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섭

정원섭

[ 丁元燮 ]

요약 타악기(고수) 연주가. 명고수. 전북 익산군(益山郡) 내촌리 출생.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 이사.
출생 1873년
정원섭

어려서 정창업(丁昌業)의 문하에서 소리학습을 받다가 도중에 작파하고 고법을 학습하여 일가를 이뤄 명고수 한성준(韓成俊)과 쌍벽을 이루었다.

1933~1943년 강태홍·곽명월·김소희 등과 함께 가야금병창·가야금산조·"공도난"(公道難)·"굿거리"·"농부가" 등 20여 곡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했다. 그가 반주한 가야금병창·단가·배비장전·잡가·창극 춘향전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그의 장구반주로 고영태·김소희·김연수 등이 취입한 여러 곡은 오케음반에 전하고, 그가 취입한 남도잡가(南道雜歌) "농부가"·"자진농부가" 및 단가 "옥루추창"(玉樓秋窓), 그리고 춘향전의 "박석틔"는 태평음반에 전한다.

1936년 2월 9~11일 조선성악연구회의 가극(歌劇) 배비장전(裵裨將傳) 공연 때, 1936년 9월 15~16일, 25일 조선성악연구회 주최 가극 춘향전 공연 때, 그리고 1936년 10월 28일 조선성악연구회 주최 가극 흥부전 공연 때 출연하였다.

1937년 2월 26~3월 2일 조선성악연구회 주최 가극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의 공연 때, 1937년 6월 21~25일 조선성악연구회 주최 가극 편시춘 때, 그리고 1937년 7월 2~3일 조선성악연구회의 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1938년 5월 23일 조선성악연구회의 제5회 정기총회 때 이사로 선출됐다. 1938년 4월 27일 판소리대회의 춘향전 전창(全唱) 때 출연했으며, 1938년 5월 23일 조선성악연구회 제5회 정기총회 때 이사로 선임되었다.

1938년 8월 8일 동양극장에서 공연된 창극 옹고집전(雍固執傳) 때, 1939년 5월 21일 이동백은퇴공연(李東伯隱退公演)의 지방순회공연 때 출연했다. 1939년 5월 22일 조선성악연구회 제6회 정기총회 때 이사로 당선되었다.

1940년 1월 15~16일 조선음악연구회의 일류명창대회가 열렸을 때, 1940년 2월 20~30일 조선성악연구회 주최 창극 옥루몽(玉樓夢) 공연 때, 그리고 1940년 3월 16~17일 한해구제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1940·1941년 박녹주·이동백·정남희 등과 함께 가야금병창·대금독주·창극조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807~8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