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정교회

동방정교회

[ Eastern Orthodoxy , 東方正敎會 ]

요약 비잔틴 제국 그리스도 교회의 맥을 잇는 교회로 로마가톨릭, 프로테스탄트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3대 분파로 꼽힌다. 주로 러시아, 발칸반도, 서아시아 지역 등에 분포한다.
그리스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서방(라틴) 교회의 상대적 의미로 동방교회라 호칭되지만 더 깊은 뜻은 죽음에서 부활한 빛인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빛나는 태양이 동방(東方)에서 떠오른다는 데 있다. 파스카(Πασχα)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대축일을 서방에서는 아직도 ‘East Day’(동방의 날)라고 한다. 동방정교회라고 할 때 정(正:Orthodox)이란 사도전통 ·교부전통의 올바른 가르침, 올바른 믿음, 올바른 예배의 의미를 지닌다. 동방정교회는 보편적 신앙의 교회이므로 그냥 정교회(Orthodox Church)라고 부르는 것이 정상이다.

정교회에서는 세계공의회(世界公議會:Ecumenical Council)를 최고의 권위로 인정한다. 주교들은 신앙의 문제를 결정할 때 전체교회의 승인과 동의를 받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그래야만 공의회가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는 것이 확실히 인정되는 것이다.

일곱공의회

비잔틴 제국 일곱 공의회, 즉 325년의 제1차 니케아 공의회, 381년의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431년의 제3차 에페소스 공의회, 451년의 제4차 칼케돈(할키돈) 공의회, 553년의 제5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680년의 제6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787년의 제7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사항을 준수한다.

일곱 공의회에서 결정된 주요내용은 먼저 교회의 신조(Creed: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가 확정되어 교회의 신앙으로 지금까지 고백되고 있다. 다음으로 전체 그리스도교회의 가시적 조직이 선언되었는데, 대표적인 행정구역으로 로마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인데 이를 펜타르키(Pentarchy:5집정 관할구역)라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성육화(成肉化:Incarnation)의 교리와 연관적으로 성모 마리아의 호칭은 테오토코스(θεοτοκοζ:하느님의 어머니)로 결정되었으며,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를 확고히 하였다. 끝으로 성화상(聖畵像:이콘) 공경은 성화상이 상징하는 내용을 공경하는 것임을 확실히 하였다.

이교

그리스도교계의 대표적인 문화권은 셈문화권 ·그리스문화권 ·라틴문화권 등 3문화권으로 대별할 수 있다. 초대교회 때 신학자들과 저술가 그리고 교회학교로 번성했던 셈문화권의 교회(Oriental Church) 곧 네스토리우스교회와 아르메니아교회, 시리아교회(Jacobite Church라고도 함), 이집트교회(Coptic Church), 에티오피아교회, 인디아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소위 단성론파(單性論派:Monophicism)라는 이름으로 갈라져 나갔다.

두번째로는 로마교황을 중심으로 한 라틴문화권교회(Western, Latin, Roman Catholic Church)와 그리스문화권교회(Eastern, Greek Orthodox Church) 간에는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요소들과 교황권 및 필리오퀘(Filioque)라는 문제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 후 1274년에는 리옹에서, 1438년에는 피렌체에서 튀르키예의 위협에 직면한 그리스교회가 라틴교회와 화해의 시도가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비잔틴 제국의 멸망과 지역 정교회의 독립

1453년 5월 29일,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튀르키예)에 함락되어 그 이름도 이스탄불로 바뀌었고 역사적인 성 소피아대성당은 튀르키예의 박물관으로 바뀐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스만 치하에서 동방정교회는 제2등급 종교로 전락되는 한편, 교회조직은 튀르키예 정권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리하여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되려면 오스만 정부의 재가를 얻어야 했고, 상당한 대가(세금과 같은)를 지불해야 했다. 총대주교의 자리는 주로 반라틴적인 인물에게 주어졌다. 오스만 정권은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등의 총대주교좌를 형식적으로는 정교회의 독립관구로 인정하면서 실제로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좌에 예속시켰고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도 콘스탄티노플에 종속되게 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획득한 국가의 정교회들은 콘스탄티노플의 간섭에서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리스는 1833년, 루마니아는 1864년, 불가리아는 1871년, 세르비아는 1879년에 각각 독립을 선언하면서 자치적 교회로 행보함으로서 콘스탄티노플의 관할구역은 아주 작아지고 말았으며, 아직도 튀르키예 정부의 압력하에 있다.

러시아의 정교회

기원 후, 1세기경 사도 안드레아가 처음으로 예루살렘에서 북동쪽 대륙으로 선교의 발걸음을 옮겨서 흑해(黑海) 주변 시노페와 코르순 지역에서 선교했다고 한다(교회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 사도 안드레아가 방문 선교했던 지역은 후일 키이우와 노보고라드라는 러시아에서 유명한 도시로 발전하였다. 988년 키이우 공국의 블라디미르대공(980~1015)이 세례를 받음으로서 정교회는 러시아의 국교가 되었다. 1019년 야로슬라프 공(1015~1054)이 키이우 공국의 권력자가 되어 러시아를 그리스도교화하는 데 공헌하였다.

