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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불교철학 용어.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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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원과 의미
  2. 원시·부파불교의 공
  3. 공사상의 전개
  4. 중관학파의 공
  5. 유가행파의 공
  6. 중국불교의 공
  7. 공관의 의의

일상적인 어감에서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 온갖 경험적인 사물이나 사건이 공허하여 덧없음을 뜻하며, 존재론적으로나 가치론적으로는 모든 술어나 속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 입장에서 이 부정은 단순히 소극적인 허무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술어나 속성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절대적인 존재방식을 적극적으로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자로 공이라는 말이 이렇게 철학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띠게 된 것은, 인도불교에서 사용되고 있던 '슌야'(śūnya)라는 말이 중국에서 공이라는 말로 번역되고 난 뒤의 일이다.

인도에서는 이 말이 일찍이 원시불교시대에도 사용되고 있었으나, 서력 기원 전후에 일어난 대승불교는 그 근본적 입장을 표시하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공을 내세우게 되었는데 이후 대승불교뿐 아니라 불교 전체가 공의 사상을 기반으로 삼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중국을 비롯한 한역 불교권에서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어원과 의미

일반적으로 공의 산스크리트 원어라고 간주되는 슌야의 어근은 슈비(śvi)라고 생각되는데 '부풀다'는 의미이고, 동시에 가운데가 텅 비게 된 것을 의미한다.

즉 외견상으로는 사물이 형성되어 부풀어오르더라도 내면적으로는 공허하여 내실이 수반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소위 제로(0)를 발견했던 인도 수학에서 그 제로를 '슌야'라고 불렀으나, 이 제로도 단순히 비존재나 결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가 이 말을 끌어들여 사용할 때도 그것은 강한 부정의 표현인 동시에 궁극의 진실성을 적극적으로 시사하는 것으로서, 소위 부정을 통한 긍정, 상대를 부정함으로써 절대 직관을 의도하고 있다.

그것은 우파니샤드 철학 이래 절대는 '아니다 아니다'(neti neti)에 의해서만 인식된다고 하는 사상과도 통할 것이다.

초기 경전(中阿含의 〈소공경 小空經〉)에서 '공'의 정의라고 할 만한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어떠한 것이 거기에 존재하지 않을 때, 어떠한 것이라는 그것은 공인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거기에 무언가 남겨진 것이 존재할 때, 그것은 바로 실재한다고 안다." 이는 곧 결여, 존재하지 않음이 공인 동시에 그 공에서 궁극적인 실재가 발견된다는 의미이다.

후세의 문헌에서는 이 문장 전체가 공의 정의로서 종종 인용되고 있다. 공이 부정과 함께 긍정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사상가들 중에는 이것을 '공'보다는 '이'(理)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다. 따라서 이것을 공허를 의미하는 void·empty·vacant 등으로 영역하는 것이 반드시 적절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absolute'(절대)로 번역해야 한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데 인도불교에서 공의 원어는 형용사로서의 '슌야'인 동시에 추상명사로서의 '슌야타'(ś ūnyat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개념이 애초부터 '부정을 통한 긍정'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부처가 깨달은 경지를 표현하고 그에 도달하려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전되고 변용을 거쳐나온 결과이다. 공이라는 말 자체는 무엇인가가 없어진 상태,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산스크리트의 '슌야'는 예를 들면 '인기척이 없는 적막한 장소', 사람이 없는 '빈' 집, 의식의 '상실' 상태, 대통령이 '공석'인 국가와 같은 일반적인 용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없어진 상태를 표시하고, 어감으로도 소극적인 인상을 수반한다.

또 번역할 경우에 형용사 '슌야'와 추상명사 '슌야타'의 구별을 명확히 하고 싶으면, 전자를 '공(즉 無)인 것', '공성'(空性)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적절하지만, 한역어(漢譯語) '공'의 경우에는 적어도 문자상으로는 이렇게 구별하기가 어렵다.

