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무

소무

[ 小巫 ]

소무는 탈춤의 주요 등장인물로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봉산탈춤, 강령탈춤,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진주오광대, 가산오광대 등에 등장한다. 은율탈춤의 새맥시, 고성오광대의 선녀,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부네, 남사당 덧뵈기피조리산대놀이해서탈춤 노장과장의 소무에 해당한다. 소무는 젊은 여자, 특히 유녀(遊女)이기 때문에 인물이 매우 좋다. 흰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은 것이라든가 새색시처럼 고운 옷을 입은 것도 소무의 기녀(妓女)적인 면을 돋보이게 한 것이다. 대체로 소무는 한 사람이지만 송파산대놀이에서는 두 명이 등장한다.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소무는 남자들(취발이·영감)의 정부(情婦)로서 등장한다. 즉 수도승을 파계시키는 기녀이거나 본처를 불행하게 만드는 첩의 역할을 한다.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는 조선 전기에 궁궐에서 거행하던 나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례는 『고려사』에 소개된 고려시대의 궁중나례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방상시, 12지신 이외에 판관, 조왕신, 소매 등 새로운 배역이 등장한다. 이 중 소매는 당나라 중엽 이후 중국의 나례에서 방상시를 대신해 구나의식의 중심 역할을 맡았던 종규의 여동생이다. 중국 송나라 시대의 나례에는 종규와 함께 소매가 나온다. 즉 중국과 한국의 나례에 모두 소매(小妹·小梅)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소매를 '小妹' 또는 '小梅' 두 가지로 표기하고 있다.

또한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誌)』 권1 「성기(聲伎)」 조의 "연극에는 산희(山戱)와 야희(野戱)의 두 부류가 있는데 나례도감에 소속된다. 산희는 다락을 매고 포장을 치고 하는데, 사자, 호랑이, 만석중 등이 춤을 춘다. 야희는 당녀(唐女)와 소매(小梅)로 분장하고 논다"라는 내용에서, 나례도감에 속하는 연극에 당녀와 소매를 등장시켜 노는 야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야외놀이화한 연극적 놀이에 당녀와 소매가 등장하는 것이다. 양주별산대놀이에도 왜장녀와 소무가 등장하므로, 이 야희는 가면극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용재총화』의 나례와 『경도잡지』의 야희에 나오는 소매는 현존하는 대부분의 가면극에 등장하는 인물인 소무와 관련이 있다. 이미 김학주는 『경도잡지』의 야희에 나오는 소매(小梅)를 가면극의 소매로 간주하고, 이는 중국과 한국의 나례에 등장하는 인물인 소매(小妹)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가면극의 소무를 나례의 소매에서 유래한 인물로 보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우선 가면극의 소무가 소매의 와전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소무'라는 용어는 1920년대 후반에 학자들이 가면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소매'를 무당으로 오인해 '소무(小巫)' 또는 '소무당(小巫堂)'으로 표기한 데서 비롯되었다. 1928년 여름 강릉단오제를 조사한 일본학자 아키바 다카시(秋葉降)는 후일 그의 논문 「강릉단오제(江陵端午祭)」에서 강릉관노가면극 가운데 양반광대의 상대역인 여성을 '少巫閣氏(somai-kak,'i)'라고 표기했다. 한자로는 '少巫'라고 썼지만 발음은 분명히 '소매(somai)'라고 표기했다. 소매각시를 무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발음이 '소매'임에도 불구하고 표기는 '少巫'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민속학자 임석재의 회고담에서도 똑같이 엿볼 수 있다.

