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원산대놀이

퇴계원산대놀이

정의 및 이칭

퇴계원산대놀이는 서울·경기지역에 분포 전승되고 있는 산대놀이 가면극 중 하나로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 지역에서 전승되어 왔다. 2010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유래 및 역사

퇴계원산대놀이는 1930년대까지 남양주시 퇴계원(당시 양주)에서 전승되어 내려오던 가면극이다. 조선시대 퇴계원은 교통의 중심지로 상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옛날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는 입지 조건으로 인해 도시로 공급되는 숯, 곡식, 채소, 연초 등 소비재가 이곳에 집하되었다. 당시 100여 호의 객주와 역원이 왕숙천을 끼고 곳곳에 자리를 잡았고, 상업이 발달하여 항상 많은 사람들이 붐볐기 때문에 산대놀이 연희가 성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퇴계원산대놀이의 놀이꾼들은 1920-1930년대에 활발하게 놀았는데, 이들은 주로 연초(煙草) 가공업에 종사했다. 놀이꾼들은 정규적인 공연 시기를 정하여 상인과 부호들의 적지 않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또한 그러한 지원이 밑받침이 되어 다른 지역으로 순회공연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장이 크게 서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빈번하게 왕래했으므로 놀이는 자연스럽게 폭넓은 관객층을 대상으로 하여 연행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산대놀이를 놀게 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기 때문에 총독부가 이를 꺼려 탈과 의상, 악기 등을 빼앗아 불태우는 등 수난을 겪었다. 더욱이 1950년대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퇴계원산대놀이는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다. 근래에 와서 퇴계원산대놀이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현재 12과장에 대한 복원을 완료하여 활발한 전수 작업과 공연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내용 및 특성

퇴계원산대놀이는 본산대놀이와 공통되게 파계승, 몰락한 양반, 하인, 영감, 할미, 첩, 사당 등이 등장하여 현실 폭로와 풍자, 호색, 웃음과 탄식을 보여주는 가면극이다.

제1과장 상좌춤, 제2과장 옴중과 상좌놀이, 제3과장 먹중놀이, 제4과장 연잎눈끔적이놀이, 제5과장 침놀이, 제6과장 애사당놀이, 제7과장 팔먹중과 노장놀이, 제8과장 신장수놀이, 제9과장 취발이놀이, 제10과장 말뚝이놀이, 제11과장 포도부장놀이, 제12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놀이로 구성된다.

제1과장 상좌춤은 8-9세 정도 된 어린 상좌중과 15-16세 정도 된 상좌중이 나와 추는 춤이다. 연희자와 관중들의 무사함과 잡귀가 범치 못하도록 사방신(四方神)께 재배(再拜)로써 고하는 벽사의식무이다.

제2과장 옴중과 상좌놀이는 옴중이 가진 양봉과 제금을 상좌가 여러 가지 행태로 빼앗는 내용이다. 옴중은 흑회색 장삼 차림에 납작한 시루밑으로 만든 벙거지를 쓴 채 양봉(兩棒)과 제금을 가지고 흥이 나서 장난을 친다. 목어는 머리는 용의 형상이고 배 부분은 속을 파낸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불구(佛具)의 하나로, 이를 칠 때 양봉이 사용된다. 제금은 '바라'로 이 역시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중요한 도구이다. 그런데 이를 상좌가 빼앗아가고, 빼앗긴 옴중은 깨끼춤을 춘다.

제3과장 먹중놀이는 옴중이 깨끼춤을 거의 다 출 무렵, 먹중이 나와서 옴중의 얼굴을 가지고 험담을 늘어놓은 내용이다. 먹중은 옴중이 쓰고 있는 모자와 모자에 달린 장식품을 보고 궁금해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다툼이 생기고 나중에는 얼굴 생김새를 갖고 다투다가 몸싸움까지 하는 내용이다.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이놀이는 천상살(天上殺)의 연잎(蓮葉)과 지상살(地上殺)의 눈끔적이가 옴중과 먹중 등 파 계승을 모두 몰아내는 과장이다. 연잎은 머리에 연잎 형상의 탈을 쓰고 등에 연꽃을 그린 청창의(靑唱衣)를 입고 화선(花仙)을 들었다. 눈끔적이는 눈을 꿈쩍꿈쩍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는 탈을 쓰고, 장삼을 입고 가사를 걸쳤다. 먹중들은 완보, 원먹중, 옴중, 먹중 넷, 둘째 상좌가 등장한다.

