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경명왕릉

전 경명왕릉

분류 문학 > 국가 > 신라
전 경명왕릉 본문 이미지 1

기본정보

문화재명 : 배리삼릉(拜里三陵)
지정번호 : 사적 제219호
주소 : 경북 경주시 배동 73-1

일반정보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능으로 전해오는 왕릉으로 경북 경주시 배동 73-1번지에 있다. 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되며, 봉분 높이는 4.49m, 직경은 15.92m이다.『삼국사기』에서는 황복사(黃福寺) 북쪽에 장사지낸 것으로 되어 있으나『삼국유사』에서는 황복사에서 화장한 후 성등잉산(省等仍山) 서쪽에 산골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전문정보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능으로 전해오는 왕릉은 왕경의 남쪽에 있는 남산 서쪽 약 500m 지점의 산자락에는 박씨 왕의 능이라 전하는 2기의 왕릉과 함께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남쪽이 전 경명왕릉(傳景明王陵), 가운데는 전 신덕왕릉(傳神德王陵), 가장 북쪽에 있는 것이 전 아달라왕릉(傳阿達羅王陵)이며 통틀어 배리삼릉(拜里三陵)이라 한다.

전 경명왕릉은 봉분 높이가 4.49m이며 직경은 15.92m이다. 묘제는 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되며 봉분자락에는 괴석을 쌓은 호석과 괴석의 받침석이 2~3개 확인된다. 왕릉 남쪽에는 최근에 설치한 조선 왕릉의 혼유석 형태를 한 상석 3기가 나란히 마련되어 있다.

경명왕은『삼국사기』권12 신라본기12 경명왕 8년조에서는 황복사(黃福寺) 북쪽에 장사지낸 것으로 되어 있으나『삼국유사』왕력에서는 황복사에서 화장한 후 성등잉산(省等仍山) 서쪽에 산골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 영조 6년(1730)에 박씨 일족은 황복사와 관련이 없는 남산 서쪽 자락에 있는 고분을 경명왕릉으로 지정하였다.

현재 배리삼릉이 전 아달라왕릉, 전 신덕왕릉, 전 경명왕릉임을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즉 아달라왕과 경명왕은 700여년의 시간차가 있는데, 같은 혈족이면서도 이렇게 시간차가 나는 왕들이 한 묘역에 묻힌 예가 없었다. 따라서 경명왕릉은 이 묘역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강인구, 2000)

현재 황복사지의 위치를 토대로 경명왕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황복사는 왕경 중심에 있는 낭산(狼山) 동북단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현재 황복사지 북쪽에는 아무런 고분이 없다. 또한 전 경명왕릉이 있는 배리삼릉과 낭산의 황복사지는 서로 동북-서남 방향으로 약 4km 정도 되는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경명왕의 유해는『삼국사기』신라본기의 기록처럼 왕릉을 조영한 것이 아니라『삼국유사』왕력의 기록처럼 화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경명왕릉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근직, 2006)

참고문헌

강인구, 2000,『古墳硏究』, 학연문화사.
이근직, 2006,『新羅 王陵의 起源과 變遷』,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五十四 景明王 [朴氏 名昇英 父神德 母資成 妃長沙宅 大尊角干 追封聖僖大王之子 大尊卽水宗伊干之子 丁丑立 理七年 火葬皇福寺 散骨于省等仍山西]
제54경명왕 [박씨이며 이름은 승영이다. 아버지는 신덕왕이고, 어머니는 자성왕후이다. 왕 비는 장사택으로 대존각간, 즉 추봉된 성희대왕의 자식이다. 대존은 곧 수종 이간의 아들 이다. 정축년에 즉위하여 7년간 다스렸다. 황복사에서 화장하여 뼈를 성등잉산 서쪽에 뿌 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