경복궁에서 박람회가 개최된 1929년 9월에 당시 경성제국대학의 학생이었던 임석재는 같은 대학의 사회학 교수였던 아키바 다카시가 경복궁에서 가면극 공연이 있으니 와보라고 연락해 양주별산대놀이를 구경했는데, 얼마 후 그의 요청으로 양주별산대놀이의 연희자인 조종순(趙鍾洵)으로부터 대사를 채록했다고 한다. 임석재는 최근 그의 회고담에서 "소무는 무당 후보쯤 되는 어린 무당이라고 생각해서 썼는데, 후에 다른 기록들을 보니까 소매각시라는 술집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 있는 것을 보아도 소무보다는 소매가 훨씬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위와 같은 나의 잘못된 점을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얘기했으나, 후학들이 좀처럼 고치지 않고 고수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1928년 여름에 이미 강릉단오제를 조사한 바 있었던 아키바 다카시가 다음해 겨울 임석재와 함께 양주별산대놀이를 조사하고 대사를 채록하면서, '소무'라는 명칭에 대해 의견을 조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아키바 다카시는 「강릉단오제」라는 논문을 집필하면서 발음이 '소매(somai)'임에도 불구하고 '소무'라고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전의 기록에서는 노장의 상대역인 여성을 어떻게 표기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유득공의 『경도잡지』에는 당녀와 함께 소매가 나오는데, 소매가 옛날 미인의 이름이라는 설명이 보인다. 또한 강이천이 남대문 밖에서 연행된 산대놀이를 보고 지은 〈남성관희자(南城觀戱子)〉에도 노장의 상대역 여성으로 소매가 등장한다. 1872년에 정현석이 엮은 『교방가요』에는 14종의 춤 가운데 〈승무(僧舞)〉가 들어 있는데, 가면극의 노장과장과 매우 흡사한 내용이다. 이 춤에서는 노장의 상대역인 여성을 '소기(少妓)' 즉 어린 기생으로 표기했다. 그러므로 현존 가면극에서 노장의 상대역도 노장을 유혹하는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녀를 무당 또는 무당 후보쯤 되는 여자를 의미하는 소무나 소무당으로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조선총독부에서 1931년 간행한 조사자료 제32집인 『생활상태조사(生活狀態調査)』 기삼(其三), 「강릉군(江陵郡)」의 281면에는 강릉관노가면극 가운데 양반광대의 상대역 여성을 한글로 분명하게 '소매각시'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960년대 강릉관노가면극을 조사할 당시 제보자였던 김동하, 차형원 옹 역시 한결같이 양반광대의 상대역을 소매각시라고 증언했다.

1900년 8월 9일자 『황성신문』의 기사에서 서울 본산대놀이의 공연을 선전하며 "설부화용(雪膚花容) 소무당(小巫堂)과 송납장삼(松納長衫) 노장승(老長僧)이라"고 한 것처럼, 노장의 상대역 여성을 소무당(小巫堂)이라고 표현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록에서는 소매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가면극의 '소무'는 그동안 연구 초기에 대본을 채록하는 과정에서 착오로 생긴 용어로서, 가면극의 '소무'나 '소매각시'는 나례의 '소매'로부터 유래한 인물이다.

양주별산대놀이에서 소무는 제8과장 파계승놀이, 제10과장 취발이놀이, 제12과장 포도부장놀이에 등장한다. 먼저 제8과장에서 소무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린 노장은 육환장을 집어던지고 접근하나 번번이 거절당한다. 그는 도박판으로 뛰어들어 돈을 딴다. 돈을 움켜쥔 노장을 보자, 소무들은 노장을 받아들인다. 이어 제10과장 취발이놀이에서 취발이가 등장해 소무를 빼앗으려고 하자, 노장은 옷을 벗어 던지고 결사적으로 취발이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결국 노장은 젊고 힘이 있는 취발이에게 패배한다. 지금까지 승승장구 이겨왔던 노장은 취발이에게 소무 한 명을 빼앗기고, 남은 소무와 함께 도망한다. 취발이가 소무를 차지한 후, 소무는 취발이의 아이를 낳는다. 그러면 취발이가 아이에게 글을 가르친다. 제12과장 포도부장놀이에서 샌님과 포도부장이 샌님의 첩인 소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툰다. 샌님은 늙고 힘없는 무능한 존재로서, 젊고 힘있는 포도부장에게 소무를 빼앗긴다.