1037년에는 테오 펨프스 대주교가 키이우 공국의 수좌주교로 착좌하였다. 1237년 11월 바투가 4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침입하여 1240년에 키이우를 점령한 이후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알렉산드르 넵스키대공의 막내아들 다니엘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전쟁으로 찌든 러시아 백성들은 모스크바로 몰려들었고 이반 1세(다니엘의 둘째아들) 때에는 모스크바가 전체 러시아의 수도가 되었다. 1380년 9월 8일, 약세의 러시아 군대는 40만 몽골대군을 격전 끝에 격파함으로써 러시아는 정교회 국가로 남게 되었다. 1472년 이반 3세(1462~1505)는 마지막 비잔틴 황제의 조카 소피아 팔라이올로고스와 결혼하고 쌍두(雙頭) 독수리 문장(紋章)을 취하고 자칭 짜르, 곧 황제가 되어 비잔틴 제국의 후계자로서 러시아를 제3의 로마라 불렀다.

1589년 모스크바 총대주교좌가 축성되어 욥(1589~1605)이 초대 총대주교로 취임하였다. 1917년 이래로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은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파괴했다. 1918년 2월 1일 총대주교 티콘은 무신론 정권을 파문하고 무신론 정권에 동조하는 성직자들의 집단, 곧 ‘살아 있는 교회’를 단죄하였다. 1920년 11월 20일 티콘 총대주교는 자기가 투옥될 것을 예견하고 주교들의 자치적인 조직을 증언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1921년 세르비아 총대주교의 입회하에 칼루프치에서 ‘러시아 밖의 러시아정교회 시노드’를 조직하였다. 1922년 서유럽의 엑사르크 에블로기 수좌대주교와 러시아 밖의 러시아정교회 주교들은 러시아 밖의 러시아 정교회 시노드를 재조직하였다. 1921년 이후 러시아 밖의 러시아정교회 시노드는 유고슬라비아의 칼루프치에서 독일 뮌헨으로 그 본부를 옮겼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으로 옮겨서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1941년 나치 독일의 침략을 받던 스탈린은 교회의 협력을 얻기 위하여 러시아 안의 정교회에 다소 자유를 주었다. 당시 소련 헌법에는 반종교활동의 자유가 있다는 조항을 두어서 교회의 사회활동 금지, 사제교육 금지, 종교교육 금지, 액션단체 조직 활동 금지, 교회내 도서실 폐쇄, 성경 및 교회서적 출판금지, 교회의 토지 ·건물 ·현금은 언제든지 몰수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1990년 이후,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자 교회의 개방은 급격히 증가되어 90년 모스크바 관구에는 40개의 성당이 문을 열었다. 1993년에는 300여개 넘는 성당들이 문을 열고 열심히 선교사업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의 동방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1900년에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송된 크리산토스 신부가 입국하여 본격적인 선교사업을 펼쳤다. 그러나 청일전쟁, 러일전쟁, 무신론 공산주의 혁명, 제1, 2차 세계대전, 6·25전쟁을 겪는 동안 한국에서의 러시아정교회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선교부가 폐쇄됨에 따라 러시아 정교회와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1956년 한국의 정교회 공동체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관할이 되었다. 어려운 시기에도 1950년 북한 공산당에 의해 강제 납북된 알렉세이 김의한 신부의 활동이 있었다.

그리스정교회는 1954년 주한 그리스군 종군사제로서 활동하던 안드레아스 할키오풀로스 신부가 보리스 문이춘을 사제로 추천하여 일본정교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게 하였다. 1956년 보리스 문이춘 신부는 한국에 남아 있던 정교회 공동체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 관할 미국 그리스정교회 대관구에 소속되었다가 1970년 이후 뉴질랜드 대관구로 소속을 옮겼다.

1975년 말 그리스정교회 아르키 만드링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신부가 내한하여 그리스정교회 선교활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93년 초에 주교로 서품되었다. 1995년 4월 8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바로톨로메오스 1세(이스탄불 주재)가 5박 6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2004년 6월 20일에 한국 교구는 대교구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교는 소티리오스 주교이다.

가르침과 전통

정교회의 가르침은 성경과 성전(聖傳:Sacret Tradition)에 기초한다. 성경은 70인역(Septuaginta)으로서 구약 49권(로마가톨릭교회는 46권, 개신교는 39권)과 신약 27권이다. 구약에는 제2경전(외경)이 붙어있다. 교회력은 대체적으로 율리우스력을 사용한다. 교회력의 중심이 되는 부활절은 춘분이 지나고 음력 보름이 지나서 다시 한 주간이 지난 주일이다. 성탄절은 1월 7일이다. 성사는 대표적으로 7가지 성사가 있다. 그러나 수(數)에 구애되지는 않는다.

집행상 라틴교회와 다른 것은 견진성사에서 주교가 축성한 성유(聖油)로 사제가 집전한다. 성체·성혈 성사는 아기에게도 해준다. 신품성사에서 독신 남성, 기혼 남성 모두가 서품될 수 있지만 서품 후에는 결혼 또는 재혼을 할 수 없다. 주교는 독신 성직자와 홀로 된 성직자 중에서 선임된다. 정교회 예배는 다양하다. 연중 매주일 아침(때로는 토요일 밤)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 곧 조과(早課)가 집전된다. 물론 성령강림절은 제외된다. 그리고 만과, 시과예배가 있고 절기와 교회력에 따른 다양한 예배가 있다. 정교회 예배 중 대표적인 것은 리투르기아라고 하는 ‘거룩한 성찬예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