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장무

항장무

[ 項莊舞 ]

요약 조선말기 지방 교방(敎坊)에서 유래된 정재(呈才)의 한 종목.

본래 잡극(雜劇)의 한 종목인 항장무는 1873년(고종 10) 평안남도 선천관아(宣川官衙)의 교방(敎坊)에서 공연된 무극(舞劇)에서 유래됐다.

진(秦)나라 말기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은 관중(貫中)에 먼저 들어가려 다투다가 유방이 먼저 들자, 항우가 노(怒)하여 군사를 홍문(鴻門)에 머무르게 하고, 다음날 아침 유방을 치려고 했다. 항우의 계부인 항백(項伯)은 유방의 부하인 장량(張良)과 사이가 좋았으므로 이 계략(計略)을 그에게 말해주자, 유방의 부하 번쾌(樊噲)를 얻었다.

장사훈(張師勛)의 『韓國傳統舞踊研究』에 의하면, 항장무는 이 홍문연(鴻門宴)의 이야기를 무극화(舞劇化)한 것이다. 선유락(船遊樂)처럼 항장무의 공연 때에도 내취수(內吹手)가 연주하는 대취타(大吹打)의 반주가 따랐다.

1900년대 초에 공연한 항장무의 출연자들

1900년대 초에 공연한 항장무의 출연자들

정현석의 『교방가요』 소재 항장무

정현석의 『교방가요』 소재 항장무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1893)에 의하면, 항장무의 등장인물은 범증(范增)·항우·우미인(虞美人)·진평(陳平)·항백·장량·패공(沛公)·중군(中軍)·번쾌·항장(項莊)·외집사(外執事)·내집사(內執事), 이상 12명이다.

정현석(鄭顯奭)의 『교방가요』(敎坊歌謠 1872)에 의하면, 항장무의 반주음악은 세취수(細吹手)와 취고수(鼓手)가 담당했다. 19세기 후반 진주교방(晉州敎坊)에서 공연된 교방춤의 한 종목인 항장무는 1867년(고종 4)부터 1870년(동왕 7) 사이 정현석이 진주목사(晉州牧使)로 지냈을 때 진주교방에서 연행됐다고 그의 『교방가요』에 전한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6.2400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348, 356~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