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달라왕릉

전 아달라왕릉

분류 문학 > 국가 > 신라

기본정보

지정명 : 배리 삼릉(拜里三陵)
지정번호 : 사적 제219호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73-1번지

일반정보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의 능으로 전해지는 무덤이다

전 아달라왕릉 본문 이미지 1
전 아달라왕릉 본문 이미지 2

전문정보

신라 제8대 아달라니질금의 능으로 전해오는 무덤은 포석정으로부터 약 500m 남쪽지점 산자락에 위치한 삼릉(三陵) 중 하나로 세 개의 무덤 중 가장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무덤은 원형봉토분으로 봉분 높이가 5.41m, 직경은 18.38m이다. 전 아달라왕릉 아래 위치한 두 무덤의 피장자는 각각 제53대 신덕왕릉, 제54대 경명왕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1953년과 1963년 두 차례에 걸쳐 전행된 전 신덕왕릉(傳 神德王陵)의 발굴조사를 통해서 삼릉의 세 무덤에 묻힌 피장자가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일 수 없다는 견해가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전 신덕왕릉은 발굴조사를 통해 연도(羨道)를 갖춘 석실분으로 밑에서 1.4m 높이까지 2단으로 방형구획을 만들었으며 내부에는 회칠을 한 뒤, 황(黃)·백(白)·주(朱)·청(靑)의 채색을 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박일훈, 1963) 이처럼 무덤의 내부구조가 천정이 높은 횡혈식 석실분인 점과 더불어 고분이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분구의 규모와 호석(護石)의 축석상태가 통일 전후시기의 형식이기 때문에 신덕왕릉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강인구, 2000)

전 신덕왕릉의 피장자가 신덕왕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달라이사금의 무덤 역시 그 주인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존하는 사료에서 아달라이사금의 장지(葬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삼릉의 가장 위쪽 무덤을 아달라왕릉으로 비정한 까닭은 『삼국사기』 권12 신라본기12 신덕왕 즉위년조에서 “성은 박씨이고 이름은 경휘로 아달라왕의 원손이다(姓朴氏 諱景暉 阿達羅王遠孫)”라고 하였기 때문이다.(이근직, 2006)

신라의 박씨 왕들에 대한 왕릉 비정은 17세기말부터 경주 박씨의 족보 간행사업 일환으로 이루어 졌으며 1730년 경주 선비 유의건이 쓴 「나릉진안설(羅陵眞贗說)」을 통해 정리되었다.(이근직, 1995; 강인구, 2000) 삼릉의 무덤들은 1971년에 사적 제219호 “배리 삼릉(拜里三陵)”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박일훈, 1963, 「慶州三陵石室古墳 -傳新羅神德王陵」『美術資料』8.
이근직, 1995, 「花溪集 羅陵眞贗說譯註」『경주사학』14, 경주사학회.
강인구, 2000, 『古墳硏究」, 학연문화사.
이근직, 2006, 『신라 왕릉의 기원과 변천』, 영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관련원문 및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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