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성균관

[ 成均館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향교 · 서원>향교
유물유적시대 고려
행정구역 황해북도>개성시>방직동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27호

황해북도 개성시 방직동에 있는 옛 건물. 고려시대 국가의 최고 교육기관이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성균관건물은 원래 고려 11대왕의 별궁인 대명궁으로 건설되었는데, 그 후 외국손님들을 유숙시키는 숙소로 이용되면서 이름도 순천관으로 개칭되었다. 후에 유교경전에 관한 사무를 보는 숭문관으로 이용되었으며, 1089년에 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을 옮겨온 후부터 정식 교육기관으로 되었다.

국자감은 992년에 고려국가의 귀족 자식들에게 유교와 윤리도덕을 전수하기 위해 세운 당시 최고교육기관으로서 1308년(충렬왕 34년) 성균관으로 개칭되었고 이색, 정몽주 등 이름 있는 학자들이 유학을 전수하였다. 고려시대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불태워 없어지고 지금의 건물은 1602~1610년 기간에 다시 지은 것이다.

개성성균관은 약 1만m2 의 넓은 부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거기에는 동재, 서재, 명륜당, 동무, 서무, 대성전, 향실, 존경각, 계성사를 비롯하여 당시의 건축술을 자랑하는 18동의 건축물이 있다. 성균관건물은 엄격한 유교적 질서에 맞게 남북축을 따라 중심부분을 대칭으로 구성하였으며 이른바 ‘검박’을 표방하는 유교적 교리에 따라 절과는 달리 장식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상급학생들을 위한 대성전구획과 저급학생들을 위한 명륜당구획을 엄격히 구별하였다. 명륜당을 뱃집으로, 대성전을 합각집으로 하고 크고작은 건물들을 조화되게 배치한 것 등은 당시 학교건축의 일반적 특징과 선조들의 재치있는 건축술을 잘 보여준다.

성균관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옛 건물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춘 건물의 하나로서 세계 중세교육 발전사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고려시대의 최고교육기관(대학)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성균관 안마당에는 천연기념물인 천년 가까이 자란 성균관은행나무와 성균관느티나무가 있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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