양주별산대놀이의 소무가면은 2개이며, 애사당과 겸용을 할 수 있다. 얼굴 바탕은 흰색이며, 전체적으로 상좌와 유사하지만, 연지와 곤지가 찍히고, 머리 가운데를 좌우로 가른 점이 다르다. 눈이 안정되어 있고, 입술은 좌우로 눕힌 팔자(八字) 형태를 지닌다.

송파산대놀이에서 소무는 제7과장 노장놀이, 제8과장 신장수놀이, 제9과장 취발이놀이에서 등장한다. 빨간색 치마에 노란색 삼회장 저고리를 입은 위에 파란색 전복을 걸치고 빨간색 허리띠를 둘렀다. 빨간색 끈으로 엮은 트레머리를 하고 나온다. 소무는 젊은 여자로서 강한 성적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제7과장에서 소무는 노장과 결합했다가, 제9과장에 다시 취발이와 결합하여 취발이의 아이를 낳는다. 노장이나 취발이의 성적 유혹의 대상으로, 자신의 의지보다는 남성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인물이다.

송파산대놀이에서 소무탈은 흰색 바탕에 머리 가운데를 좌우로 갈라 쪽진 머리 모습을 하고 있다. 이마와 볼에 붉은색 연지곤지를 찍었다. 검은색의 아래로 처진 눈썹에 눈초리는 아래로 처져 있다. 세모 코에 얇은 붉은색 입술을 가지고 있다. 소무탈은 2개이며 애사당, 작은마누라탈과 겸해서 사용한다.

퇴계원산대놀이에서 소무는 기녀로서 노장을 파계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제7과장 팔먹중과 노장놀이에서 큰소무와 작은소무가 등장한다. 큰소무는 노장을 따라가고, 작은소무는 취발이와 살며 아기도 낳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헤어진다. 복식의 경우 큰소무는 붉은색 회장저고리에 연두색 치마를 입고, 파란색의 쾌자를 입는다. 또한 국화 3송이가 수놓아진 붉은 가슴띠를 한다. 작은소무의 경우는 색동저고리에 붉은색 치마를 입고, 파란색의 쾌자를 입는다. 작은소무 역시 큰소무와 마찬가지로 국화 3송이가 수놓아진 붉은 가슴띠를 한다. 퇴계원산대놀이의 소무탈에는 큰소무탈과 작은소무탈이 있다. 소무탈은 백색의 바탕에 연지와 곤지를 찍었고, 웃는 방긋입(소리없이 살며시 벌려 웃는 입)을 한 탈이다. 얼굴이 갸름하고 연지곤지를 찍었고, 눈썹과 머리는 검고, 입술은 붉다. 그러나 큰소무탈과 작은소무탈은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작은소무탈이 큰소무탈에 비해 얼굴모양이 약간 갸름하다.

봉산탈춤에서 노장과 소무는 무언으로 행동과 춤으로만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한다. 소무는 생불(生佛)이라는 칭송을 받던 노장을 요염한 교태와 능란한 유혹으로 파계하게 만들고, 후에는 노장과 취발이의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이다. 소무는 결국 노장과 취발이 중 젊고 힘 있는 취발이를 선택하게 되고 취발이의 아이를 낳게 된다. 봉산탈춤의 소무탈은 흰 바탕에 검은 선으로 머리를 그려 가르마를 탔고 눈썹 눈가장자리를 그렸다. 연지·곤지·입술은 붉게 칠했고 눈과 입은 뚫렸다.

