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의미

시장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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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에 반영된 시장의 사회사적 의미

"도시는 선(線)이다."라는 말이 있다. 산업사회의 도시 생활은 보이는 선과 보이지 않는 선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기와 상 · 하수도, 도시가스선과 유 · 무선의 전화선, 컴퓨터 통신망 등이 있지만 인구이동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도시의 선은 도로망이다.
도시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현실들을 이와 같이 늘어놓는 이유는 현대에 비해 지역간의 일상적인 인구이동이 거의 없었던 전통 농경사회의 특성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이다. 전통사회에서는 평소 마을 밖으로 멀리 외출해야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기근이나 전염병, 또는 무거운 세금을 못 이겨 유리(遊離)하는 농민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결코 일반화된 현상은 아니었으며 일상적인 일은 더욱 아니었다. 이러한 농민에게 시장은 이동의 기회를 제동하는 거의 유일한 요소였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해 두면 다음과 같은 속담들이 왜 생겼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거름 지고 나선다." 이것은 주관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경우를 말한다.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무릎에 망건을 씌운다." 이것은 남이 무엇을 하니까 덩달아 급히 서두는 경우를 말한다.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씨오쟁이 짊어지고 따라간다." 라는 속담은 짚을 엮어 만든 씨오쟁이는 다음 해에 뿌릴 씨앗을 담아놓는 그릇이기 때문에 농사꾼에게는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다. 평소에 농민이 남을 따라 나설 일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속담들에서 따라나서는 장소로 장이 등장하는 것은 농민의 생활경험을 잘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양반 못된 것이 장에 가 호령한다." 이것은 못된 사람이 만만한 데 가서 잘난 체하는 것을 풍자한 속담이다. "중놈 장에 가서 성내기."는 아무 반응이 없는 데 가서 기를 올려 큰소리치는 자를 꼬집어서 하는 말이다. '읍에서 매맞고 장거리에서 눈 흘기는' 것은 엉뚱한 데다 화풀이하는 사람을 빗댄 말이다. 시장은 일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일시에 모였다 흩어지는 특별한 공간이므로 이러한 일들이,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유발하는 인간심리가 발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공간은 경우에 따라서는 체면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익명성(匿名性)을 갖는 공간이 된다. 체면을 버리면 못할 것이 없으므로 "밥빌어 먹기는 장타령이 제일이라."는 속담은 바로 장만이 갖는 이와 같은 특성에서 비롯된 말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시장의 익명성은 시장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타산적(打算的)으로 만들고 급기야는 서로 속이고 속는 경험까지 하게 한다. 장에 나온 농민은 "이 장 떡이 큰가 저 장 떡이 큰가." 하고 마음 속으로 저울질해 본다. "후 장 떡이 클지 작을지 누가 아나." 하면서 거래를 망설이다가도 "후 장에 쇠다리 먹으려고 이 장에 개다리 안 먹을까." 하면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득을 좇는다. 마을 생활에서는 "좋은 게 좋은 거."였지만 시장에 나오면 상황은 달라지는 것이다.
그것뿐인가. 눈에 보이는 데만 좋게 꾸미는 "장사 웃덮기"에 마음의 경계를 늦추어서도 안 된다. 그러는 가운데 장사는 속여야 된다라는 통념도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순(舜)임금 독장사"라는 말이 있다. 어진 순임금도 장사를 하면 어쩔 수 없이 남을 속이게 된다는 뜻이다.
농민의 사회적 성격을 말할 때 간혹 이중성이 지적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곧 경험의 이중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시골장에서는 파는 사람이 곧 사는 사람이고 사는 사람이 곧 파는 사람이라고 했듯이 대부분의 농민은 반(半)상인의 자격으로 시장에 나간다. 땀 흘린 대가 그대로를 얻는 농사일과 간혹 남을 속여가며 소득을 얻게 되는 시장에서의 장사는 하나의 기준으로 동시에 수용할 수 없는 극히 상반된 경험인 것이다.
장날은 농민의 휴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다녀와야 하는 수고를 생각하면 이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오히려 이 말은 주기적으로 오는 장날이 매일 반복되는 농민의 단조로운 생활에 변화를 줄 뿐 아니라 시간 개념을 부여하는 유일한 계기가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 이것은 뜻하지 않은 일을 때마침 만난 경우에 쓰는 말이다. "늦은 밥 먹고 파장(罷場) 간다." 이것은 준비하다 때를 놓쳐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망건 쓰자 파장된다."는 속담도 마찬가지의 뜻이다. "볼 장 다 봤다."는 말에는 다 끝났다, 또는 실패했다는 체념이 담겨 있다. "파장에 수수엿이야.", "파장에 엿가락 내듯." 등은 일을 함부로 처리하는 경우를 빗댄 말이다. 파장될 무렵에는 판매자나 구매자나 모두 마음이 바빠지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다지 시간에 쫓길 일이 없는 농촌의 일상생활보다는 가끔씩 나가보는 시장에서 겪는 이러한 경험들이 시간과 관련된 농민들의 상황을 표현하기에는 더욱 적절한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삼전시호 개인신(三傳市虎 皆人信)"이라는 말이 있다. 『전국책(戰國策)』에 수록된 이 말은 시장에서 나온 이야기는 세 사람만 전해도 모두 믿을 수가 있다는 뜻이다.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을 "세물전(貰物廛)영감"이라고 한다. 각종 경조사(慶弔事) 때 사기그릇이나 소반 등을 빌려주는 곳이 세물전이므로 이곳에 앉아 있으면 사사로운 남의 집 사정까지도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많은 정보가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사람과 많은 정보가 모이는 시장 또한 갖가지 소문을 내기도 하고 재빨리 전파시키기도 한다. 시장을 출입하는 농민은 시장이 갖는 이러한 기능으로 인해 평소에는 접할 수 없던 외부세계에 대한 많은 정보와 소문을 듣게 된다. 시장에서 경험하는 사건들 뿐 아니라 소문을 통한 간접경험의 내용들은 자신을 얽어맨 봉건적 굴레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여 온 농민들에게 계급의식, 특히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물건을 팔러 나왔다가 낭패를 당하는 가난한 양반의 모습을 보고 신분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금씩 헐게 되고, 주인집을 도망쳐 나온 머슴의 무용담을 듣고 신분해방의 꿈을 키우게 된다. 그러므로 엄격한 신분제 사회일수록 지배층들은 시장을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시장은 사회변동의 현장이다.