"A는 B가 슌야인 것이다", 즉 "A는 B가 공인 것이다. A는 B를 결여하고 있다. A에 B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슌야'라는 말이 개입된 기본적이면서도 일반적인 구문이다. "이 큰 방은 코끼리가 공인 것이다", 즉 우리말의 어법으로는 "이 방에 코끼리는 없다"는 구문이 그것이다. '빈 집'의 경우엔 "이 집은 사람이 공인 것이다"는 구문을 예상하여, 있지 않은 '사람'은 '사람'이 머물러야 할 '집'과의 의미연관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지만, 그것을 명시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불교, 적어도 인도불교에서 '공', '공성'이라고 표현된 경우에는 항상 이렇게 구문과 의미연관을 예상하고 있다. 마음에 탐욕이 없어 그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마음은 탐욕이 공인 것이다"로 표현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어인 A와 그것에 있지 않은 B와의 관계에 불교도는 강한 관심을 갖고 '공'의 의미론적인 범위를 초월하여, 삼매(三昧)와 연기(緣起)를 직관하는 것을 중요시함으로써 소위 존재론·인식론·수행론 속에서 그 관계를 명확히 하고자 했다.

모든 것에는 불변하고 독자적인 존재성[我]이 없다고 하는 무아의 이념은 대승불교 속에서 보다 철저해져 사물은 연기하고 있는 원인, 조건이 맞아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런 자성(自性)이나 실체성을 지니지 않는, 무자성(無自性)의 것이라는 공사상을 낳았다.

A와 B가 별개의 존재인 경우는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A의 자성에 집착해 있을 때, 사람들은 A와 A의 자성을 동일시하여 "A는 A이다", "A는 A가 공인 것이 아니다"고 흔히 말하며 집착을 강화한다. 그러나 연기의 개념을 매개로 하여 "A는 A의 자성을 지니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라고 관찰하면, A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A는 A의 자성이 공인 것이다", "A는 A가 공인 것이다", 더 생략하여 "A는 공이다[一切皆空]"라고 직관할 수 있다면, 그 인식 본연의 상태야말로 반야바라밀(지혜의 완전한 상태)이고, 깨달음[菩提]으로 통하는 길이 된다.

이와 같은 '공', '공성'을 주축으로 하는 공사상은 초기 대승경전인 일련의 반야경(般若經)과 용수(龍樹 Nāgārjuna)의 〈중론송 中論頌〉 등에서 명확하게 되고, 그 이후 대승불교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공사상은 대승불교의 기본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적으로 보아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양상을 드러내면서, '사실은 중생과 보살이 왜,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여 공이라고 깨닫는가'라는 수행론을 항상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원시·부파불교의 공

공이 무엇보다도 먼저 부정을 의미한다는 점은 이 말의 일반적인 용법으로 알 수 있는데, 원시불교경전에서는 공이 단지 비존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고, 부파불교시대 아비달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공', '공성'이라는 용어, 혹은 그것을 기본축으로 삼아 나중에 대승불교에서 발전된 공사상은 원시불교에서는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용어의 불교적인 의미는 이미 여기서 부여되어 있는데, 이런 의미에서 공사상의 연원을 원시불교에서 구하는 것도 반드시 빗나간 것은 아니다.

원시경전에서는 모든 것을 무상·(苦)·무아라고 깨달을 것을 권하는데, 아함경에서는 이들 세 개념과 '공'이 병렬되는 경우가 있어 "모든 것은 공인 것이다"라고 깨달을 것도 설해져 있다. 또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방법으로서 중요시되는 삼매 혹은 정신통일은, 인기척이 없는 적막한 장소나 사람이 없는 '빈 집'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라는 기술이 종종 보인다.

그러한 장소에서 얻게 되는 삼매는 사물을 공인 것[空], 개념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것[無相], 인간의 기대나 바람과는 무관한 것[無願]이라고 보는 공·무상·무원의 3삼매로서 정리되고, 이것들은 해탈에 이르는 방법이기도 하므로 3해탈문으로 정착한다. 이들 셋은 어느 것이나 부정이라는 계기가 그 중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존재론적으로 고찰하도록 의도되었던 것은 아니고, 오히려 애욕이나 집착을 단절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수행자에게 명상의 대상으로 공이 교시되었다.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들이 종종 실천하고 있는 청정한 정신상태는 공주 즉 '공인 상태'로 간주되고, 그것을 얻는 방법이나 그것을 얻는 상황을 설하는 것으로서 〈소공경 小空經〉·〈대공경 大空經〉이 현존한다. 다시 일상적 진리[世俗諦]와 궁극적 진리[勝義諦]라는 이제의 사고를 도입하여 약간 발달한 것으로 〈제일의공경 第一義空經〉이 있다. 이들 경전에서는 '공'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기본적인 구문에 따라 내적 성찰을 심화하는 방법이 제시되며, 부분적으로는 연기관과 공관을 밀접하게 연관시키고 있다고 추정된다.

