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강왕릉

전정강왕릉

분류 문학 > 국가 >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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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지정명 : 신라 정강왕릉
지정번호 : 사적 제186호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3번지

일반정보

신라 제50대 정강왕의 능이라고 전해지는 무덤으로 경주시 남산동 산 53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전문정보

신라 제50대 정강왕의 능으로 전해오는 왕릉은 왕경의 동남쪽인 경주시 남산동 산 53번지로 전 헌강왕릉 남쪽에 인접하여 있다. 봉분 직경은 15.7m, 봉분 높이는 4m이며 묘제는 전 헌강왕릉과 같이 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된다. 왕릉의 외형은 원형봉토분이며 봉분을 두른 호석은 90-120x30cm 내외의 가공한 장대석을 이용하여 전 헌강왕릉보다 2단이 적은 2단으로 쌓았다. 하단의 지대석은 보다 넓게 하였고 그 위에 약 10cm 정도 안으로 들여서 2단의 석축을 쌓았는데 남쪽에서만 확인되며 다른 방향에서는 지대석이 노출되어 있지 않다. 최상면에 올려놓은 갑석은 전 헌강왕릉과 같이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동시대이면서 왕릉의 외형인 호석의 단이 헌강왕릉 보다 축소된 것은 서서히 기울어 가는 신라 하대(新羅 下代)의 국운(國運)과 관련이 깊다. 또한 후대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석(床石)은 봉분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나 조잡한 편이다.

한편, 정강왕의 장지(葬地)에 대해서 『삼국사기』권11 신라본기11 정강왕 2년(887)조에서는 헌강왕과 같이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葬菩提寺東南)”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 영조 6년(1730)에 이르러 김씨일족은 동남산에서 약 300m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두 고분 가운데 월성에서 거리가 근접한 고분을 윗대의 헌강왕릉으로, 그 남쪽의 고분은 정강왕릉으로 비정하였다.

제49대 헌강왕과 제50대 정강왕의 능은 모두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으므로 인접한 공간에 두 기의 왕릉이 존재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승되고 있는 왕릉 가운데 절터를 기준으로 그 동남쪽에 동일 공간 또는 이웃하여 남아있는 두 기의 왕릉을 찾을 수는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첫째, 왕릉이 무너져 발견되지 않았거나 사라진 경우와 둘째, 사료의 기록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를 추측해 볼 수 있다.

한편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는 전 헌강왕릉과 전 정강왕릉은 능의 외형(外形)과 호석구조(護石構造)로 보아 공작지(孔雀址)에 장사지냈다는 문성왕릉과 헌안왕릉으로 추정할 수 있다.(이근직, 2006)

참고문헌

이근직, 2006, 『新羅 王陵의 起源과 變遷』, 영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五十 定康王 [金氏 名晃 閔哀王之母弟 丙午立而崩]
제50 정강왕 [김씨이며 이름은 황이다. 민애왕의 동모제이다. 병오(886)에 즉위하였으나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