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의 역사

바라의 역사

요약 불교의식과 관련된 바라는 인도를 거쳐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남북국시대~고려시대에는 불교음악에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불교음악 외에도 궁중정재와 군악의 무구(舞具)나 악기로 편성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바라는 대취타, 궁중정재, 불교음악, 무속음악, 농악 등 전통음악 및 창작음악에 활용되고 있다.

1. 바라의 기원

동 · 서양에서 두루 쓰이는 바라는 고대 이집트, 시리아, 그리스, 로마 등에서 기원전부터 종교 의식에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 발상지인 인도를 거쳐 중국을 통해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한반도의 바라는 남북국시대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유물에 나타나는 바라는 지름 10~30cm의 반구형으로 감은사 삼층석탑(7세기 말) 사리기의 주악상, 금동가릉빈가상,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탑(869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883년), 전북 임실군 출토 바라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초기 한반도에 유입된 바라는 주로 불교의 의식음악 연주에 편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교 관련 부조나 조각 등의 도상학 자료에 나타난 남북국시대의 바라는 대체로 지름 10~20cm 정도의 크기이며, 울림판의 생김새는 반구형으로 현재의 바라와는 그 크기나 생김새가 다르다.

감은사 삼층석탑 사리기 윗면의 네 모서리에는 비파, 대금, 장구, 바라를 연주하고 있는 네 명의 악사가 장식되어 있다. 바라 연주상은 악사가 무릎을 꿇고 양손에 바라를 들고 악기를 치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바라는 악사의 손보다 조금 더 크고 도톰하다.

양손에 바라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을 한 금동가릉빈가상과 쌍봉사 철감선사탑 서쪽 면에 등장하는 바라 주악상에서의 바라는 손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이며 감은사 삼층석탑 사리기의 바라의 형태와 크기가 유사하다. 봉암사 지증대사탑의 중대석 받침의 남동쪽 면의 가릉빈가는 날개와 꼬리를 활짝 펼치고 바라를 든 양손을 오른쪽으로 치켜 들고 있다. 지증대사탑의 바라는 손보다 조금 더 크다.

보물 감은사 터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내함의 바라

보물 감은사 터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내함의 바라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신수 606>

쌍봉사 철감선사탑 탑신부의 바라 주악상

쌍봉사 철감선사탑 탑신부의 바라 주악상 <출처: 쌍봉사@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남북국시대에 만들어진 바라들은 지름 20~30cm의 반구형으로 도상학자료에 나타난 바라와 생김새는 유사하나, 그 크기가 대체로 좀 더 크다.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출토된 청동 바라는 현재까지 소개된 남북국시대의 바라 유물 중 가장 크다. 청동 바라 한 쌍은 크기가 서로 다른데, 왼쪽의 것은 지름 30cm, 높이 9.6cm이고 오른쪽은 지름 27.6cm, 높이 7.5cm이다. 형태는 마치 조선시대 무관이 착용했던 모자인 전립(戰笠)과 같이 울림판의 중심부가 사발을 엎어 놓은 반구형이며, 울림판의 테두리는 약간 솟아있다.

남북국시대의 청동 바라

남북국시대의 청동 바라 <출처: 국립전주박물관@e뮤지엄. 소장품번호 전주 8817>

2. 바라의 발전

1) 고려의 바라

고려시대의 바라는 남북국시대의 것이 그대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주로 불교의식에 사용되었다. 서긍이 1123년에 고려 개경에 다녀온 경과와 견문을 그림과 곁들여 써낸 여행보고서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서긍은 고려의 범패에 대해 이야기하며 바라(요발)의 형태와 음색에 대해 설명하였다. 서긍은 고려의 불교음악에 사용된 “바라의 크기는 작고 소리는 구슬프다”(其鐃鈸 刑制小而聲愁)고 하였는데, 아마도 이는 당시 중국에서 사용하던 바라에 비해 그 크기는 작고 음색은 구슬프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까지 출토된 고려시대 바라의 지름은 각각 10cm, 16cm, 19cm, 29.5cm로 남북국시대의 것과 유사하나, 울림판의 생김새는 다양해졌다. 예를 들어 크기가 가장 큰 지름 29.5cm의 바라는 남북국시대의 바라와 마찬가지로 전립과 유사한 형태이나, 가장 작은 지름 10cm의 바라는 중심부가 비교적 평평하여 접시와 유사한 형태이다.