19세기 후반 이후 유민화(流民化)가 가속되면서 곳곳에서 화적집단이 일어나 1900년 경에는 활빈당이라는 전국적인 조직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후 활빈당은 화적으로 계속 남기도 하였지만 일제 침략 이후에는 의병으로 변신하기도 하였다.
경제침략으로 시작된 일제의 침략은 식민화 이전부터 진행되었는바, 개항(開港)이 바로 그 기점이 된다. 개항장이 증설되면서 이것이 소비지역의 시장과 직접 연결되는 등 유통구조를 변화시켰고 지역을 포괄하는 범위, 즉 시장권을 확대해가면서 내륙의 시장까지 잠식해 들어갔다. 또한 면제품을 비롯한 각종 공산품이 유입되어 기존의 수공업이 위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쌀이 대량 유출됨으로써 농업생산이 미곡 위주로 변해가는 등 기존의 분업체계가 왜곡되어 전통시장의 상품집산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개항은 우리나라가 세계 자본주의체계에 편입되어 세계시장의 주변부에 속하게 되는 대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개항기를 맞아 개항장은 급격히 도시화되었다. 그러나 기존 도시는 이렇다 할 발전이 없었으며 오히려 이전보다 쇠퇴하기도 했다. 이후 발달된 상설시장은 일본인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형성된 경우가 많았고, 전체적으로는 상품경제가 발달하고 도시화가 진정되면서 자연히 시장이 상설화되어 갔다.
개항기 이후 일본 상인들에 의한 침탈이 심해지면서 조선 상인들의 일제에 대한 저항도 시작되었다. 1905년의 을사조약은 이들의 저항을 민족저항으로 승화시겼다. 을사조약에 항의하여 민영환이 자결하자 흥분한 종로 상인들은 일제히 곡을 하며 철시(撤市)를 감행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그후 3·1 운동 때도 나타났다. 특히 철시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서 자주 행해졌다.
요즘의 농촌시장은 어떠한가. 물론 시대가 바뀌고 사는 방식이 달라졌으니 과거의 시장 모습을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비록 몰락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시골장은 검약이 몸에 밴 농민들과 영세한 상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생활의 일부다.
시골장은 여전히 지역권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시장 주변에 농업협동조합 등 금융시설, 초 · 중 · 고등학교 등 교육시설, 병원 · 약방 등 각종 의료 · 위생시설, 행정관청 · 경찰서 · 파출소 · 우체국 등 관공서, 다방 · 사진관 · 양복점 · 양장점 · 수예점 등 상설점포들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이것은 시장 출입의 목적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사정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시골장의 소멸 또는 폐지는 단순히 경제적 거래의 중단 만이 아니라 농민들간, 마을간 커뮤니케이션을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골장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규정짓는 것은 그 장의 주된 수요자인 농민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경제적인 효율성 만이 가치판단의 유일한 가능자가 되어버린 세대에서 농민과 영세상인, 그리고 그들의 삶터의 하나인 장터는 언제 어떻게 자기의 공간에서 밀려날 지 모른다.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운명이 자신들의 생각과 희망과는 관계없이 외부에 존재하는 힘있는 자들의 이익을 위해 결정될 것이라는 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