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룡리 유적

상무룡리 유적

[ 楊口 上舞龍里 遺蹟 ]

지역 양구
유적전경

유적전경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파로호 퇴수지구에 위치한 중기·후기구석기시대 유적으로, 화천에서 동으로 20㎞ 거리에 놓여 있으며 한반도에서 알려진 유적 가운데 가장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은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리이며 북위 약 38˚07′, 동경 127˚55′에 자리하고 있다. 화천댐이 생기기 전에는 허수리(許水里)라고 불리던 지역이었으나 현재는 마을이 모두 수몰되었기 때문에 상무룡리에 편입되어 있다.

양구 상무룡리 유적은 북한의 금강산댐에 대응하기 위하여 파로호의 물을 방류하면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파로호 퇴수지구의 한 부분이다. 이 지구는 북한강 상류의 태백산맥 주능선의 서사면에 위치한 하천침식곡의 하나로서 지질학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에 놓인 경기육괴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지형적 특징은 먼 지질시대에 여러 차례의 조산운동을 거쳐 지형의 대체적인 골격이 형성된 이후로는 전적으로 하천침식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퇴수지구의 하곡 단면은 호수에 의한 극심한 기계적풍화에 의해서 거의 ‘U’자형에 가까운 모습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지표면에 남겨진 구석기유물은 이 유적이 형성된 이후 계속된 침식 및 퇴적에 의해 지표에 드러났을 뿐 아니라 특히 40년대 초 파로호의 담수가 시작된 이래 계속된 상당한 침식에 의해 지표에 드러났으며 유물 발견지역의 퇴적층 내에 포함된 물질은 전적으로 배후산지의 기반암에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크므로 부분적으로 재퇴적에 의해 유물 포함 층위가 형성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강원대학교박물관 발굴조사단은 3차에 걸쳐 발굴이 이루어졌다. 경희대학교발굴단은 1987~1988년 동안 2차에 걸쳐 발굴을 실시하였다.

강원대학교박물관은 ㄴ·ㄹ지구에 대한 집중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지구는 수입천과 서천이 만나는 지점의 하안단구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 하안단구의 높이는 파로호 퇴수시의 강수면보다 약 30m 정도가 높고 제3단구에 속하며, 이 3단구는 중기갱신세에 해당한다. 가장 최근 자료에 의하면 ㄴ·ㄹ지구의 층위는 아래로부터 기반암풍화층-자갈층(Ⅳ층)-모래질찰흙층(Ⅲ층)-찰흙층(Ⅱ층)-표토(Ⅰ층)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층은 자갈층과 모래질 찰흙층 사이에 Ⅱ문화층이 있고, 찰흙층에 Ⅰ문화층이 형성되어 있다. Ⅱ지층과 Ⅲ지층의 경계에는 언땅트기 현상(frost wedge)혹은 동토지질교란현상(cryoturbation)이 나타나고 있어 Ⅱ문화층과 Ⅰ문화층의 지질 층위적 구분기준이 되고 있다. 자갈층(Ⅳ층)과 모래질찰흙층(Ⅲ층)은 망간(Mn)이 심하게 집적되어 있어 찰흙층(Ⅱ층)과 어느 정도 육안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망간 집적현상은 퇴적 이후에 일어난 장기간 침수에 따른 광물의 집적현상으로 보아야 하며 층위구분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견해도 있다.

강원대학교박물관은 3차에 걸친 지표조사와 발굴을 통하여 3,694점, 2,718점의 석기를 발견하였다. 석기의 주 석재로는 석영제 자갈돌과 거친 석영맥암류가 자주 채택되었다. 주요석재인 석영은 제Ⅱ문화층에서 97%, 제I문화층에서 99%이고, 반암, 사암, 화강암, 흑요석이 극소수 포함되어 있다.

제Ⅱ문화층에서는 총 1,850점이 출토되었다. 1차 생산물을 생산하기 위하여 주로 던져떼기, 직접떼기, 모루떼기 등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한편 격지 중에서 ‘양극박편’이 보이지 않는다. 모루망치떼기(bipolar technique)에 의한 석기제작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석재의 암질이 일반적으로 좋지 못하여 필요에 따라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크기의 조각을 석기로 사용하고 있어, 편리하게 즉시 석기를 만들어 쓰는 의도(expedient technique)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석기의 날이 망가지면 재가공을 통하여 석기를 재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석기는 비교적 정형화되었으며 잔손질된 석기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 찌르개, 뚜르개, 찍개 등은 제작의도상 켜면을 바닥면으로 하여 최소한의 날잔손질을 하였으며, 반면 긁개, 끝날긁개, 주먹대패, 뚜르개, 찍개 등은 비교적 날잔손질 및 잡이손질을 많이 하여 정형화된 석기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수량이 극히 적지만 부채꼴형 끝날긁개와 돌날격지처럼 생긴 조각의 끝에 날을 만든 끝날긁개가 출토되고 있어 앞으로 유적의 연대설정에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겠다.

결국 ㄴ·ㄹ지구의 Ⅱ문화층 연대는 주먹도끼와 같은 양면가공석기의 존재, 동일한 제작의도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석기유형의 존재, 후기 구석기시대에 유행하는 석기들이 전형적이지는 않지만 극소수 보인다는 점, 하지만 전형적인 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전곡리를 비롯한 자갈돌 석기전통을 가진 집단의 산물로 보았다. 이 층의 상한연대는 보고서 상에 125000 B.P., 또는 75000-32000 B.P. 등으로 추정된 바 있다.

