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리 유적

죽산리 유적

[ 寶城 竹山里 遺蹟 ]

지역 보성
다군 9호 지석묘 평ㆍ단면도

다군 9호 지석묘 평ㆍ단면도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하죽 마을 앞의 발달된 강변의 충적대지 위에 위치하는 유적으로, 이곳은 1987년 고인돌(支石墓)을 발굴하면서 주변에서 구석기 및 신석기·철기시대에 이르는 유구와 유물을 확인한 바 있다.

고인돌은 동복천을 따라 4개의 군집지역을 이루고 있는데, 보성강 본류와의 합류 지점으로 강변 충적평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고인돌들은 강에 인접되어 강 방향인 남~북 방향으로 열을 지어 있다.

가군 고인돌은 11기의 덮개돌(上石)을 조사하여 돌돌림형(圍石型) 2기, 토광형(土壙型) 3기 등 5기의 유구(遺構)만 확인되었고, 보성강유역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돌덧널형(石槨型) 무덤칸은 1기도 없었다. 유물은 민무늬토기 약간과 1호에서 유병식돌검(有柄式石劍) 1점이 출토되었다.

나군 고인돌은 가군과 같은 천변의 논두렁에 있으며 12기의 덮개돌을 조사하여 돌덧널형 4기, 토광형 2기 등 6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 고인돌은 원래 덮개돌이 논둑에 쌓여진 상태여서 상당수가 파괴된 것으로 판단된다. 중요한 유물은 4호에서 출토된 유병식돌검 1점 뿐이며 토기 및 다른 부장품은 전혀 없다.

다군 고인돌은 원래 23기의 덮개돌들이 논에 묻혀 윗부분만 노출된 상태로 남~북 3열을 이루고 있었는데, 발굴과정에서 소형 덮개돌 17기가 더 확인되어 모두 40여 기가 분포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으나 조사된 수는 31기였다. 무덤칸 배치는 강물흐름과 같은 남~북 방향으로 3열을 이루고 있다. 돌덧널형과 돌돌림형이 쌍을 이루고 있는 경우는 두 형식간의 연대나 피장자(被葬者) 문제 등을 살필 수 있는 자료라 하겠다.

유물은 1호 출토 갈판(碾石) 1점을 제외하고 모두 돌덧널형 무덤칸에서 돌검 10점, 돌화살촉(石鏃) 3점이 부장유물로 발견되었으며 무덤칸 상면이나 주변에서는 돌화살촉 2점, 돌칼(石刀) 5점, 돌도끼(石斧) 3점, 돌끌(石鑿) 3점, 숫돌(砥石) 2점, 그물추(漁網錘) 7점, 가락바퀴(紡錘車) 1점, 갈돌 3점 등이 있고 이외에 민무늬토기편, 붉은간토기(紅陶)편, 소뿔모양손잡이(牛角形把手)편, 김해식토기편 등이 있다. 출토유물 중 12호에서는 유병식과 유경식돌검(有莖式石劍)이 각 1점씩 15호에서는 유경식돌검 2점과 세장형돌화살촉 3점이 공반되어 출토되었다.

죽산리 고인돌은 구조면에서 여타 고인돌보다는 대형이고, 완전한 형태를 구비하고 있으며, 또 돌돌림형 무덤칸의 존재가 뚜렷이 밝혀져 고인돌 형식이나 그 성격을 밝혀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 하겠다. 또한 주변에 집자리 밀집지역이 확인되어 한반도의 기반식(南方式)고인돌과 집자리(住居址)의 연계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지역으로 생각되며 고인돌의 일부는 기존의 민무늬토기 집자리를 파괴하면서 설치되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1989년 전남대박물관에 의해 4기의 집자리가 확인되었으나 2기는 불확실하다. 집자리의 평면형태는 말각방형(抹角方形)이고, 한 변의 길이는 5.0m 내외이다. B-1호 집자리 내부에 벽을 따라가면서 도랑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출토된 유물은 연질의 적갈색토기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납작바닥의 깊은바리모양(深鉢形)과 손잡이토기, 둥근바닥의 포탄형토기, 시루 등이 있다. 그리고 돌화살촉, 토제 가락바퀴 등도 출토되었다. 또한 성균관대박물관에 의해 2기의 철기시대 집자리가 조사되었다. 집자리의 평면형태는 원형(圓形) 내지 타원형(楕圓形)이고, 화덕자리(爐址)는 한 쪽 벽에 치우쳐 만들어져 있다. 출토유물은 돌도끼, 그물추 등 석기류와 연질 및 경질의 토기가 혼재되어 있다.

이 외에 A지구와 B지구로 나누어지는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지층이 잘 남아있는 A지구의 층위를 기준으로 4개 층으로 나뉜다. 위로부터 1지층은 부식토층(10~15㎝), 2지층은 재퇴적층(25~30㎝), 3지층은 유물포함층(적갈색점토층 55~60㎝), 4지층은 암반부식토층이다. 발굴당시 2지층은 상당수 교란된 상태여서 유물포함층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B지구는 A지구에서 보이는 4개 기본층위는 대부분 교란되었으며 3지층만 일부 남아있었고 표토층 아래에 얇은 황갈색층이 일부 지점에만 남아있었다.

A지구에서 발굴된 유물은 총 7점으로 2·3 지층에서 확인되었다. B지구에서는 2점이 확인되었다. A지구에서는 2지층에서 찍개 1점, 3지층에서 새기개, 찍개, 찌르개, 긁개 등이 발굴되었다. B지구에서는 A지구의 3지층과 같은 적갈색점토층에서 여러면석기 1점과 윗층인 황갈색층에서 응회암제 격지 1점이 발굴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발굴된 지점이 좁았을 뿐 아니라 유물의 수량도 적어 뚜렷한 편년을 설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 유적에서는 3개 문화층이 확인되고 있으며 A지구의 교란되지 않은 2지층과 3지층에는 토양쐐기가 확인되고 있다. 이 층에서는 모두 자갈돌 석기전통의 석기문화가 확인되고 있다. 석재는 강 자갈돌과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영맥암을 자유롭게 활용하였다. B지구의 황갈색 점토층에서는 주암댐 수몰지구의 여러 구석기지점에서 확인되는 후기구석기 최말기의 석기군에 속하는 응회암제 격지가 발굴되어 편년의 지표가 된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 죽산리 구석기유적 발굴조사보고(황용훈·신복순, 보성강·한탄강유역 구석기유적 발굴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4년)
  • 竹山里 하죽 가群 支石墓(黃龍渾, 住岩댐水沒地域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Ⅲ, 1988년)
  • 竹山里 하죽 나群 支石墓(孫秉憲·李日容, 住岩댐水沒地域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Ⅲ, 1988년)
  • 竹山里 하죽 다群 支石墓(宋正炫·李榮文, 住岩댐水沒地域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Ⅲ, 1988년)
  • 寶城 竹山里遺蹟의 性格(李榮文, 博物館紀要 4, 檀國大博物館, 1988년)
  • 住岩댐水沒地區考古分野調査報告(崔夢龍·李榮文, 住岩댐水沒地區地表調査報告書, 198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