부파불교에 이르면, 원시경전을 배경으로 삼아 에 대한 연구가 부파에서마다 추진되는데, 모든 것을 '무상·고·공·무아'라고 깨닫는 것, 그중에서도 무아를 깨닫는 것이 필수라고 간주된다. 그러나 그 무아관은 부파에 따라 다른데 그 대표적인 예를 설일체유부에서 볼 수 있다. 즉 어떤 것을 구성 요소로 분해하여 그 실체성을 부정하고, 요소 자체의 존재성은 시인하였던 것이다.

원시불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삼매를 포함한 3삼매 혹은 3해탈문을 설하지만, 그것들을 이론적으로 추구하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공성을 주축으로 하는 삼매가 여러 가지여서 그 깊이에 차이가 있음을 주목하여, 공성을 분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6공(〈사리불아비담론〉)·9공(〈잡아비담심론〉)·10공(〈대비바사론〉)이 그것인데, 이들은 반야경 기술과 맥이 이어진다.

공사상의 전개

대승경전 중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출발했다고 생각되는 반야경은 새로이 대승적 보살이라는 관념을 발달시켰다.

그 담당자로서는 아무래도 출가자가 많았다고 생각되지만, 그들은 승원을 거점으로 하는 부파불교와는 하나의 획을 긋고 있다.

스스로 최상의 깨달음에 도달하고자 하는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고, 또한 다른 사람을 깨달음에 인도한다고 하는 이타(利他)의 서원을 갑옷처럼 몸에 두르고서, 그들은 마을로부터 격리된 장소에서 걷든 서든 앉든 눕든[行住坐臥] 끊임없이 보살로서의 실천행에 노력했다.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의 6바라밀이 그 실천행의 골격을 이루고, 이중 제6의 반야바라밀, 즉 지혜의 완전한 상태는 보시 등을 통해 얻게 되는 궁극적인 것이며, 동시에 그것들의 완전성을 안으로부터 뒷받침하는 것으로 가장 중시된다.

반야경은 이런 입장에서 붓다가 말한 것을 내용으로 삼으며, 동시에 담당자들에게는 반야바라밀에 도달하는 방도를 제시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반야란 지혜를 의미하는데, 특히 모든 것이 공임을 보는 지혜이다. 완전한 지혜는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인 인식·지식과는 다르다.

통상의 인간이 '저것은 이렇다', '이것은 이렇다'라고 구별하여 판단하는 것은 그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지만, 지혜는 그런 집착을 단절하는 힘을 지니는 동시에 그로부터 해방된 보리(菩提), 즉 붓다의 깨달음과 다름이 없다.

일련의 다양한 반야경 중에서 모든 것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설하는 것은, '사물이 생긴다', '사물이 멸한다'고 하는 일상적인 판단을 깨뜨리기 위함이다. 또 반야경의 기본적인 명제로서 "사물은 공인 것이고, 공인 것 그대로가 사물이다"(色卽是空空卽是色)라고 하여 모든 것의 공성을 설하는 것도, 사물은 일상적인 말이 예상하는 것과 같은 자성을 갖고 있지 않음을 주목하여 사물에 대한 집착을 끊기 위함이다.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깨닫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지혜로 통하는 방도로 간주되고 있으며, 거기에는 원시불교의 무아관이나 '공성'의 사고가 심화되어 있다.

그러나 공의 사상이 공이라는 말에 의해서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반야경이나 이것을 계승한 〈유마경 維摩經〉 등의 도처에서 발견되는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은 공이라는 말 이상으로 공의 의미를 적절하게 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보살은 보살이 아니기 때문에 보살이다"라고 설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전반부의 '…이 아닌'이라는 부정은 '사물은 공'에 상당하고, 후반부의 '…이다'는 긍정이 '공인 것 그대로가 사물이다'에 상당한다고 할 수 있다. 공은 항상 절대적인 부정이기 때문에 공이라는 것도 역시 부정된다. 부정에 의해 사물을 초월하고, 그 초월에서 오히려 진정한 실재가 시사된다고 말하는 것은, 부정과 그 부정의 부정[空亦復空]이라는 양쪽에 상당한다.

