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통영항)

경남 통영(통영항)

분류 교통/통신/지리 > 해양문화사전 > 해양도시 > 항포구

동경 128°07′∼128°44′, 북위 34°30′∼34°58′에 있다. 행정구역은 1개 읍, 6개 면, 11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선의 총길이는 617km로서 유인도 41개, 무인도 109개의 총 150개의 부속도서가 있다. 북쪽으로 고성군에 접하고, 동쪽으로는 내량해협 수로를 끼고 거제시와, 서쪽으로는 남해군과 마주하며, 남쪽으로는 남해에 면한다. 지리적 특성상 육로보다는 해로교통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부산에서 여수를 잇는 항로의 중심지였으나 남해고속도로의 개통과 육로교통망의 확충, 그리고 1990년대 초반 마산·통영 간의 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고 자동차 보유대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부산·마산·삼천포·여수 간의 연안여객선은 차츰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지형은 고성반도 남부와 미륵도·한산도 및 그 밖의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벽방산(650m)을 비롯한 해발고도 500∼700m의 노년기 산지가 고성반도의 척량을 이루고, 여기서 뻗어내린 산등성이가 바다에 몰입하여 크고 작은 반도와 섬을 형성한다. 주로 구릉지와 매립지가 발달하여 평지가 없고, 다만 해안에 약간의 평지가 있을 뿐이어서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지역이다. 해안은 드나듦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i 로 42개의 유인도와 109개의 무인도가 산재하며, 미륵도는 2개의 다리와 1개의 해저터널로 육지와 연결된다. 대부분의 섬들이 아름다운 바다 풍경으로 유명한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수온이 적당하고 동해난류가 흐르는 이 해역은 한국 수산(水産)의 보고라 할 수 있어 일찍부터 어업이 발달하였다.

사진

2001년 통영 남해안 별신굿

2001년 통영 남해안 별신굿 남해안별신굿은 경상남도 거제도를 중심으로 통영시 일대의 어촌과 한산도, 사량도, 욕지도, 갈도, 죽도 등지에서 벌어지는 이 지역 어촌의 공동제의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2-라호이며 마을의 평안과 장수를 기원하며 어민들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기를 비는 굿이다. 무당의 노래가 뛰어나고 반주악기에 북이 첨가되는 것이 특징이다. 굿은 들맞이-당산굿- 일월맞이굿-용왕굿-부정굿-가망굿-제석굿-서낭굿-댓굿-손굿-염불굿-군응굿-거 리굿으로 진행된다. 춤은 비교적 단조롭고 소박하며 혼자 추는 독무가 많다. 굿의 시작에는 청신악, 끝부분에서는 송신악을 하는데 이때에는 대금으로만 연주한다.

2001년 겨울 통영항 전경

2001년 겨울 통영항 전경 2001년 1월 13일 눈 오는 날의 모습이다.

1960년대 통영 충렬사

1960년대 통영 충렬사 1960년대 충렬사의 모습이다. 충렬사는 1606년(선조 39) 제7대 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왕명으로 세웠으며, 1663년(현종 4) 사액(賜額)되었다. 이충무공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있다. 본전(本殿)과 정문(正門) ·중문(中門) ·외삼문·동서재·경충재·숭무당·강한루·유물전시관 등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경내에는 많은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81년(숙종 7)에 제60대 민섬 통제사가 세운 통제사충무이공충렬묘비이며 충무공 후손통제사 비각 2동에 6기가 있고, 이운용 통제사 비각, 김중기 통제사 비각, 유형 통제사 비각이 있다.

1950년대 통영 충렬사

1950년대 통영 충렬사 1950년대 충렬사의 모습이다. 충렬사는1606년(선조 39) 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왕명으로 세웠고, 1663년(현종 4) 사액(賜額)되었다. 충렬사는 본전(本殿)과 정문 · 중정문(中正門) · 충무당 등의 건물로 이루어졌는데, 이 곳에는 정조어제기판(正祖御製記板)과 명나라에서 이충무공에게 내린 팔사품(八賜品)이 보관되어 있고, 정문 밖에는 통제사 김위영(金諱永)의 타루비(墮淚碑) 등이 세워져 있다. 197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10년대 통영항 전경

1910년대 통영항 전경 1910년대 충무시의 전경이다. 경남 남해안 중앙의 고성반도(固城半島) 남쪽 끝에 1994년까지 존속한 행정구역으로 면적은20.85㎢이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소가야국(小伽倻國)의 일부인 독로국(瀆盧國)에 속했고, 신라통일 이후인 747년(경덕왕6)에는 고성군(固城郡)에 속했으며 그 후 거제현(巨濟縣)에 병합되었다가 다시 고성군 춘원면(春元面)이 되었다. 1900년(고종37) 진남군(鎭南郡)이 설치되면서 진남군 춘원면으로 불리다가 1910년(순종4) 진남군이 통영군으로 개칭된 뒤 14년에 통영군 통영면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31년에는 읍으로, 1955년에는 충무시로 승격하였다.

1910년대 통영 강한루

1910년대 통영 강한루 1910년대 강한루의 전경이다. 강한루(江漢樓)는 1987년 충렬사 정문 앞에 세워졌다. 홍살문을 지나 외(外) 3문(門)을 지나 눈앞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중 문루인 강한루에 들어서게 된다. 팔작 지붕이며 전체적으로 단청이 장엄되어 있다. 전면에 강한루라는 현판과 후면에는 영모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건물은 1840년에 건립되었으나 오랜 세월 동안 훼손되어 1988년 다시 복원되었다.

1900년대 통영 충렬사

1900년대 통영 충렬사 1900년대 충렬사의 모습이다. 충렬사는 1606년(선조 39) 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왕명으로 세웠고, 1663년(현종 4) 사액(賜額)되었다. 충렬사는 본전(本殿)과 정문 · 중정문(中正門) · 충무당 등의 건물로 이루어졌는데, 이 곳에는 정조어제기판(正祖御製記板)과 명나라에서 이충무공에게 내린 팔사품(八賜品)이 보관되어 있고, 정문 밖에는 통제사 김위영(金諱永)의 타루비(墮淚碑) 등이 세워져 있다. 197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00년대 통영 세병관 통영성 남문

1900년대 통영 세병관 통영성 남문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군사상의 취약점을 고려하여 만든 통제사의 본영이 있던 터이다. 당시의 통제영 건물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세병관 뿐이며,통제사 내아인 운주당·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선자방)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그 밖에 파취헌·분뇨정 등의 지역에는 충렬여자중·상업고등학교가 각각 위치하는 등 통제영지 대부분의 지역에 주요 관공서가 들어서 있다.

1900년대 통영 세병관 통영성 남문

1900년대 통영 세병관 통영성 남문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군사상의 취약점을 고려하여 만든 통제사의 본영이 있던 터이다. 당시의 통제영 건물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세병관 뿐이며,통제사 내아인 운주당·경무당 지역에는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이, 통제사 집무실이었던 백화당과 관아에서 사용하던 각종 물품을 납품한 공고(12공방·선자방)지역에는 통영초등학교가, 통제사 참모장의 군영인 중영 및 중영내아 등 지역에는 통영세무서가, 그 밖에 파취헌·분뇨정 등의 지역에는 충렬여자중·상업고등학교가 각각 위치하는 등 통제영지 대부분의 지역에 주요 관공서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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