연잎과 눈끔적이

연잎과 눈끔적이 퇴계원산대놀이

애사당놀이

애사당놀이 퇴계원산대놀이

팔먹중과 노장놀이

팔먹중과 노장놀이 퇴계원산대놀이

제5과장 침놀이는 옴중, 먹중, 상좌가 쓰러지자 신주부가 침을 놓아 살리는 내용이다. 원먹중이 옴중, 먹중, 상좌를 데리고 깨끼춤을 추고 나와서 춤을 추고 놀다가 옴중, 먹중, 상좌가 관격(關格, 소변을 못 보고 계속 구토하는 증세)이 나서 쓰러진다. 이에 원먹중은 완보를 불러 살려달라고 하자, 완보는 의원신주부를 불러 침을 놓게 한다. 신주부가 침을 놓자 다시 살아나 춤을 추면서 퇴장한다.

제6과장 애사당놀이는 애사당이 춤을 추고 북을 치자 흥에 겨운 완보와 원먹중이 서로 잘났다고 다투는 내용이다. 팔먹중들이 풍물을 치며 마을에서 판을 벌리고 노는데, 주막의 주모인 왜장녀가 딸인 애사당과 함께 구경 나왔다가, 먹중들이 애사당을 보고 반하여 사당패의 일원으로 삼으려고 왜장녀와 흥정하여 애사당을 산다. 먹중들은 애사당을 사당패에 넣어서 신나게 북춤을 추게 하고, 흥이 난 원먹중이 애사당의 북채를 빼앗아 자기가 치려고 하자, 완보가 북을 빼앗아 원먹중을 우매하고 멍청하다고 놀린다.

제7과장 팔먹중과 노장놀이는 인가(人家)에 내려와서 불도에 어긋나는 행태를 보이는 팔먹중들을 계도하기 위해 내려온 노장까지 파계하는 내용이다. 팔먹중들이 깨끼춤을 추면서 불교의 계율을 어기자 완보가 이들을 꾸짖는다. 이때 노장이 등장하고 먹중들은 노장이 내려온 것을 보고 혼비백산한다. 장난기 많은 옴중이 훼방을 놓자 노장은 옴중을 엎어놓고 곤장을 치고, 먹중들은 노장의 파계를 유도한다. 노장은 두 명의 소무에 반해 파계한다.

제8과장 신장수놀이는 파계한 노장이 소무에게 신발을 사주는 내용으로, 흉내 내기를 잘하는 원숭이의 등장으로 더욱 재미있고 해학적이다. 연두색 쾌자를 입고 패랭이갓을 쓴 신장수는 짐궤에 원숭이를 넣고 신발을 판다. 노장이 신장수를 불러 꽃신을 사려 하자, 신장수는 원숭이로 하여금 신발 흥정을 한다. 노장은 꽃신을 사서 두 소무에게 신게 하고, 원숭이가 신 값을 못 받아오자 화가 난 신장수는 원숭이를 때려서 쫓아낸다.

제9과장 취발이놀이는 취발이가 노장의 소무를 빼앗고 노장을 쫓아버리는 내용이다. 취발이는 한량으로 과거에 몇 차례 낙방한 중늙은이로, 두 명의 소무 중 한 명을 빼앗아 아들인 마당이까지 낳는다. 노장은 큰 소무를 데리고 도망간다.

제10과장 말뚝이놀이는 말뚝이가 샌님 일행을 데리고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올라가다 거처를 정하는 내용으로, 양반에 대한 조롱과 풍자가 많다. 산대굿 구경에 빠져 해 저문 줄 모르다가 거처할 방을 마련하지 못해 하인 청직이(말뚝이)를 통해 거처를 구하다가 쇠뚝이를 만난다. 쇠뚝이는 돼지우리를 거처로 정해 준다. 이에 격분한 샌님이 말뚝이와 쇠뚝이를 야단치다가, 오히려 그들에게 조롱당한다.