이리하여 여러 경전에서는 공이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되고 분류되어 있다.

인격주체의 공[人空]과 사물의 공[法空]이라는 2공을 비롯하여 3공·4공·6공·7공·10공·11공·13공 등으로 다양하다. 특히 16공·18공·20공 등의 분류가 유명한데, 문헌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르며, 또한 그 해석에서도 논리적이고 조직적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분류는 부정되어야 할 대상에 따른 것일 뿐, 공 그 자체에 여러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경전에서 보이는 공은 일반적으로 매우 신비적이고 직관적인 동시에 잠언적이다.

거기서는 공에 대한 이론적 서술이나 조직적인 체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경전 편찬 배후에 있었던 당시의 이름없는 종교적 천재들은 나와 사물이 공임을 체득함으로써 모든 점에서 걸림없이 행동했을 것이고, 공에 대한 스스로의 체험을 논리화하는 데에는 흥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 학승들에 의해 그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진전된다.

즉 2, 3세기 무렵 용수와 아리아데바(Aryadeva 提婆), 4, 5세기 무렵의 무착(無著 Asanga)과 세친(世親 Vasubandhu) 등에 의한 저술이 그것이다. 앞의 두 사람을 계승하여 중관학파(中觀學派)가 흥기하고 뒤의 두 사람을 시발로 하여 유가행파(瑜伽行派)가 형성되었는데, 인도의 대승불교 철학 전분야는 이 두 학파를 주축으로 하여 전개된다.

중관학파의 공

반야경 자체는 남인도와 관계가 깊은데, 남인도 출신인 용수는 그 담당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반야경에 기초하여 공철학(즉 空觀)을 대성한 인물인 용수는 그의 주저 〈중론송〉에서 공의 체험을 바탕으로 모든 철학에 대해 비판주의적인 입장을 확립하고, 그 비판의 실제에서는 소위 귀류법(歸謬法 prasanga)을 중심으로 하는 특수한 변증론(辯證論)을 전개했다.

그는 반야경의 지혜를 중시하는 사상이 석가모니의 실천적인 연기와 중도 사상을 직접 계승한다고 생각하여, 〈중론송〉 등의 저작에서 모든 것이 공성임을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논리를 통해 명확히 하고자 하였다.

그 논법은 예리하여, 일상적인 언어가 의미상으로 흔히 예상하고 있는 실체성 또는 자성(自性 svabhava)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조금이라도 실체적·유적(有的)인 것을 인정하는 의견이 있다면 그 입장을 용서없이 비판했다.

먼저 〈중론송〉 제1장 제1송은 "어떠한 존재자(存在者)든 그 자체[自]로부터 생긴 것은 결코 없고, 또 다른 것[他]으로부터, 자(自)와 타(他)의 양자로부터, 또 원인이 없이 생긴 것은 결코 없다"고 설한다. 원인과 결과 관계를 동일[自], 별개[他], 동일인 동시에 별개[自他], 동일도 별개도 아닌 결과가 원인을 갖지 않는다[無因]는 4가지의 경우로 분류하고, 그렇게 상정한 것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씨앗으로부터 싹이 터 나오는 것을 예로 들어 제1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싹은 싹과 같은 씨앗으로부터 생긴다"고 말하는 것은 싹이 씨앗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만일 싹이 씨앗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한다면, 싹은 이미 싹으로서 존재해 있는 것이므로 새롭게 싹이 생긴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된다.

원인인 씨앗과 결과인 싹을 동일하다고 상정한다면 이와 같은 논리상의 불합리가 발생하므로, 이런 상정은 그 정당성이 부정되지 않을 수 없다. 이밖의 경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싹은 씨앗으로부터 생긴다"는 판단은 오류라고 단정된다.

