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쿠스 역사

다마스쿠스 역사

다마스쿠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람이 거주한 도시 중 하나로, 기원전 200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다마스쿠스'라는 명칭은 기원전 15세기 이집트 투트모세 3세(Thutmos III, 재위 B.C 1479~B.C 1425)의 지리 목록에 처음으로 기재되었다. 이후 이집트 상형문자와 아카디아어, 고대 아람어, 성서 히브리어에서 '다마스쿠스'라는 표기가 발견되었다. 영어와 라틴어로 발음한 다마스쿠스는 고대 시리아어로 '물이 좋은 땅'을 의미하며 그리스어 등에서도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성경에도 꾸준하게 등장하는 지명으로 보통 '다마섹(Dammeśeq)'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 헤자즈 지방을 기준으로 시리아는 왼쪽의 땅, 북쪽의 땅을 뜻한다 분석하기도 하며, 이 경우 예멘이 대조적으로 사용되어 오른쪽, 남쪽의 땅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이슬람 이전 시대

다마스쿠스 외곽지역 유적을 탄소연대측정하면 기원전 7000년 후반에서 기원전 6300년 경 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라다강 유역 분지 중 일부 지역은 기원전 9000년 전으로 인류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마스쿠스 구도심 지역에 사람들이 정착한 것은 기원전 2000년 경으로 추정한다. 초기 이집트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350년 경 이 지역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기원전 1260년에는 다마스쿠스 지역에서 전쟁이 있었고, 기원전 1259년 람세스 2세(Ramesses II 재위 B.C 1279~B.C 1214)가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고 한다. 기원전 1200년 경 다마스쿠스 지역은 철기시대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11세기에는 아람족이 아람 왕국을 건설하였는데, 이 중 하나가 아람-다마스쿠스였다. 아람인들은 다마스쿠스의 바라다강을 이용하여 관개수로를 건설하고 농업을 발전시켰다. 아람 왕국 이후에는 신 앗시리아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면서 기원전 8세기에는 완전히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이집트 파라오의 통치와 신바빌로니아의 통치를 받던 다마스쿠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함락되었고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망 후 셀레우코스 제국(Seleucid Empire, B.C 312~B.C 63)과 프톨레마이오스제국(Ptolemaic Empire, B.C 305~B.C 30)의 각축장이 되었다. 기원전 64년에는 로마의 폼페이우스(Pompey)가 시리아 서부를 장악하면서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였고, 시리아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이후 660년까지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특히 다마스쿠스의 구시가지인 밥투마(Bab Tuma)지역에는 현재까지 비잔틴 제국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이슬람 시대

622년 이슬람이 발흥한 후 제2대 칼리프였던 우마르 1세(Umar)의 통치기간 동안 다마스쿠스 함락이 진행되었다. 634년 이슬람 세계의 장군이었던 칼리드 이븐 빈 알 왈리드(Khalid ibn al Walid)가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였다. 제3대 칼리프인 우스만 이븐 아판(Uthman, 재위 644~656)은 조카인 무와위야(Muwayiyyah, 재위 661~680)를 다마스쿠스의 총독으로 삼았다. 제4대 칼리프인 알리(Ali ibn Abu Talib, 재위 656~660)가 암살당하자 무와위야가 칼리프로 선출되었다. 무와위야는 전통적인 선출 방식의 칼리프직 계승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에게 칼리프 직을 세습하면서 우마이야 왕조(Umayyad Dynasty, 660~750)가 시작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는 무아위야 1세가 총독으로 다스리던 다마스쿠스로 지정되었다. 무슬림이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였을 때, 다마스쿠스는 메카, 메디나, 시리아사막 출신의 무슬림 공동체와 동방정교회를 따르는 기독교인이 혼재되어 있었다. 685년 압드 알 말릭(Abd al Malik, 재위 685~705)의 칼리프 계승과 함께 우마이야조는 전성기를 맞았다. 이슬람 주화 체계가 재편되었고, 이슬람 세계의 수입은 다마스쿠스를 모여들었다. 아랍어가 공식 행정언어이자 표준어로 정해짐에 따라 다마스쿠스 주변 지역에서 아람어 방언인 시리아어(Syriac)의 사용이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압드 알 말릭의 아들인 왈리드 1세(Al Walid I, 재위 705~715)는 다마스쿠스 구시가지에 있던 세례 요한의 성당을 개축하여 우마이야 모스크(Umayyad Mosque, 다마스쿠스의 대모스크)를 건설하였다. 750년 이라크 지역을 중심으로 압바시야 왕조(Abbasid Dynasty, 750~1258)가 세워지면서 우마이야조는 멸망하였다. 압바스조는 바그다드를 새로운 수도로 삼았고 다마스쿠스는 압바스조에 종속되었다.

