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문성왕릉

전 문성왕릉

분류 문학 > 국가 > 신라

기본정보

지정명 : 진지․문성왕릉
지정번호 : 사적 제178호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산92-2

일반정보

신라 제46대 문성왕의 능이라고 전해지는 무덤으로 선도산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전 문성왕릉 본문 이미지 1
전 문성왕릉 본문 이미지 2

전문정보

신라 제46대 문성왕의 능으로 전해오는 왕릉은 왕경의 서편인 경주시 서악동 산92-2번지로 선도산의 동쪽 자락에 전 헌안왕릉과 같이 있다. 산자락의 일부를 깎아내고 평지를 마련한 다음 조영하였다. 왕릉의 봉분 직경은 17m, 봉분 높이 2.5m 정도 되는 동서장축의 타원형 봉토분이다. 묘제는 횡혈식 석실분으로 추정되며 봉분주변에는 석물 뿐만 아니라 호석도 확인되지 않는다.

『삼국사기』권11 신라본기11 문성왕 19년 기사에는 “왕이 죽자 시호를 문성이라 하고 공작지에 장사지냈다.(王薨 諡曰文聖 葬于孔雀趾)”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삼국사기』권11 신라본기11 헌안왕 5년 기사에는 “왕이 죽자 시호를 헌안이라 하고 공작지에 장사지냈다.(薨 諡曰憲安 葬于孔雀趾)”라고 되어 있어 두 왕의 능이 공작지에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공작지의 위치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영조 6년(1730년)에 능을 이곳에 비정한 이유는 조선시대 이래 서악동의 선도산 일원을 산작지(山雀址)로 불렀는데 이를 문성왕과 헌안왕의 장지인 공작지와 동일시 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 두 왕릉은 모두 조선시대에 왕릉으로 지정된 것으로 왕릉에는 호석으로 추정되는 괴석이 간간히 박혀있는 단순한 원형봉토분으로 7세기의 고분일 가능성이 높다. (이근직, 2006)

한편 9세기 중반 이후의 호석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두 기의 왕릉이 동일한 장소에 인접하여 있는 경우는 남산에 조영된 전 헌강왕릉과 전 정강왕릉이 있다. 이를 문성왕릉과 헌안왕릉으로 추측해 본다면 두 왕릉의 장지를 공작지로 기록한 이유는 당시 남산이 갖고 있던 불국토적 관념, 즉 불교적 상징성의 또 다른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근직, 2006)

참고문헌

이근직, 2006, 『新羅 王陵의 起源과 變遷』, 영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관련원문 및 해석

第四十六 文聖王 [金氏 名慶膺 父神虎王 母眞從大后 妃炤明王后 己未十一月立 理十九年]
제46 문성왕 [김씨이며 이름은 경응이다. 어머니는 진종태후이며 왕비는 소명왕후이다.
기미(839) 11월에 즉위하여 19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