ㄴ·ㄹ지구의 제I문화층에서는 총 868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중 대표적인 석기는 찍개, 사냥돌, 긁개, 톱니날 석기, 끝날긁개, 찌르개, 뚜루개, 홈날, 자르개, 주먹대패, 돌망치 등이 출토되었다. 이 층위 역시 석영제 자갈돌을 주로 사용하여 석기를 만들었고 소량이지만 흑요석, 반암, 규장암, 판암으로 만든 석기들이 출토되었다. 보고자는 이 유적을 2-5만년 전의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제I문화층과 제Ⅱ문화층의 문화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유물통계상, 동일한 자갈돌 문화, 큰 석기의 경우 크기의 중형화(5-10㎝)와 석기의 정형화, 양면석기의 제작수법과 연관된 석기의 존재 등으로 Ⅱ문화층과 층위에 따른 선후의 구분은 있으나, 두 문화층이 서로 근접된 문화특성을 지닌 중기구석기문화로 평가하려는 견해가 있다.

강원대학교 발굴지역에서는 세형몸돌을 비롯하여 전형적인 후기구석기시대 유물들이 이들 문화층 위 지표에서 채집되었는데, 이것은 언덕이 하나 없어질 만큼 담수로 인한 지형변화가 심해 이 지역에 상당한 침식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그 발굴지구의 층위상 상당한 교란현상이 나타났음을 말하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희대학교 발굴단은 A에서 I까지 9지점의 유물 집중지역을 지표조사를 통하여 발견하였다. A지구는 해발 182m 높이의 완만한 경사면으로서 유물 산포지역은 상당히 넓게 그리고 거의 전 경사면의 지표에서 발견되었다.

이 지구의 지층은 기본 시굴을 통하여 밝혀졌는데 아래로 부터 암반풍화토(V)-흑(암)갈색진흙층(Ⅳ)-검붉고 성근 진흙층(Ⅲ)-갈색진흙층(Ⅱ)-미갈색진흙층(I)-표토로 형성되어있다. 이 시굴층위와 발굴층위와의 비교를 통하여 흑요석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층은 시굴층위의 제3층과 연관되는 것으로 밝혀졌고 다른 발굴지역에서는 이미 유실된 지층으로 보여진다.

경희대학교에서 발굴한 A지구에서는 지금까지 어느 유적보다도 다양한 흑요석 석기가 수습되었다. 이 유적의 석기는 흑요석을 주석재로 하여 끝날긁개, 옆날긁개, 대각선새기개가 주요 석기구성을 이루는 돌날석기, 손톱형 긁개, 세형돌날, 잔손질된 세형돌날 및 세형격지, 세형새기개(microburin), 작은 돌날 등의 소형석기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지점에서 출토된 흑요석제 석기로는 후기구석기시대의 특징인 돌날석기 제작기법에 의한 소형석기들과 일부 박편석기가 있으며, 세형몸돌은 출토되지 않았으나 60여 점의 세형격지와 세형돌날이 공반 출토되어 후기구석기 최말기의 시간적 배열을 용이하게 해주는 강력한 증거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유적에서는 위의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이암 혹은 반암을 석재로 한 긁개, 긁개-새기개 등이 지표에서 출토되어 이암, 셰일 및 반암을 주석재로 하는 이 시기의 남한강 일대와 보성강-섬진강 일대의 다른 유적과의 문화적인 연관성을 보다 확실하게 해 주는 근거가 된다.

이 유적의 흑요석의 유통경로는 백두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태백산을 넘어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동해안에서 원통으로 넘어오는 길은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으로 보고 특히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가 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진부령이 가장 가능한 교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 유적의 흑요석을 포함한 10지점의 흑요석을 중성자 방사화 방법(neutron activation analysis)으로 성분조사한 결과 상무룡리-전곡리-교평리-오산리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강원대학교 지역에서도 흑요석이 지표에서 2점, 지층에서 2점 모두 4점이 수습되었다. 보고서상에 제시된 3점의 흑요석은 2점의 격지석기와 1점의 세형돌날이다. F지구의 발굴에서는 제4층에서 2점의 석기(화강암제 망치 1점과 돌날 1점)가 출토되어 3층과 함께 또 하나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결국 상무룡리 유적에는 크게 석영질 석재를 주석재로 하는 문화와 흑요석을 주석재로 하는 문화가 있다. 전자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자갈돌 석기전통의 성격으로 중기구석기시대층일 가능성이 높으며, 상무룡리 2기의 석기전통은 특히 흑요석 바탕으로 이루어진 석기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세형돌날기법과 돌날기법이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서 한반도 후기구석기 최말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두 박리면을 가진 세형몸돌과 함께 대각선새기개, 잔손질된 세형돌날, 손톱형 긁개의 존재는 이 유적이 동북아시아의 후기구석기 말기의 공통의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근거가 된 것이다.

참고문헌

  • 상무룡리 구석기문화 연구(김상태, 강원대학교 석사논문, 1992년)
  • 한국의 구석기문화-유적의 현황과 편년문제(박영철, 韓國考古學報 28, 韓國考古學會, 1992년)
  • 韓半島 後期舊石器文化의 性格과 編年에 대한 分析硏究(李憲宗, 경희대학교 석사논문, 1991년)
  • 동북아시아 구석기연구(이선복, 1989년)
  • 上舞龍里(강원대학교박물관, 198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