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

용수

다른 표기 언어 Nagarjuna , 龍樹
요약 테이블
출생 150경
사망 250경
국적 인도

요약 용수는 인도 대승불교의 한 종파인 중관학파의 창시자로 추앙된다. 후세의 몇몇 불교학파가 그에게 연원을 두고 있어, 중국에서는 그를 소위 '8종의 조사'로 존경했다. 그의 산스크리트 저서 <중론송>, <회쟁론>은 존재의 근원, 지식의 수단, 진리의 본질에 관해 분석했다.
그에 관한 최초의 전기는 유명한 번역가인 구마라집이 405년경에 한문으로 쓴 것이 남아 있다. 그는 다른 중국인이나 티베트인과 마찬가지로 용수가 인도 남부에서 힌두 승려계급인 브라만으로 태어났다고 기록했다. 소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과 서로 어긋나는 부분도 있지만, 그가 뛰어나게 총명했고, 현재 동아시아 불교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대승불교의 교리를 배우고 나서 정신세계에 큰 변화를 겪었다고 전한다. 그 후 인도에 그 진리를 전파했으며, 현학적이며 철학적인 이론들을 논파했다.

용수(Nagarjuna)
용수(Nagarjuna)

중관학파의 창시자로 추앙된다. 이 학파의 (空 śūnyatā)에 대한 설명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후세의 몇몇 불교학파가 그에게 연원을 두고 있어, 중국에서는 그를 소위 '8종(宗)의 조사'로 존경했다. 그의 산스크리트 저서 〈중론송 Mūlamadhyamakakārikā〉(〈Mādhyamika Kārikā〉로 더 잘 알려져 있음)·〈회쟁론 Vigrahavyāvartanῑ〉은 존재의 근원, 지식의 수단, 진리의 본질에 관해 분석했다.

용수에 관한 최초의 전기는 유명한 번역가인 구마라집(鳩摩羅什)이 405년경에 한문으로 쓴 것이 남아 있다. 그는 다른 중국인이나 티베트인과 마찬가지로 용수가 인도 남부에서 힌두 승려계급인 브라만으로 태어났다고 기록했다. 소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과 서로 어긋나는 부분도 있지만, 그가 뛰어나게 총명했고, 현재 동아시아 불교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대승불교의 교리를 배우고 나서 정신세계에 큰 변화를 겪었다고 전한다.

구마라집의 기록에 따르면, 용수가 근본 불교를 배우고 나서도 완전한 만족을 얻지 못하자, 마하나가 보살[大龍菩薩:'나가'는 뱀이라는 뜻으로 인도 남부 구릉지대에 사는 부족의 이름임]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에게 대승불교의 가장 심오한 게송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용수는 순식간에 그것을 터득하여, 인도에 그 진리(dharma)를 전파했으며, 현학적·철학적인 이론들을 논파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오랫동안 장수하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여러 자료에서 용수의 종교세계의 특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달리 서술하고 있고 연도도 500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아,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그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해지거나 전해지는 도중에 임의로 지어낸 이야기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료에 근거하여 그의 생애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현대 학자들은 용수가 살았던 시대를 빠르게는 50년부터, 늦게는 280년으로 추정하는데 대개 150~250년경에 살았을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또 그가 인도 남부에 살았다는 주장도 고고학적인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그 하나는 사타바하나 왕조의 왕인 야즈냐슈리(173~202경)에게 그가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Suhṛllekha:우정의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 남부에 살고 있던 부족의 이름인 나가가 그의 이름에 들어 있다는 점이다. 비록 용수의 부모나 성장과정에 관한 증거자료는 없지만 뒤에 쓴 주석서에 보이는 힌두 철학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을 볼 때, 그가 브라만 가풍 속에서 자랐음을 알 수 있다.

힌두교와 초기 불교의 철학적·심리학적 사상에 대한 그의 주석이 얼마나 널리 받아들여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자들이 그의 주석서를 전수해왔다는 사실에서 그의 폭넓은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영향과 저서

용수의 사상은 중관학파에 의해 계승되었다.

오늘날 동아시아 여러 학파에서는 철학적 명제에 대한 그의 주석과 교훈적 해설을 대장경에 포함시켜 연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티베트 대장경의 텐귤[論疏部]에는 중도(中道)에 대한 논서(論書) 17편이 실려 있다. 17편 전부를 용수가 쓴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그가 썼다고 하는 부분도 다른 사람이 썼을지 모른다. 그가 쓴 것이 확실한 두 편, 즉 〈중론송〉·〈회쟁론〉이 현재 산스크리트로 전해진다.

용수는 두 책에서 연기(緣起), 지식의 수단, 진리의 본질에 관한 그릇된 견해를 논파했다. 그가 썼다고 하며 한역본만 전해지는 세 편은 〈대지도론 大智度論〉·〈십주비바사론 十住毘婆沙論〉·〈십이문론(十二門論) Dvādaśa-dvāra-[nikāya-]ś āstra〉이다. 티베트 불전에서만 발견되며 대체로 용수의 저서로 인정되는 세 편은 〈육십송여리론 六十頌如理論〉·〈공칠십론 空七十論〉·〈광파경 廣破經〉이다. 티베트에서는 중관의 분석에 대한 게송뿐만 아니라 수많은 의궤서(儀軌書)와 의술서(醫術書)도 그의 작품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최근에 발견된 인도 자료에도 용수라는 이름의 싯다(siddha), 즉 마법사에 관한 언급이 있다. 그는 진언(眞言)·만다라와 같은 탄트라 수행을 통해 신비한 힘을 얻었고 명상과 금식을 통해 영적인 세계에 도달했다고 한다. 불사(不死)의 영약을 발견했다고 하는 연금술사에 관한 이야기도 이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역사자료의 부족과 서로 상반되는 주장으로 인해 티베트 전승을 제외하고는 이 위대한 마법사의 이야기를 2세기의 철학자에 관한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용수의 삶과 철학관의 일면은 그의 저서에서 엿볼 수 있다.

비판적·분석적인 게송과 교설적인 논서·편지·찬가 등에서 그가 모든 사물의 공허함을 인식하고 그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무집착'(無執着)의 철학을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실천했음을 알 수 있다. 〈중론송〉 등에서 그는 철저한 논증을 통하여 존재에 대한 힌두교와 불교의 견해를 비판했다. 논쟁은 주로 상좌부(上座部 Sthaviravāda)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a)를 상대로 했다.

용수의 철학은 대승불교의 초기 경전인 〈반야경 般若經〉에 나타난 사상과 매우 유사하며 그 영향을 받았던 듯하다. 이 경전에 나오는 공(空)의 개념은 해탈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용어이고, 또한 중관학파의 특징을 규정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는 존재의 본질이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어떠한 영혼·사물·개념도 그것이 존재하는 맥락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물은 절대적인 실체를 결여하고 있으며, 오로지 조건에 연관되어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유위의 세계 밖에 무위(無爲)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절대적인 깨달음의 경지인 열반도 유위(有爲)의 세계와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密)을 갖춘 사람은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열반을 동시에 감지한다. 반야바라밀은 보살도(菩薩道)를 이루는 다른 바라밀, 즉 인욕(忍辱)·지계(持戒)·선정(禪定) 등의 토대가 된다.

또한 반야바라밀은 수도자들이 다시 바라밀에 집착하여 모든 현상이 연기(緣起)에 의해 생겨난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일도 없게 한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논쟁에 참여하는 것, 부처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글을 쓰는 것, 고(苦)와 미망에서 해탈하는 데 대한 게송을 읊는 것은 지혜와 자비행이 분리되지 않은 최고의 진리에 합치되는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