강령탈춤에서 소무는 노승의 상대역이자 취발이 상대역으로 취발이의 아이를 낳는 소무는 제6과장 노승·취발이춤 제2경과 3경에 가마를 타고 등장하여 노승·취발이와 함께 대무한다. 소무는 붉은 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노란 바탕에 붉은색 삼회장저고리를 입고, 색동한삼을 낀다. 그 위에 청색 쾌자를 입고, 다시 그 위에 앞은 감색이고 뒤는 붉은색의 띠를 두르고 있다. 머리에는 무당의 대감 모자와 같은 전립을 쓰고 있으나, 모자 겉은 검은색이고, 정수리 부분에 오색 술이 달렸으며, 가장자리에는 금빛에 붉은 선이 가미된 테를 둘렀다. 현재와 같이 소무를 무당의 모습으로 바꾼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

강령에서는 예전에 권번 출신의 기생이 소무 역을 담당했을 때에는 가면을 착용하지 않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는 은율탈춤의 헛목이 가면을 쓰지 않고 공연하던 것과 유사하다. 노승이 주는 염주와 붉은 가사를 몇 번 거절하다가 결국에는 노승을 받아들여 함께 결합춤을 춘다. 그러나 취발이가 등장하여 노승을 버드나무가지로 쳐서 내쫓으면, 취발이와 타령장단에 맞춰 대무하는데, 이때 짓는사위·뿌림사위·돌릴사위·펴는사위 등의 동작을 한다. 소무는 취발이와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있으나, 소무가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취발이가 소무의 목소리를 대신 내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소무는 무언이다. 취발이의 소무 방치레 사설이 끝나면, 취발이의 아이를 낳고 퇴장한다.

강령탈춤에서 소무탈은 흰색 바탕에 둥근 얼굴을 하고 있으며 양볼과 이마에는 붉은색 연지와 곤지가 찍혀 있다. 눈썹도 약간 아래로 휘어져 있으며, 작은 입은 살짝 벌린 상태로, 입술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머리에는 흑모를 쓰고 있는데, 가운데에 오색실이 길게 늘어져 있고, 흑모 주위에는 오색 테가 있다. 전체적으로 곱고 아담한 얼굴 모습을 지닌 사실적인 가면이다.

은율탈춤에서는 소무와 같은 인물을 새맥시라고 부른다. 새맥시는 은율탈춤에서 제4과장 양반춤과 제5과장 노승춤에 등장하는 인물로, 녹색 삼회장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족두리를 쓴다. 저고리 위에는 남색 쾌자를 입었으며, 소매에는 꽃한삼을 달고, 허리에 붉은 허리띠를 맨다. 새맥시는 녹색 삼회장 저고리 대신 노랑저고리를, 쾌자 대신 전복을 입고 등장하는데, 세 양반과 함께 타령장단에 맞춰 등장하여 셋째양반의 양보로 말뚝이와 손을 잡고 즐김으로써 양반을 조롱한다. 은율탈춤에서는 말뚝이와 최괄이가 새맥시를 데리고 등장하여 대꽃타령과 병신난봉가를 부르는 동안, 새맥시는 노래에 맞춰 교태스런 춤으로 노승을 유혹한다. 여러 번 피하던 노승이 새맥시의 교태에 도취되고, 새맥시에게 염주를 걸어준 뒤에 함께 마주 보며 춤을 춘다. 노승이 최괄이에게 맞고 쫓겨난 후 새맥시가 염주를 내려놓으면, 최괄이가 새맥시를 얼러대고, 최괄이와 함께 갖은 교태를 부리며 어울려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은율탈춤의 가면은 헛목(상좌), 새맥시를 비롯한 인물형과 사자, 원숭이 같은 동물형, 큰 혹이 달린 귀면형으로 나눌 수 있으며, 주로 흰색과 붉은색을 바탕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중 새맥시가면은 뚱딴지집 가면과 겸용으로, 흰 바탕에 반달눈썹을 하고, 이마와 양 볼에 연지곤지가 선명하다.

