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구

지용구

[ 池龍九 ]

요약 해금 연주가. 해금산조(奚琴散調) 명인. 경기도 수원(水原) 출생. 기예는 거문고·양금(楊琴)·가야금·단소·생황·장구(長鼓)·해금.
출생 - 사망 1857년 ~ 1938년
지용구

대한제국(1897~1910) 시절 및 일제강점기 해금 명수. 해금시나위로 불리는 해금산조를 창조하여 지용구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의 해금산조는 지영희(池瑛熙)에게 전승되었다. 지방에서 활동하다 상경해 조선정악원(朝鮮正樂院)에서 풍류를 연주했고, 특히 해금시나위에 뛰어났다.

1920년대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해 해금산조를 비롯해 가곡·가사·"여민락"(與民樂)·"영산회상"(靈山會相)·조선음률(朝鮮音律)·해금독주를 방송했다. 김기산(젓대)·김상순(洋琴)·김일우(長鼓)·조이순(거문고조동석(短簫)과 함께 가곡명창 김기현·장덕근·정학기남창가곡을 반주하였다. 또한 경성방송국에 출연해 김기산(젓대)·고재덕(竹笛)·김일우(長鼓)·조동석(短簫)과 함께 윤백남의 가사를 반주했다. 고재덕(젓대)·김상순(양금)·조이순(거문고) 등과 함께 "영산회상"을 방송했으며, 김상순(양금)·조이순(거문고)·조동석(단소)과 함께 "여민락"과 "평조회상"(平調會相)을 방송하였다.

1927년 5월 28일 경성여자미술학교 교우회 주최 조선정악대회(朝鮮正樂大會) 때 김형준·이성환·방용현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28~1938년 박녹주·박종기·정원섭과 함께 가곡·가사·가야금병창·가야금산조·"강상(江上)에 둥둥"·"강원도아리랑"·"개고리타령"·"개성난봉가"·"경복궁아리랑"을 포함한 50여 곡의 민요 및 "영산회상"·"평조회상" 등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1930년 9월 15일 팔도명창대회김기풍·김만송·김명수 등과 함께 풍류 공연에 출연했고, 1933년 8월 12일 조선악협회(朝鮮樂協會)가 조선음악학원(朝鮮音樂學院) 창립을 위한 「조선악 감상의 밤」 때 출연했다. 1933년 8월 20일 조선음악학원 설립을 위한 「전통악과 무용의 밤」 때 출연하였다.

1934년 3월 3일 개성고려청년회 주최 조선정악대회 때 출연했고, 1938년 5월 2일 전조선향토연예대회 때 최수성·방용현·김덕진 등과 함께 신선음악(神仙音樂)을 연주하였다.

일제강점기 그가 취입한 "방아타령"·"양산도"(陽山道)·"살푸리"·"신아위"(神我位), 그리고 그가 가야금명인 심상건과 합주한 "굿거리"는 일축(日蓄)제비표 조선레코드에 전한다. 고재덕·김경식·문영수 등과 함께 취입한 "수양가"(首陽歌)·정악·줄풍류·"본영산"·"타령"·"중타령"·해금독주는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그가 해금으로 반주한 김소희·신숙·이화중선·임방울의 노래는 오케음반에 전하며, 그의 반주로 김옥엽·이진봉이 취입한 속요(俗謠) "놀량"은 군소회사음반에 전한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859~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