이런 단정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 모순되는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생생하게 보이는 발아현상을 '씨앗', '싹', '생긴다'는 말로 끊어서 동강을 내고서는 그 말 사이의 관계에 마음을 빼앗겨 발아가 이루어져 가는 현상 자체는 직관하려 하지 않는다. 언어 쪽이 선행하고 있는 한, 발아현상 전체가 이루어져 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경험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씨앗', '싹', '생긴다'는 말은 그만두게 하여, 곧 제각기 공인 것, 자성을 갖지 않는 것, 무자성(無自性)인 것이라고 꿰뚫어본 다음 현상 자체를 전체와의 연관 속에서 바라보라는 것이 용수의 주장이다. 그는 말이 주역을 맡기 마련인 우리의 경험·인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물은 연기하고 있으므로, 다시 말해서 원인이 되는 조건을 맞아서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으므로 무자성이라고 주장했다.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에서 연기는 12지연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어떠한 일정한 사물의 인과적 연쇄에 주안점을 두었으나, 그의 연기는 한층 일반화되어 어떤 것이든 원인 조건, 즉 조건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존재하고 독자적인 존재성[我와 自性]은 갖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모든 것이 공성인 근거가 연기라고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석가모니가 깨달은 내용으로 불교의 근본원리라고 간주되는 연기와의 관계에서 공을 생각한 거의 최초의 인물일 것이다. 〈중론송〉 제24장 제18송에서 그는 "연기인 것, 그것은 공성[空]이라고 우리는 간주한다. 그것은 원인에 의거하는 인식을 위한 말[假]이며, 그것이야말로 중도[中]이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먼저 '연기=공성'임을 말하고 이런 인식 바탕 위에서 공성은 언어가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로 일관하는 허구임을 나타낸다고 한다. 다시 나아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이것은 A이다", "이것은 A가 아니다"고 하는 긍정적 판단과 부정적 판단을 내리지 않고, 고정적인 판단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중도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전개되는 그의 공사상은, 반야경에서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역할을 맡지 않았던 원시불교 이래의 연기·중도사상을 활성화하고, '공', '공성'의 개념으로 풍부한 내용을 담았다고 말할 수 있다.

'공', '공성'은 용수의 경우, "A는 A의 자성이 공인 것이다"라거나 "A는 공이다"라는 말로 표현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에 의한 것이고, A가 A로서 존재하는 사태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말과 말에 의존하는 집착에서 자유롭게 되어, A가 전체와의 관계에서 A로서 있는 점이 지혜의 완전한 상태에서는 그대로 파악될 것이다.

이처럼 자성적이고 실체적인 것을 상정하는 언어나 개념은 부정되지만, 한편으로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논리에 따라 중관학파의 학자들도 역시 변증론을 전개한다.

여기에는 용수의 중요한 교설로서 승의제(勝義諦:최고의 진리, 반야에 의한 직관의 대상)와 세속제(世俗諦:세간적인 진리)라는 이제설(二諦說)이 있다.

승의제는 항상 세속제를 초월하여 사유나 언어로는 미칠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것이며, 소위 '고귀한 침묵'으로써 표시되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설법이 45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45년 동안 한 마디도 설한 바 없다고 부정되는 것은 그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세속제에 의하지 않고서는 승의제가 스스로 밝혀질 수는 없다. 사람들을 깨우치는 석가모니 설법도, 용수의 변증론도 이런 의미에서는 세속제이다. 공은 이 2가지 진리의 어느 것에서도 타당하다. 즉 세속제로는 연기하는 세계가 무자성으로서의 공이기 때문이며, 또 승의제로는 절대의 지혜에서 모든 이원적 대립은 부정되어 공이기 때문이다.

용수의 이 변증론은 특히 4구(句)로써 잘 알려져 있다.

4구란 "유(有), 무(無), 유이며 무,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님" 등인데, 가능한 모든 경우를 이 넷으로 끝까지 검토한다. 이 4구를 분석·비판하여 그들 정언(定言)이 자성(自性)적인 한 반드시 모순을 포함함을 폭로하고, 그 때문에 공임을 밝히는 것이 귀류(歸謬)의 논리이다. 따라서 이 4구는 궁극적으로는 2구의 딜레마로 귀착한다고도 생각된다. 거기서 유와 무라는 2구의 어느 것이든 초월한 중도가 드러나게 된다. 이리하여 연기이므로 자성이 없이 공인 것은 다시 또 석가모니가 설한 '중도'와도 동의어가 된다.

