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영대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불영대

[ 佛影臺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사찰 · 사당>절
유물유적시대 조선
행정구역 평안북도>향산군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43호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에 있는 절. 묘향산 불영봉에 위치해 있다. 묘향산 보현사에 딸린 암자로서 『불영암중건기』에 의하면 1570년에 처음 짓고 1669년에 소각되어 1700년(불영대개건기)에 고쳐지었으며 그 후 여러 차례 대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 불영대에 있는 1700년에 기명이 있는 막새기와도 이때 만든 것이다. 불영대는 묘향산 보현사에서 북쪽 용주봉을 향하여 약 4km 올라가고 상원암에서 동남쪽으로 약 3km 내려온 불영봉 중턱 아늑한 곳에 남쪽을 향하여 있다. 이곳은 동, 서, 남 세 면이 확 틔여 한눈에 안겨오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름난 명승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불영대 동켠 산마루 위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달을 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여서 예로부터 ‘불영대의 달돋이’를 묘향산팔경의 하나로 일러왔다. 불영대는 묘향산의 자연경치에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그 건축술 또한 우수하다. 암자는 정면 5칸(10.77m), 측면 3칸(6.15m)으로 되었다. 그런데 정면은 기둥 하나를 세우지 않아서 마치 4칸처럼 보인다. 보기 좋게 다듬은 흘림기둥에 액방을 딱 맞게 이어대고 그 위에 올린 3익공두공은 가볍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네 모서리 두공 위에 나무로 새긴 황룡과 청룡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여 당시의 우수한 조각솜씨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서는 익공식건물이면서도 기둥 사이에 화반과 함께 기둥사이포를 섞어 썼으며 뒷면에 가서는 액방 위에 화반도, 기둥사이포도 놓지 않았다. 긴 덧서까래와 덧추녀로 처마를 들어올린 지붕, 기둥을 세우지 않고 액방을 건너놓은 툇마루는 퍽 시원하고 경쾌해 보인다. 불영대는 한때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곳인 것으로 하여 이름이 높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전라도 사람인 손홍록과 안의 등은 전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가치있는 귀중한 민족고전들을 정주시의 내장산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왜군이 전라도로 침입할 위험성이 조성되자 그들은 이 책들을 뱃길로 충청도의 아산을 거쳐 황해도의 해주로 옮겨왔으며 1597년 왜적이 다시 침입해오자 손홍록은 무려 50바리나 되는 이 역사책들을 강화도로 옮겼다. 그 후 강화도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그 책들을 배에 실어 안주를 거쳐 먼 후방인 묘향산의 불영대에 날라다 보관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 등 민족고전들은 전쟁피해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묘향산에 소개시켰던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네 벌의 실록 가운데서 남은 유일한 책으로서 그 후 실록을 다시 복각하는 데서 그 원본으로 이용되게 되었다. 불영대는 바로 전쟁의 어려운 조건에서 가치있는 민족고전들을 구출해내어 후세에 전하게 한 이러한 슬기로운 애국심을 담고 있는 유적이며 당시 우리 백성들의 높은 건축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민족재부이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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