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회피

음지회피

[ shade avoidance ]

음지회피(shade avoidance)는 식물이 그늘에 위치할 때, 즉 음지조건에 놓일 때 보이는 일련의 반응들이다. 음지회피 반응들에는 신장 생장 변화, 개화시기 변화, 정단우성 변화, 영양소 분배 변화 등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반응들을 통칭하여 음지회피 현상이라 한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음지회피와 음지적응(shade tolerance)의 복합적인 전락을 가지고 환경에 적응한다. 식물은 자연 환경에 고착되어 있고, 빛은 광합성을 포함하여 식물의 영양과 성장을 위한 대사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음지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은 모든 식물에서 중요하다.

목차

음지 인식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만드는 그늘(예: 바위 등)과 다른 식물이 만드는 그늘을 구별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경쟁하거나 미래에 그늘을 만들 수 있는 다른 식물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식물이 만드는 그늘에는 적색광보다 원적색광이 더 많이 존재한다. 식물은 광수용체 피토크롬을 이용하여 적색광과 원적색광의 상대적인 비율을 측정함으로써, 다른 식물의 그늘 속에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고 그에 맞추어 성장 전략을 바꾼다.

모델식물 애기장대에서는 적색광/원적색광 수용체인 피토크롬B가 음지회피를 조절하는 주요 광수용체로 기능한다.1) 피토크롬B는 PR과 PFR 두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PR형태의 피토크롬은 적색광을 흡수하여 PFR로 전환되고, 이와는 반대로 PFR이 원적색광을 흡수하면 PR로 형태가 변환된다. 식물에 공급되는 빛에 존재하는 적색광과 원적색광의 상대적인 비율에 따라 PR과 PFR의 상대적인 양의 동적 평형 상태가 변화하게 된다. 만약 원적색광이 증가하면 PR의 상대적인 양이 증가하게 되고, 식물종에 따라 달라지는 특정 역치를 넘게 되면 음지 인식에 따른 음지회피 신호전달 과정이 활성화된다.

어린식물의 음지회피

음지회피 반응은 어린식물(유식물, 유묘)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모델식물 애기장대의 경우 생활사의 단계에 따라  음지회피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건조한 휴면 종자의 경우 그늘 아래서는 발아하지 않는다. 종자의 휴면상태가 깨지고 물을 흡수하게 되면, 종자발아가 시작되고 어린식물의 성장이 진행되면서 하배축 신장이 일어나게 된다. 종자가 흙속 깊이 존재하여 그늘이 유도된 경우, 어린식물이 보다 빠르게 수직 방향으로 길이 신장을 해서 흙을 뚫고 위로 자라는 것이 정상적인 생장을 위해 필요하다. 애기장대의 어린식물은 빛 조건에 비해 음지조건에서 잎자루와 마디 그리고 하배축이 상대적으로 더 길게 자란다.2)

음지 조건에서 자란 애기장대 어린식물 (출처:소문수)

어린식물의 음지회피 신호전달 경로

순무(Brassica rapa) 어린식물에서 빛의 종류 및 적색광/원적색광의 비율은 떡잎에서 인식되어 식물호르몬 옥신 생성을 증가시킨다. 애기장대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을 통해 피토크롬작용단백질(phytochrome interacting factor, PIF)이 옥신 생성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규명되었다. PIF는 발아 억제와 음지회피에 관련된 많은 유전자들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조절인자로 작용한다. 여러 PIF 단백질들 중에서도 PIF4, PIF5, PIF7이 옥신 생합성 유전자의 발현을 직접적으로 조절하고, 다른 PIF 단백질은 옥신과 식물의 반응을 조절하는데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3)

그늘 환경에서 PIF 단백질은 안정성이 높아지고, DNA에 대한 결합력이 높아져서, 옥신옥신 수용체 합성 유전자를 포함한 음지회피 반응에 관련된 유전자들의 전사를 촉진시킨다. 옥신 생합성 유전자들의 발현 촉진 과정을 통해 다량으로 생성된 옥신은 하배축 신장을 촉진시킨다.