고성오광대에서 선녀는 다른 가면극의 소무에 해당한다. 선녀는 하늘에서 인간 세계로 내려오는 곱고 신령스러운 존재를 뜻했다. 제4과장 승무과장에 두 명의 선녀가 등장하는데, 선녀들은 머리에 전립을 쓰고, 연분홍색 바탕에 연지곤지를 찍고 눈 화장을 곱게 한 탈을 썼으며, 색동 소매의 초록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청색 쾌자를 걸치고 있다. 두 선녀는 놀이판의 양편에 마주 서서 거의 위치를 이동하지 않고, 시종 부드럽고 섬세한 여성적인 춤사위로 춤을 춘다. 함께 등장한 중은 두 선녀 사이에서 승무를 한바탕 춘다. 그리고 한 선녀에게 접근하여 선녀의 어깨에 한삼을 걸치고 치근대다가, 한 번은 어깨, 한 번은 등을 마주대고 흔들흔들 한다. 다시 중은 선녀의 양손을 잡고 마주 돌거나, 자기의 긴 소매와 선녀의 소매를 얽히게 하여 춤을 추는 등 선녀를 유혹하는 동작을 한다. 이를 다른 선녀에게도 반복한다. 주로 중은 두 선녀의 중앙에서 늘어진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큰 춤사위로 승무를 추다가, 두 선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일직선의 동선을 그린다. 이를 몇 차례 반복한 후, 중이 양손에 각각 선녀들의 손을 잡고서, 원래 자기가 나왔던 방향으로 셋이 함께 퇴장한다.

고성오광대 선녀탈은 얼굴 바탕이 밝은 살구색이며, 입술을 붉게 칠했다. 입술의 주위는 청색으로 둘렀다. 종이탈의 눈과 눈썹 사이는 붉은색으로 덧칠했다. 나무탈은 얼굴 바탕이 분홍색이다. 두 탈 모두 연지곤지를 크게 표현했다.

수영야류에서 팔선녀는 다른 가면극의 소무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길놀이에 동원된 기생을 팔선녀라 미화하여 부른 이름이며, 이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등장했다. 과거의 기생들은 길놀이에 관심이 높아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돈을 주어 참여시키기도 했다. 과거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왔지만, 현재는 화려한 활옷을 입고, 머리에는 화사한 화관족두리를 쓰고 나온다. 팔선녀는 최근 들어 길놀이에 참여하고 탈놀음의 서두에 청홍색 등을 손에 들고 놀이판으로 들어와 군무를 춘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부네는 다른 가면극의 소무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파계승마당에 등장하여 파계승과 사랑을 나누는 여인 역할을 한다. 또한 양반·선비마당에도 등장하여 양반과 선비를 오가는 소첩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이 파계를 하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이자, 양반과 선비가 우스꽝스러운 싸움을 벌이는 원인이 되는 인물이 부네광대이다. '맵시 있다 부네걸음'이라는 하회 지역의 말이 적절하게 어울리는 역할이다. 노랑 회장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고 미투리를 신는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부네탈의 얼굴 바탕색은 살구색으로 분칠했으며 이마와 양 볼에 연지, 곤지를 찍었다. 입술에도 붉은 칠을 했다. 머리와 눈썹은 검게 칠했고 머리털은 얼굴 상반부를 테두리같이 둘러 귀를 덮고 양볼 끝까지 내려 드리웠으며 뿔같이 양쪽 머리 위에 쪽을 졌다. 실눈과 반쯤 벌린 입을 하고 있다. 얼굴 전체가 납작하고 결발(結髮)과 눈썹, 눈, 양볼 할 것 없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우뚝 솟은 날씬한 코가 조화를 이루고 요염하고 자신 있는 표정이다. 눈과 입은 뚫려 있다. 전체적으로 갸름한 얼굴에 반달눈썹, 오똑한 코, 조그만 입을 하고 있어 전통사회 미인의 조건을 고루 갖추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탱탱하게 당겨진 양 볼과 시원스레 열린 이마에 연지, 곤지를 찍고 오똑한 코는 육감적인 분위기도 풍긴다. 부네탈은 오리나무로 만들어졌으며, 196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가산오광대의 소무는 서울애기를 데리고 등장하여 서로 마주 보며 긴 한삼을 붙잡고 장단에 맞추어 한참 동안 춤을 추다가 서울애기를 양반 옆에 데려다 놓는다. 양반과 서울애기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 소무는 춤을 추면서 퇴장한다. 가산오광대에서 소무탈은 살구색 바탕에 눈 주위에 흰 테를 둘렀다. 입술은 빨갛고 눈 아래 까만 점을 찍었다. 대잡이탈과 유사해 보이지만점의 위치가 다르다. 코는 종이를 사용해 덧붙였다.