878년에서 879년 이집트에서 성장한 툴룬왕조(Tulunid Dynasty)는 다마스쿠스를 점령하며 세력을 확장하였고, 툴룬왕조는 906년까지 다마스쿠스를 통치하였다. 이후 이집트에서 성장한 파티마 왕조(Fatimid Dynasty, 909~1171)와 시리아 북부의 함단왕조(Hamdanid Dynasty, 809년-1004년)의 영향을 받았다.

11세기 후반 셀주크 왕조(Seljuq Dyansty)는 다마스쿠스를 다시 수도로 삼았다. 특히 다마스쿠스에 법원을 설립하면서 시아파 이슬람에 맞서 수니파 이슬람법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후 1126년에 십자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무슬림들은 다마스쿠스를 수성하였다. 다마스쿠스는 셀주크 투르크 이후에는 살라흐 앗딘이 건설한 아이유브조(Ayyubid Dynasty, 1171~1260)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1193~1201년, 1218~1238년, 1250~1260년 사이에 아이유브조의 수도였다.

1258년 이슬람 세계를 침공한 몽골제국은 1260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였다. 같은 해 9월 3일 이집트에 왕조를 건설한 맘루크 왕조(Mamluk Dynasty in Egypt, 1250~1517)가 아인 잘루트 전투(Battle of Ain Jalut, 1260.9.3.)에서 몽골에 승리를 거두었고 5일 후 다마스쿠스를 함락하였다. 이후 다마스쿠스는 이집트 맘룩조의 지방 주도가 되었다. 1348년에서 1349년 발병한 페스트로 인하여 도시 인구의 절반이 사망하게 되었다. 1400년 티무르 왕조(Timurid Dynasty, 1370~1507)가 다마스쿠스를 함락하였다. 도시민들은 티무르조의 수도인 사마르칸트로 이송되거나 도시 안에서 학살당했다. 이후 티무르가 도시를 떠났고, 1516년까지 다마스쿠스는 맘룩조의 지방 도시로 자리하였다.

1516년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1299~1922)이 맘루크조에 대한 정복 전쟁을 시작하면서 9월 21일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였다. 10월 2일 우마이야 모스크에서 술탄 셀림 1세(Selim I, 재위 1512~1520)의 설교(Qutbah)를 시작으로 다마스쿠스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오스만 제국은 1832년에서 1840년까지 이집트의 이브라힘 파샤에게 다마스쿠스 통치권을 잠시 뺏긴 기간을 제외하고, 약 400년 가량 다마스쿠스를 지배하였다. 특히 다마스쿠스는 무슬림의 종교적 의무인 메카로 성지 순례를 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착점으로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근현대

1916년 영국과 프랑스는 비밀리에 서아시아 지역에 대한 분할권을 합의한 조약인 사이크스피코협정(Sykes-Picot Agreement)을 체결하였다. 1918년 파이살 이븐 후세인(Faisal ibn Hussein, 시리아의 왕 재위 1920.3~1920.7 / 이라크의 왕 재위 1921.8~1933.9)이 시리아의 왕으로 선포되기도 하였으나, 재위 기간은 4달에 그쳤다. 프랑스는 시리아 지역을 장악하고,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았다. 프랑스의 간접 통치는 1946년까지 지속되었고, 1946년 프랑스 군대가 시리아에서 완전히 철수하면서 시리아 공화국이 건국되고, 다마스쿠스는 시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2011년 시리아에 내전이 발발하고 2012년 7월, 다마스쿠스 근교 고타(Gouta) 지역을 반정부군이 장악하고 다마스쿠스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일시적으로 다마스쿠스의 80%을 반정부군이 장악하기도 하였으나 정부군이 골란고원 등지에 퍼져있었던 군을 소집하여 다마스쿠스 내부에 폭격을 가하며 반정부군을 공격하였다. 7월 23일 반정부군은 다마스쿠스에서 철수를 시작하였고, 30일에는 정부군이 다마스쿠스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2014년 이후 내전이 교착상태에 접어들면서 다마스쿠스에 대한 재건 및 복원 사업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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