공을 관찰하는 이 공관학파가 중관학파로 불리고, 또 용수의 주저(主著)가 〈중론송〉이라 명명된 것은 공성이 중도이기 때문이다.

유가행파의 공

용수 이후는 그의 사상에 근거하여 중관학파가 형성되고, 또 한편으로는 공성을 인식론적 또는 실천적으로 현실에 맞추어 해명함으로써 유가행파 즉 유식학파가 확립되어, 각각 다른 학파와도 접촉하면서 논리학적인 정확함과 체계화를 기하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공성이 허무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가능성이 계속 문제시되었다.

공관은 공견 즉 공에 대한 그릇된 집착과는 다르다. 이미 용수 당시부터 공관이 잘못된 허무론(nasti - vada:인간적인 모든 영위나 노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타락할 위험이 감지되었다. 용수가 스스로 말하기를, "공을 설한 것은 모든 견해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기 위함이므로 만일 그 공에 대해 견해를 일으켜 거기에 속박된다면, 참으로 그것은 구제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유가행파는 사람들이 이런 허무론으로 타락하는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고 간주된다. 사실 유가행파에서는 식만을 궁극의 실재라고 보아 '유식'을 설하고, 무자성에 대해 3자성을 설한다. 중관학파를 공(空)의 종파라고 부른다면, 이 학파를 의 종파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학 파는 단순히 공관에 대해 식의 실재론을 세웠던 것만은 아니다. 유가행파라는 명칭이 나타내듯이 무엇보다도 실천·수행이 그 관심의 중심이고, 이런 입장으로부터 공의 사상을 전면적으로 계승했다고 생각된다. 즉 거기서 배격한 것은 그릇된 공[惡取空]이고, 바른 공[善取空]의 파악은 중시하기 때문이다.

초기 유가행파는 스스로를 중관학파의 보완이고 발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학파의 공에 대한 이해가 중관학파의 그것과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는 점도 사실이다. 공이라는 부정을 통해 긍정의 면이 회복된다는 사실은 용수에게서도 분명히 인정되지만, 이것을 자각적으로 한걸음 더 진전시킨 것은 이 학파이며, 특히 미륵보살의 〈중변분별론 中邊分別論〉이다.

여기서는 연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인식이 고찰의 출발점이 된다. 이 인식에서 이원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주관과 객관이란 실재로서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곧 공성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 공성에서 인식은 현실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런 사실에서 중도가 성립한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용수가 '연기=공=중도'라는 등식을 성립시킨 것과 매우 유사한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더 나아가 공성을 정의하기를, 공이란 "주관·객관의 비존재, 아울러 그 비존재의 존재"라고 말한다.

이는 앞의 사상에서 직접 도출되긴 했지만, 공을 '비존재'뿐 아니라 '비존재의 존재'라고 적극적으로 말한 점은 16공에 대한 해석 등에서도 보이는 이 학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는 중관학파가 별로 주목하지 않은 원시경전의 공의 정의(〈소공경〉)와 연관되며, 부정의 면과 함께 긍정의 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존재의 존재'를 후기의 중관학파는 모순된 말로서 잘못된 이해라고 간주하여, 유식설이나 삼성설과 함께 비판했다.

이밖에 진여·실제·승의·법계 등의 긍정적인 표현을 공성과 동의어로서 열거한 점도 이 학파의 동일한 이해 방식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한편 이 학파에서는 법과 법성을 구분하듯이 공과 공성을 구별한 듯한데, 전자가 소극적인 공이라면 후자는 적극적인 절대성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반야경이나 용수에게서는 이런 구별이 명료하지 않다. 결국 공사상은 7세기 무렵부터 밀교화되어 갔던 인도불교에서도 의연히 중심적인 교의로서 그 위치를 잃지 않았으며, 이후 티베트불교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중국불교의 공

반야경은 상당히 이른 2세기 후반에 지루가참(支婁迦讖)에 의해 이미 한역되었는데, 그것을 통해 '공', '공성'의 개념이 중국에 알려졌다.

그런데 이 개념을 수용할 때, 중국에는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에 의해 성숙된 '' 사상이 있었으므로, 이를 전제로 '공', '공성'이 이해되었다.