고려시대의 동제 바라

고려시대의 동제 바라 지름 19cm이다.
<출처: 국립경주박물관@e뮤지엄. 경주 6936>

고려시대의 금동 바라

고려시대의 금동 바라 지름 약 10cm로 가장 작은 바라이다.
<출처: 국립경주박물관@e뮤지엄. 소장품번호 국은 405>

2) 조선의 바라

조선시대의 바라는 이전 시대와는 달리 종류와 용도가 다양해졌다. 바라는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불교음악 외에도 궁중정재와 군악에 무구나 악기로 편성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조선 전기 바라의 모습은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에 그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악학궤범』에는 ‘향악정재 악기 도설’(鄕樂呈才樂器圖說) 항목에 향악정재 무구(舞具)로 쓰이는 동발(銅鈸)과 향발(響鈸)을 그림과 함께 제작법과 규격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조선 전기의 동발은 약 23cm, 향발은 약 6.3cm이며 전립과 유사한 생김새이므로 이전 시기의 바라를 계승하였으며, 불교음악 외에도 궁중의 잔치에서 무용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불교의식에서의 바라 모습은 감로탱화에서 찾을 수 있다. 감로탱화에는 부처님을 모시고 범패와 염불을 하는 모습, 그리고 기악곡에 맞추어 바라무 · 법고무 등을 추는 승려 모습,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등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보석사 감로왕도(1648)에는 바라, 경쇠 광쇠, 금강령, 법고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충남 금산군의 보석사 감로왕도의 바라는 울림판이 비교적 완만한 원뿔형태로 보인다. 크기는 대략 30~40cm 정도로 보이며 울림판 가운데에 흰 천을 매달아 손잡이처럼 사용하고 있다.

보석사 감로도(1649)의 바라 연주 모습

보석사 감로도(1649)의 바라 연주 모습 <출처: 국립중앙박물관@e뮤지엄. 소장품번호 신수 2743>

조선 후기에는 바라의 한 종류인 ‘자바라’가 군대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조선 후기 군대에서 자바라는 신호용이 아닌 행진과 연향의 연주에 사용되었다. 행진 음악인 대취타에 자바라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숙종 37년(1711)의 <조선통신사행렬도 등성행렬>(操船通信使行列圖 登城行列)이다. 이 그림은 대규모 통신사 일행을 그린 것으로 나발 2, 나각 2, 태평소 2, 자바라 1, 동고(銅鼓) 1, 북 2, 징 2로 편성된 고취악대를 볼 수 있다. 또한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에도 용고 2, 자바라 2, 뿔나발 2, 나발 2, 태평소 2로 편성된 고취악대가 나온다.

<조선통신사행렬도 등성행렬>과 <안릉신영도> 속의 바라는 그 형태가 유사하다. 따라서 18세기의 자바라는 지름 약 30cm이며, 중심부가 불뚝 솟은 전립 형태이다.

김홍도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1786, 부분) 중 취고수

김홍도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1786, 부분) 중 취고수 왼쪽부터 용고 2, 자바라 2, 뿔나발 2, 나발 2, 태평소 2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번호 덕수 6441>

조선 후기 궁중에서는 춤 반주에 바라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순조 28년(1828)의 『진찬의궤』(進饌儀軌)에는 자바라가 징 · 호적 · 나발 등과 함께 내취에 편성되어 <선유락>(船遊樂) 정재의 반주로 사용되었다.

3. 현대의 바라

오늘날 바라는 군대음악, 불교음악, 궁중정재, 무속음악, 농악 등 전통음악 및 창작음악에서 활용되고 있다. 자바라(또는 바라)는 태평소 · 나발 · 나각 · 북 · 장구 · 징과 함께 대취타에 편성되어 사용되며, 불교 의식 무용의 하나인 바라춤에도 사용된다. 향발이나 동발은 궁중정재인 향발무나 학연화대처용무합설에 사용된다. 또한 바라(또는 제금, 제파리)는 꽹과리 · 장구 · 북 · 징 · 방울 등의 타악기 및 피리 · 대금 · 해금 등의 선율악기와 함께 무속음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경기와 충북 일부 지역에서의 농악에 태평소 · 징 · 꽹과리 · 북 · 장구 · 소고 등과 함께 편성되기도 한다. 창작음악의 경우 악곡에 따라 국악 관현악이나 실내악 등에 편성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 김성혜.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의 음악사적 조명.” 『한국음악사학보』 39(2007): 31-63.
  • 김성혜. “신라 고취대 재현을 위한 악기 편성 연구.” 『한국음악사학보』 54(2015): 31-76.
  • 김영운. 『국악개론(개정판)』. 음악세계, 2020.
  • 송혜진. 『한국악기』. 열화당, 2001.
  • 신명숙. “한국의 바라와 향발의 내력.” 『한국체육사학회지』 13(2008): 121-134.
  • 한정미. “불교의례무의 연원과 감로탱화에 나타난 작법무 고찰.” 『동아시아불교문화』 27(2016: 41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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