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락

선유락

[ 船遊樂 ]

요약 순조(1800~1834) 때 창제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한 종목.

지방교방(地方敎坊)에서 유래된 궁중정재(宮中呈才)의 한 종목이 선유락이다. 서도 지방의 배따라기에서 유래된 선유락 관련의 최초 기록은 박지원(朴趾源)의 『연암집』(燕巖集) 권12 소재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이다.

이 「막북행정록」에 의하면, 18세기에 선유락이 지방관아(地方官衙)의 교방에서 공연됐다. 궁중정재의 하나로 유입된 선유락이 화성(華城) 봉수당(奉壽堂)의 내진찬(內進饌)에서 공연된 기록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1795)에 전하고, 선유락의 그림은 「화성능행도」(華城陵行圖)에 전한다.

궁중잔치 때 선유락을 공연한 정재여령(呈才女伶)은 평안도의 평양·안주·성천에서 올라온 선상기(選上妓)였다. 항장무(項莊舞)의 경우처럼 선유락의 반주음악은 내취수(內吹手)가 연주한 대취타였다. 이 정재를 포함한 새 향악정재 24종목은 대부분 무자년(1828) 『진작의궤』(進爵儀軌)와 기축년(1829) 『진찬의궤』(進饌儀軌) 및 무신년(1848) 『진찬의궤』에 도설됐고, 새 향악정재의 춤사위는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1893)에 전한다.

순조 기축년(1829) 『진찬의궤』 소재 선유락

순조 기축년(1829) 『진찬의궤』 소재 선유락

채선(彩船)을 전중(殿中)에 놓고 노는 뱃놀이의 일종인 선유락은 호령집사기(號令執事妓) 2명·내무(內舞) 10명·외무(外舞) 32명, 총 44명의 정재여령(呈才女伶)들이 배를 중심으로 노는 화려한 춤이다. 선유락 관련의 최초 문헌은 박지원의 『연암집』 권21 소재 「막북행정록」이고, 선유락의 도설은 1829년(순조 29) 『진찬의궤』에 처음으로 나온다. 선유락의 반주음악을 맡았던 내취수(內吹手)의 정수(鉦手)·고수(鼓手)·호적수(號笛手)·자바라수(啫哱囉手)·나각수(螺角手)의 이름도 전한다.

국립국악원에서 공연한 선유락(『국악대사전』)

국립국악원에서 공연한 선유락(『국악대사전』)

고종(1863~1907) 때 선유락의 반주를 맡았던 내취수 일람표

고종(1863~1907) 때 선유락의 반주를 맡았던 내취수 일람표
내취수(內吹手) 1868년(고종 5) 1873년(고종 10) 1877년(고종 14) 1887년(고종 24) 1892년(고종 29)

무현

이도현(李道鉉)

양한수(梁漢秀)

강도길(姜道吉)

김중택(金仲宅)

지암회(池巖回)

나수(鑼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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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인(崔學仁)

호적수(號笛手)

이명근(李命根)

이장손(李長孫)

이명근(李命根)

김재석(金在石)

김재석(金在石)

이장손(李長孫)

강점돌(姜點乭)

이장손(李長孫)

임만석(林萬石)

임만석(林萬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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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봉길(洪奉吉)

홍봉석(洪鳳石)

이흥길(李興吉)

신삼돌(辛三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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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흥(元萬興)

강점돌(姜點乭)

이천만(李千萬)

김삼석(金三石)

고수(鼓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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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金一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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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천(丁奉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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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흥(朴壽興)

나각수(螺角手)

이원길(李元吉)

최치봉(崔致鳳)

이창진(李昌鎭)

이창진(李昌鎭)

김석봉(金錫奉)

강점돌(姜點乭)

이창진(李昌辰)

박완길(朴完吉)

조천길(趙千吉)

조천길(趙千吉)

자바라수(啫哱囉手)

김일성(金日成)

차순길(車順吉)

박재룡(朴在龍)

정순종(鄭順宗)

임수만(林壽萬)

양한수(梁漢秀)

최도성(崔道成)

차순길(車順吉)

유의순(柳義淳)

박성록(朴聖祿)

합계

7명

9명

10명

9명

12명

1829년 자경전(慈慶殿)에서 열린 진찬(進饌)의 선유락 공연 때 내취수 김억복(金億福) 외 16명이, 1848년(헌종 14) 통명전(通明殿)의 진찬 때 정계삼(鄭啓三) 외 7명이, 그리고 1901년(광무 5) 함녕전(咸寧殿)의 진연이원식(李元植) 외 12명이 출연했음이 의궤(儀軌)에 전한다. 이 정재의 특징은 반주음악을 장악원(掌樂院)의 악공(樂工)이 아니라 선전관청(宣傳官廳)의 내취수들이 맡았다는 점이다. 내취수의 악기편성은 현행 대취타(大吹打)의 편성과 같다.

악사가 채선(彩船)을 전중(殿中)에 놓고 나오면, 동기(童妓)가 채선 가운데 좌우로 등을 보이며 앉는다. 안쪽의 무기(舞妓) 10명이 안에서 줄을 끌고, 바깥쪽의 무기 32명은 줄을 잡고 배를 끌며, 왼쪽으로 빙빙 돌며 서로 연(連)하여 선다. 집사기(執事妓)가 전중(殿中)을 향하여 두 손으로 소매를 들어 '초취(初吹)하오' 하고 아뢰고 나와 정로(正路) 남쪽을 향하여 '나수(螺手)네 들어가 초취하라' 하고 호령(號令)한다. 집사기가 허리를 구부리며 들어가 '이취(二吹)하오' 하고 아뢰고 호령을 초취처럼 하고, 집사기가 삼취(三吹)를 아뢰는 것도 초취와 경우와 같이 한다. 집사기가 들어가 '명금이하(鳴金二下)하오' 하고 아뢰고 나와 '무현네 명금이하하라'고 호령한다. 음악이 "취타"(吹打)를 연주하면, 집사기가 들어가 꿇어앉아 '행선(行船)하오' 하고 아뢰고 일어나 서서 남쪽으로 향하여 '순령수(巡令手)네' 하면 '행선해라' 하고 호령한다. 그러면 여러 기녀들이 배를 끌며 회무(回舞)하고, 다음과 같은 "어부사"(漁父詞)를 부른다.

"자언거수승거산(自言居水勝居山)을/imagefontimagefont어라 imagefontimagefont어라/조조재락만조래(早潮纔落晩潮來)라/지국총(至菊叢) 지국총(至菊叢)/어사와(於思臥)imagefont니/의선어부일견고(倚船漁父一肩高)라/청고엽상양풍기(靑菰葉上凉風起)imagefont고/홍료화변백로한(紅蓼花邊白鷺閑)을/돗 다러라 돗 다러라/동정호리가귀풍(洞庭湖裡駕歸風)을/지국총(至菊叢) 지국총(至菊叢)/어사와(於思臥)imagefont니/범급전산홀후산(帆急前山忽後山)을."

끝나면, 집사기가 들어가 꿇어앉아 '명금삼하(鳴金三下)하오' 하고 아뢰고 나와서 '무현네 명금삼하하라' 한다. 음악이 그치면 물러난다고 장사훈(張師勛)의 『韓國傳統舞踊研究』에 나온다.

1901년(광무 5) 고종황제(高宗皇帝)의 탄신50주년기념 만수성절(萬壽聖莭)의 진연(進宴) 때 공연된 정재(呈才)의 한 종목이 선유락이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3.1234~36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347~48, 359~61, 371, 404, 439, 484, 5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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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행을묘정리의궤 / 선유락

원행을묘정리의궤 / 선유락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