평안도에는 재인촌이 있었다. 박은용의 평남 지방 재인촌에 대한 조사 기록, 『조선의 취락』에 소개된 황해도의 구(舊) 백정 부락에 대한 기록, 그리고 재인촌 사람들의 여러 활동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재인촌의 재인들은 북방민족인 양수척의 후예였다. 특히 황해도와 평안도의 재인촌 사람들은 삼현육각의 악기연주, 줄타기, 땅재주, 작대기 재주, 서도소리 등 재인으로서의 활동, 고리버들 제품·체·바디 등의 수공업 제품 생산, 기생의 배출 등 고려시대 양수척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봉산과 강령에서는 재인촌의 재인들이 탈춤의 반주를 담당했고, 은율에서는 탈춤의 반주는 물론 연희자로도 활동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봉산탈춤의 보유자였던 최경명은 원래 은율의 재인촌 출신으로서 악기를 잘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취발이 역과 말뚝이 역 등 연희도 했는데, 매우 뛰어난 연희자였다. 재인들은 원래 악기만 잘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줄타기, 땅재주, 작대기 재주, 서도소리, 성주고사 등에도 능했으므로, 해서탈춤의 노래와 춤 및 연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해서탈춤에는 산대놀이와 같이 중 가면이 많고, 다른 지역과 달리 귀면탈에 혹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가면의 크기가 대부분 비슷하고 가면의 재료는 종이를 많이 쓴다. 해서탈춤에서는 가면극이 끝나면 가면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다음 해에는 다시 만들어 사용했다.

참고문헌

  • 김일출, 『조선민속탈놀이연구』, 평양 : 과학원출판사, 1958.
  • 서연호, 『황해도탈놀이』, 열화당, 1996.
  • 이두현, 『한국의 가면극』, 일지사, 1979.
  • 전경욱, 『한국의 가면극』, 열화당,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