5세기에 이르러 구마라집(鳩摩羅什)은 반야경과 용수 〈중론송〉을 포함한 대승경전을 한역하여 대대적으로 소개했는데, 산스크리트 원어 그대로의 '공', '공성'의 의미론적 측면은 전달하기가 곤란하여 '공'과 '공성'을 '공'(空) 1자(字)로 통합했다(→ 구마라집). 그런데 이때 공은 존재론적인 면에서 '유'(有)를 근저에서 지탱하는 '무', '큰 허공'이라는 의미를 띠고, 공성을 깨닫는 반야바라밀의 실천은 '무위'와도 통하는 '도'(道)의 의미를 띠는 경향이 있었으며, 또한 〈중론송〉은 그 논리성에서 번잡함마저 느끼게 하는 자구(字句) 해석에 그쳤다.

인도의 논리적·분석적인 공관이 소위 직관적·종합적인 중국의 감성으로 지탱되면서, 공관은 독자적인 전개를 맞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중론송〉 제24장 제18송에서 '연기=공성', '공(空)·가(假)·중(中)'처럼 주의깊게 열거된 개념은 그 주안점이 옮겨지게 되었다.

즉 모든 것은 공·가·중의 관점으로 관찰되어야 하는데, 관찰의 대상인 공·가·중 각각의 존재방식이 진실[諦]로서 하나가 되어 있다[三諦圓融]고 하여, 인도불교에서 긴장을 유지하고 있던 개체와 전체의 문제가 전체 속에서 개개의 구별은 무의미하다는 방향으로 옮겨진다. 말하자면 상즉(相卽)의 논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적인 무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사상(禪思想) 경우는 유의 근저에서 무를 보고, 그것을 용수철 삼아 유의 세계로 되돌아오므로,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해도 좋다. 인도에서 허무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던 공사상이 중국에서는 무사상으로 인도와는 달리 적극성을 지녔던 것이다. 이런 적극성은 중관학파의 중국적 형태인 삼론종(三論宗)에서 잘 표명된다(→ 삼론종).

삼론종이란 구마라집이 한역한 세 논서를 중시하는 중국의 중관학파라고 말할 수 있는데, 3론은 용수의 〈중론〉과 〈십이문론 十二門論〉, 그의 제자 아리아데바의 〈백론 百論〉이다.

이 삼론종에서는 공이 지닌 부정의 의미를 '파사'(破邪)라 칭하여 이것이 바로 '현정'(顯正), 즉 바른 가르침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유가행파는 중국에서 법상종으로 전개되었다.

공관의 의의

귀류법이라는 변증론은 일반적으로 원인과 결과, 운동과 변화, 사물과 그 속성, 나와 나의 소유, 전체와 부분 등등의 온갖 대립적 관계에 적용되며, 아비달마적인 5온과 그밖의 교설뿐 아니라 여래나 열반과 같은 최고 원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공임을 지적한다.

이는 아비달마 철학의 다원론적 실재론 비판에만 그치지 않고, 철학 일반을 널리 비판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중관학파 학자에게는 자기 주장으로서 정언이 있을 수가 없다. 공에 대한 자기 주장은 '공견'일 수는 있어도 '공관'은 아니다.

공의 변증론은 '공이 있음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그런 정언을 내세우기 이전에 본래 공임을 세간의 논리로 알릴 뿐이다. 그러므로 공관의 입장은 '무입장의 입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또 곧 중도이다. 이 중도 공은 유와 무를 초월하기 때문에 유는 그대로 무이다. 마찬가지로 생사는 자성으로서의 생사가 아니고, 열반도 역시 자성으로서의 열반이 아니기 때문에 '생사는 그대로 열반'이다.

용수의 이 철학이 공이라는 부정을 원리로 삼아 고도의 이론으로 전개된 것은 철학사에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철학적·형이상학적인 이론만을 구성하지 않고, 그 이상의 실천적·종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공을 중도라고 칭했던 데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보시를 실천할 경우, 보시와 보시되는 물건과 보시의 상대 모두가 공임을 설하는 점에서도 그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반야경에서 종교적·신비적으로 직관되었던 공이 다시 용수에 의해 체계적으로 조직되어 수행자의 명상의 대상으로서 제시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