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 왕조

파티마 왕조

요약 시아파 이슬람의 한 분파인 이스마일 파 성향의 독립왕조로서, 당시 아바스제국에서 독립한 군소 왕조 중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909-1171).
이슬람 제국의 성립과 발전

이슬람 제국의 성립과 발전

원어명 Fātima

이슬람교 중 시아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사촌인 알리의 후손만이 이슬람 공동체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인 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중에서도 알리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스마일을 시아파의 제 7대 이맘(시아파의 수장, 정통인 수니파의 칼리프와 같은 지위)으로 간주하는 분파가 이스마일파이다.

이스마일파의 지도자 중 한 명 이었던 사이드 빈 후세인(Said ibn Husayn: ? ~ 934)은 자신이 이맘 이스마일의 직계 후손임을 주장하며, 893년에 북아프리카로 자신의 추종자들을 보내어 현지 토착 세력인 베르베르 케타마 부족의 정치적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이들의 도움을 받아 909년에 북아프리카를 차지하고 있던 아글라브 왕조(800~909)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이슬람 왕조를 세웠으며, 왕조의 이름을 예언자의 딸이자 칼리프 알리의 부인이었던 파티마의 이름에서 따왔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급격히 성장한 파티마왕조는 921년 모로코의 이드리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북아프리카의 대부분을 장악하였다. 또한 정통 수니파인 아바스제국의 칼리프를 형식적으로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들이 이슬람 공동체의 합법적 지도자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파티마왕조는 아바스 제국의 영토를 지속적으로 공격하였으며, 특히 풍부한 재원을 보유한 이집트 지역을 얻고자 수차례 원정을 시도하였다. 파티마 왕조는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아바스 제국의 제 4대 칼리프 알 무이즈의 집권기에 이집트에 극심한 기근이 들어 군사력이 약화된 것을 기회로 이집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당시 아바스 제국에 충성하며 이집트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이크쉬드 왕조는 파티마 왕조의 가우하르 장군이 이끄는 정예군 10만을 당해내지 못하고 963년에 수도 푸스타트를 내놓게 되었다. 이후 파티마 왕조는 이집트에 머물지 않고 북진을 계속하여 시리아와 시칠리아까지 정복하기에 이르렀으며, 독자적인 칼리프 제도를 운영하며 중동은 서부의 파티마 왕조와 동부의 아바스 왕조로 양분되었다.

왕조는 이집트를 정복한 뒤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 알-카히라를 세웠으며, 이는 오늘날 카이로 시로 알려졌다.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하는 곳은 여전히 푸스타트 였으나, 알-카히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알-카히라의 초창기 인구는 약 1만 8천 명이었으나, 도시가 점차 북쪽으로 확장되며 급격히 팽창해 약 20-30만명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 이슬람 세계 도시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왕조의 또 다른 업적은 972년에 세워진 알-아즈하르 사원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이슬람 신앙과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왕조의 세력은 11세기 이후 계속된 십자군 전쟁에 의해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아스칼란, 아크레,하이파 등을 점령당하면서 점차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아바스 제국에서 파견한 누르 알 딘과 살라딘 등의 수니파 세력이 십자군 축출에 성공하며 예루살렘 탈환과 이슬람 지역의 통합을 달성하는 과정에 이르러서는 이미 내부 분열에 의해 지배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결국 파티마 왕조는 십자군 전쟁의 영웅인 누르 알 딘과 살라딘에 의해 1168년 종식되었으며, 1171년 마지막 칼리프가 사망하며 왕조가 끝나게 되었다.

참조항목

이스마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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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민족이 세운 이슬람 왕조

다양한 민족이 세운 이슬람 왕조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