말뚝이놀이

말뚝이놀이 퇴계원산대놀이

제11과장 포도부장놀이는 매관매직을 한 언청이 샌님이 젊은 소첩(少妾)을 얻어 사는데, 마을 청년인 포도부장이 샌님에겐 당치 않은 것이라 생각되어 샌님에게서 소무를 빼앗아 오는 내용이다.

제12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놀이는 헤어졌던 신할아비와 미얄할미가 극적으로 만났으나 신할아비의 구박으로 미얄할미가 죽자 할미를 위해 굿을 하는 내용이다. 신할아비가 지팡이를 짚고 어정거리고 들어서고 지팡이를 짚은 미얄할미가 부딪치며 서로를 확인한다. 신할아비는 미얄할미를 구박하고 미얄할미는 분하고 서러워 가슴을 치다가 넘어져 죽는다. 신할아비는 미얄할미가 죽은 것을 확인하자 도끼와 도끼누이를 불러 와서 미얄할미의 죽음을 슬퍼한다. 장사를 지낸 후에 신할아비 가족은 무당을 불러 거리굿을 한다. 놀이 전체의 마무리 마당으로서 축원굿, 화해굿, 대동굿의 상징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퇴계원산대놀이도 다른 가면극의 연출 형태와 마찬가지로 음악 반주에 춤이 보태지고 노래가 따르는 가무 부분과 연극적 부분으로 구성된다. 상좌, 연잎과 눈끔적이, 왜장녀, 애사당, 소무, 노장, 원숭이, 해산모, 포도부장, 미얄할미 역은 대사가 없고 춤과 몸짓 및 동작으로 연기한다. 전반적인 대사는 평범한 일상 회화조의 언어이다. 이 산대놀이의 대사 중 옴중과 취발이의 대사는 해학과 풍자로 관중의 재미를 자아낸다.

노래는 경기민요에 바탕을 둔 선소리 계통의 소리이며, 민요, 덕담, 시조, 가사 등이 나온다. 노래로는 〈청춘가〉, 〈창부타령〉, 〈백구타령〉, 시조, 만신의 덕담과 〈노랫가락〉, 〈둥둥타령〉 등이 나온다.

퇴계원산대놀이의 반주악기는 삼현육각, 즉 피리, 대금, 해금, 아쟁, 장고, 북으로 구성되지만 이밖에 꽹과리를 추가하는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날라리, 피리, 장구만으로도 춤을 춘다. 장단은 염불곡과 허튼타령, 느린굿거리, 자진굿거리, 무악 등이 사용된다.

춤사위의 특징은 춤선이 아주 굵고 힘차다. 춤사위의 분류는 거드름춤과 깨끼춤으로 크게 나뉘고, 기본춤은 15가지로 되어 있으며, 과장에 들어가면 40여 종류로 세분되어 한국 민속춤의 기본을 보여주고 있다.

퇴계원산대놀이의 가면은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를 토대로 퇴계원산대놀이 가면도 복원되었다. 그러나 퇴계원산대놀이 가면으로 알려진 23점의 탈은 실제로는 통나무를 깎아 만든 21점의 목각탈과, 바가지탈 제작방식으로 만들어진 2점의 나무탈이다.

다른 지역의 사례

본산대놀이의 영향을 받은 가면극은 서울과 경기 지역의 송파산대놀이·양주별산대놀이·퇴계원산대놀이, 황해도 지역의 봉산탈춤·강령탈춤·은율탈춤, 경남 지역의 수영야류·동래야류·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가산오광대 등이 있으며, 남사당패덧뵈기도 본산대놀이의 영향으로 발생했다.