성체 식물의 음지회피

성체 식물의 음지회피에 대한 연구는 어린식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어 왔다. 모델식물 애기장대의 경우, 성체 식물의 음지회피는 어린식물에서보다 더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음지조건에서 성체 식물 잎자루는 길어지고, 잎몸은 작아지며, 곁눈(측아; axillary bud) 형성이 억제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음지조건에서 잎자루가 옆으로 길게 신장되는 것은, 잎의 위치를 음지로부터 벗어나게 함으로써 더 많은 적색광의 흡수를 통해 광합성 효율을 증가시키는 방안으로 생각된다. 또한, 음지조건에서 잎자루 아래쪽의 세포들이 위쪽보다 더 빨리 신장하게 되어 이 빛이 공급되는 위쪽 방향으로 휘어자라는 현상도 관찰된다(hyponasty).

성체 식물은 그늘이 지는 음지조건에 놓이게 되면, 생식 전략을 수정하기도 한다. 더 많은 영양기관이 자라더라도 빛 부족으로 인해 광합성 효율이 떨어지게 되어 충분한 영양분을 얻을 수 없는 조건에서 식물은 빨리 꽃을 피운다. 이러한 조기 개화는 음지조건에 놓인 식물이 더 이상 생장이 어려운 환경 조건에서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고육책으로서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초래하게 된다. 애기장대의 경우 조기 개화는 종자 생산 감소, 작은 과육, 종자 발아율 감소 등 전체적으로 생식 성공률이 낮아지는 현상을 초래한다.

지난 수십년간 곡물 수확 증가는 작물의 재배 밀도를 증가시킴으로써 가능했다. 식물의 재배 밀도를 증가시키면 식물이 받는 빛의 원적색광 비율이 증가하게 된다. 이에 식물 육종가들은 높은 재배 밀도에서도 수확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음지회피 반응이 적게 나타나는 작물들을 선별해왔다. 

성체 식물의 음지회피 신호전달 경로

어린식물에서와 같이 성체 식물의 음지회피 또한 여러 다양한 기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성체 식물에서 나타나는 음지회피 현상 중 하나인 잎자루의 신장 과정에는 세포신장과 세포분열이 모두 관여되어 있다. 새롭게 자라는 잎에서는 세포분열이 1차적으로 중요한 생장 요인인 반면에, 다 자란 잎과 잎자루에서는 세포신장이 더 중요한 생장 요인이 된다. Xyloglucan endotransglucosylase/hydrolases(XTHs)는 세포벽 변형 단백질의 유전자군으로서, 그늘이 진 음지조건에서 XTH9, XTH15/XTH7, XTH16, XTH17, XTH19 등의 유전자들의 발현이 증가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이들 XTH 유전자 산물들은 세포벽 구성 성분들 사이의 결합을 끊어 세포벽을 느슨하게 함으로써, 잎자루 세포들의 신장을 촉진시킨다.4) 또한, 어린식물과 마찬가지로 성체 식물에서도 음지조건에서 적색광/원적색광 비율이 감소하게 되면, 성장을 촉진하는 옥신 관련 유전자와 브라시노스테로이드 반응 유전자들의 발현이 증가하게 되는데, 피토크롬작용단백질 중의 하나인 PIF7이 이 반응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음지조건에서 식물의 잎이 말리는 현상이 관찰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잎의 위쪽과 아래쪽에서 불균등한 세포분열과 세포신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잎의 말림은 전사 조절 인자인 ATHB4와 HAT3에 의해 조절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광신호전달 경로가 옥신, 자스몬산, 지베렐린 등의 호르몬 신호전달 경로와 상호작용을 통해 음지회피 반응을 조절하는 것으로 생각된다.5)

참고문헌

1. Smith, H.; Whitelam, G. C. (1997) The shade avoidance syndrome: Multiple responses mediated by multiple phytochromes. Plant, Cell and Environment, 20: 840–844
2. Casal (2011) Shade Avoidance. The Arabidopsis Book, 10: e0157
3. Leivar, P; Quail, PH (2011) PIFs: pivotal components in a cellular signaling hub. Trends in Plant Science, 16: 19-28
4. Sasidharan, R; Chinnappa, CC; Staal, M 등 (2010) Light quality-mediated petiole elongation in Arabidopsis during shade avoidance involves cell wall modification by xyloglucan endotransglucosylase/hydrolases. Plant Physiology, 154: 978-990
5. Nozue, K., Tat, A. V., Devisetty, U. K. 등 (2015) Shade Avoidance Components and Pathways in Adult Plants Revealed by Phenotypic Profiling. PLOS Genetics, 11: e1004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