소무

소무 송파산대놀이

새맥시

새맥시 은율탈춤

부네

부네 하회별신굿탈놀이

강릉관노가면극 제4과장 소매각시 자살과 소생에 등장하는 소매각시는 다른 가면극의 소무에 해당한다. 소매각시는 강릉관노가면극의 등장하며 젊은 여자, 특히 유녀(遊女) 역할을 하는 인물로 흰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은 것이라든가 새색시처럼 고운 옷을 입고 유녀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양반광대는 시시딱딱이와 소매각시가 노는 장면을 보고 크게 노한다. 분통해 하던 양반광대가 시시딱딱이를 밀치고 나와 소매각시를 끌고 마당 중앙에 온다. 소매각시가 잘못을 빌어도 양반광대가 질책하자 소매각시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하여 양반광대의 긴 수염에 목을 맨다. 수염으로 목을 감는 모습은 해학적이며, 권위의 상징인 수염을 당기어 결백을 시인케 하는 내용은 풍자적인 표현이다. 양반광대는 장자마리와 시시딱딱이의 안내로 괫대에 빌고, 소매각시가 소생함으로써 극이 끝난다.

피조리는 남사당 덧뵈기에서 셋째마당 샌님잡이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피조리의 가면은 살구색 바탕에 눈썹과 머리 주름살은 검은색이며 입술 연지는 붉은색이다. 피조리는 갑과 을 두 명이 등장하는데 모두 머리에 댕기를 하고 있다. 피조리는 샌님잡이에서 샌님, 노친네, 말뚝이가 서로 어울려 장단에 맞춰 춤을 추다가 노친네와 말뚝이가 퇴장할 때 샌님 앞으로 등장하여 그의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이에 샌님은 피조리들에게 난잡하게 놀지 말고 바로 들어오라고 충고하며 퇴장한다. 이후 피조리들은 한쪽에 서서 피조리춤을 추기 시작한다. 피조리들의 춤이 계속되는 가운데 먹중이 등장하여 피조리 가운데서 춤을 춘다. 그러다가 취발이가 등장하여 잽이와 재담을 나누면, 피조리들은 취발이의 눈치를 본다. 취발이가 먹중을 쫓아내자 피조리들이 피하는데, 취발이는 그 중 한 피조리에게 다가가 농탕을 친다. 후에 다른 피조리를 보고는 중놈하고 놀아났다며 툭 치자 피조리들은 샐쭉거린다. 이에 취발이는 피조리들을 앞세워 춤이나 한 번 추자고 하면 함께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남사당 덧뵈기의 피조리탈은 살구색 바탕에 눈썹과 머리 주름살은 검은색이다. 입술 연지는 붉은색이며 머리에 댕기를 드리우고 있다.

참고문헌

  • 김일출, 『조선민속탈놀이연구』 평양 : 과학원출판사, 1958.
  • 박전열, 『봉산탈춤』 화산문화,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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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경욱, 『한국의 가면극』, 열화당,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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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형호, 『강령탈춤』, 화산문화, 2002.
  •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 『퇴계원산대놀이』, 월인, 1999.

참조어

부네, 새맥시, 선녀, 소매, 소매각시, 팔선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