특히 산대놀이는 서울 및 서울 인근의 경기도에서 전승되던 가면극이다. 원래 애오개(아현동)·녹번·구파발·사직골 등에 산대(山臺)놀이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대신에 애오개 또는 녹번리의 산대놀이를 배워왔다고 하는 양주별산대놀이와, 구파발본산대 등에서 배워왔다는 송파산대놀이가 현재 전승되고 있다. 최근에는 퇴계원산대놀이도 복원되었다. 학자들은 흔히 애오개·사직골 등에 있었던 원래의 산대놀이를 본산대놀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양주와 송파 등지의 별산대놀이와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 산대놀이 항목 참조)

한편 마을굿에서 발생하여 발전한 가면극으로는 하회별신굿탈놀이, 강릉관노가면극이 전하며, 이외에 하회의 이웃 마을인 병산별신굿탈놀이와 경북 영양군 주곡동의 가면극 등도 마을굿놀이에서 유래한 가면극이다.

역대 명 연희자

백황봉(白黃鳳)과 최사윤의 제보에 의하면 퇴계원산대놀이의 연희자는 다음과 같다.

퇴계원산대놀이의 대표적인 놀이꾼은 한원근(1870-1933)이다. 한원근은 가면 제작과 취발이·옴중·관 쓴 중 역을 맡았고 기량도 가장 뛰어났다. 한원근이 양주별산대놀이를 배워 와서 퇴계원산대놀이를 시작했는데, 나중에 양주별산대에서 다시 그에게 배워 갈 정도였다.

민홍운(1876-1939)은 눈끔적이·신할아비·말뚝이, 조홍기(1881-1941)는 먹중 역을 맡았다. 한용삼(1873-1955)은 포도부장과 말뚝이 역을 맡았으며, 임명운(1870-1943)은 노장 역을 맡았다. 한만세(1888-?)는 애사당역을, 최은동(1890-1965)은 소무 역을, 윤원산은 왜장녀와 소무 역을 맡았다. 서만봉은 왜장녀와 옴중 역을 맡았는데, 최은동보다 젊기 때문에 대역을 했고, 한국전쟁 때 작고했다. 서순집(1868-1933)은 먹중과 옴중 역을 맡았다.

연희본

현재 채록된 퇴계원산대놀이 연희본은 다음과 같다.

(1)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본〉(『퇴계원산대놀이』, 월인, 1999)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본〉의 전체 구성은 길놀이, 서막고사, 제1과장 상좌춤, 제2과장 옴중과 상좌놀이, 제3과장 먹중놀이, 제4과장 연잎눈끔적이놀이, 제5과장 침놀이, 제6과장 애사당놀이, 제7과장 팔먹중과 노장놀이, 제8과장 신장수놀이, 제9과장 취발이놀이, 제10과장 말뚝이놀이, 제11과장 포도부장놀이, 제12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놀이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길놀이, 고사굿, 벽사의 의식무, 파계승에 대한 풍자, 양반에 대한 모욕과 풍자, 남녀의 대립과 갈등, 서민생활의 실상 등이 나타난다. 놀이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공연된다. 상좌, 연잎과 눈꿈쩍이, 왜장녀, 애사당, 소무, 노장, 원숭이, 해산모, 포도부장, 미얄할미 역은 대사가 없고 춤과 몸짓만으로 연기한다.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본〉은 본산대놀이 계통 가면극들의 공통 내용인 벽사(辟邪)의 의식무, 양반과장, 파계승과장, 영감·할미과장을 공유하고 있다.

의의

퇴계원산대놀이는 퇴계원에서 가면극을 놀면 주내면 유양리에서 양주별산대놀이의 놀이꾼들이 와서 합동으로 공연하고, 주내면에서 가면극을 놀 때는 퇴계원의 놀이꾼을 초청해 갈 정도로 두 지역의 놀이꾼들은 가깝게 지냈다. 그리고 퇴계원산대놀이는 주내면의 양주별산대놀이를 배워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퇴계원의 산대놀이는 일종의 별산대놀이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1920년대 수집된 퇴계원산대놀이 가면 23점이 잘 보존되고 있어, 퇴계원산대놀이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 김은영, 「산대놀이 탈 연구」, 『민속학연구』 27, 국립민속박물관, 2010.
  •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 『퇴계원산대놀이』, 월인, 1999.

참조어

민홍운, 서만봉, 윤원산, 임명운, 조홍기, 최은동, 한만세, 한용삼, 한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