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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정치/경제/생업 > 시장이란 > 시장의 구성

장시를 순회하던 장돌뱅이-행상(行商)

조선왕조는 지방을 무대로 활동하던 행상들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파악하고 있다. 하나는 육로를 주로 이용하며 상품을 매매하는 육상(陸商)이었고, 다른 하나는 선박을 이용해 교역활동을 하던 선상(船商)이었다.
행상은 그 종류에 따라 취급하는 상품의 종류와 양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대부분 소상인으로 활동했던 육상들은 물품을 등에 지거나 우마에 싣고 다니며 매매했기 때문에, 대개 크기가 작거나 무게가 가벼운 것들이었다. 즉 의복류 · 짚신 · 가죽신 · 갓끈 · 빗 · 바늘 · 분가루 · 농기구 등 농촌사회의 필수품이 주를 이루었다.
선상들은 육상들이 취급하는 물품을 물론이고 비교적 무거운 상품도 대량으로 교역했다. 그러한 물품 중에는 곡물이나 수산물 · 소금 등이 대표적이었다.
중종대의 기록에는 이들 선상이 전라 · 충청도 등지의 곡물을 서울로 운반해 와서 판매하고 있는데, 이들에 의해 곡물가가 오르거나 내린다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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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장수] 닭을 어리째 등에 지고 농가를 다니면서 사고 파는 닭장수도 장꾼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규모가 영세하여 부업의 수준에 물렀다. 한말 때의 사진. 『시장의 사회사』, 정승모.

좌고(坐賈)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상인은 앉아서 파는 좌고(坐賈)와 돌아다니며 파는 행상(行商)으로 나뉜다. 좌고는 좌상(坐商)이라고도 하며 좌고와 행상을 합하여 상고(商賈)라고 한다.
법 규정에 의하면 좌고는 공랑 한 칸을 점유하고 매달 그믐마다 저화(楮貨) 네 장, 그리고 봄 가을로 각각 저화 20장을 세금으로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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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판상인] 좌판 위에 인두 · 가위 · 손거울 · 빗 등 가정용 연모를 벌여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좌판상인. 한말 때의 사진.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서문당.

상단(商團)으로 성장한 보부상(褓負商)

보부상(褓負商)은 보상과 부상을 합한 말이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장돌뱅이 · 장돌림 · 장꾼 · 봇짐장수 · 등짐장수 · 황아장수 등 여러가지 형태로 불리던 자들이다. 이들은 대개 5일마다 열리는 장을 순회하며 상품을 매매하던 시장상인들이었다. 보부상은 농업생산자, 가내수공업자, 시장상인 등과 소비자 사이에서 경제적 교환을 매개하며 상품유통을 활성화시켰다. 상설점포가 거의 없는 지방의 장시에서 보부상이 상품유통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도시의 시장과 농촌의 연결도 이들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보상과 부상은 서로 취급하는 물품이 달랐고, 그에 따라 상대하는 손님들도 달랐기 때문에 같은 시장을 함께 다니더라도 서로 간에 경쟁으로 인한 큰 충돌은 별로 없었다.
보상은 봇짐장수 또는 황아장수로 불리던 자들로, 이들이 주로 취급하는 상품은 대개 부피가 적고 가벼우며, 정치(精緻)하고 비교적 값이 비싼 것들이었다. 즉, 금 · 은 · 동의 각종 장식품과, 인삼 · 피혁 · 주단 · 포목 · 조바위 · 남바위 · 염낭 · 분통 · 빗 · 비녀 · 면화 · 놋그릇 · 담뱃대 · 칼 · 종이 · 붓 · 먹 등이었다.
이에 비해 부상들은 등짐장수 또는 돌짐장수로 부렸고, 비교적 질량이 크고 값이 싼 일용 물품들인 목기 · 토기 · 담배 · 누룩 · 어물 · 소금 · 미역 · 꿀 · 짚신 · 솥 · 죽물(竹物) 등을 취급했다. 이와 같이 보상의 상품은 기술상으로 발달된 세공품이나 고가였고, 부상이 취급했던 것은 가내수공업품과 해산물 등이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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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짐장수] 보부상 중에 보상의 경우는 대개 집이 있어 가족과 떨어져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았으나 부상은 장가를 들지 않아 식솔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혹은 가족이 있더라도 일정한 집이 없어 처자를 대동하고 다녔다. 나카무라 긴조, 『조선풍속화보』(1910).『시장의 사회사』, 정승모.

객주(客主)

17세기 이후 장시가 전국적으로 개설되고 상인의 활동이 활성화되면서 상업중심지에는 전문 상업기관이나 금융기관이 생겨났다. 즉, 사람이 많이 왕래하고 상품거래가 활성화 · 대규모화 되면서 물품보관이나 물품거래에 중개역활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역할을 한 것이 객주나 여각이었다.
객주의 주요업무는 위탁매매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음식을 팔기도 하고 잠자리를 제공하는가 하면, 팔다 남은 물건을 보관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자금을 빌려주는 등 상업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객주는 그들이 취급하는 물품의 종류에 따라 청과객주 · 수산물객주 · 곡물객주 · 약재객주 · 지물객주 · 피물객주로 구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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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 객주는 각처에서 모여드는 객상들에게 거처할 곳을 제공하고 물건을 보관하는 일, 매매를 성립시키는 일 등을 업으로 하는 상인이다.『시장의 사회사』, 정승모.

<종류에 따라 구분>

구분 형태

물산(物産)객주

객주라고 하면 대개 이것을 지칭한다. 위탁매매를 비롯하여 숙박 · 금융 · 도매 · 창고 · 운반 등 상품거래의 전반에 걸친 업무에 관여

만상(灣商)객주

평안도 의주에서 활동하던 상인으로 주로 중국산의 직물이나 약재등을 취급했다. 청나라의 상품을 주로 취급했기 때문에 청선객주(淸船客主)라고도 한다.

보상(褓商)객주

주로 보부상을 상대로 내륙에서 활동하는 객주다. 즉 봇짐장수로 일컬어지는 보상과 등짐장수로 부르는 부상들과 연결하여 상품매매에 참여했다.

보행(步行)객주

일반 보행자에 대한 숙박 만을 본업으로 하는 객주다. 보행객주의 시설은 비교적 고급이어서 양반 등 상류층이 이용했다. 반면에 일반 서민들이 주로 이용했던 곳은 주막이나 점막이었다. 이곳에서는 음식과 술을 팔 뿐만 아니라 숙박업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전(換錢)객주

금융업을 전문으로 하는 객주다. 다른 객주에서도 이 업무를 담당하지만 환전객주는 금융의 주선만을 전업으로 했다. 따라서 자본 규모에 있어서는 객주들 가운데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

무시로[無時 - ]객주

말 그대로 언제나, 아무때나 사용되는 가정일용품을 다루는 객주다. 취급품목은 조리 · 솥 · 바가지 · 수수비 · 홍두께 · 석쇠 · 삼태기 · 고무래 · 절구 · 맷방석 · 싸리채반 등 당시 가정부인들의 일용품이 대부분이었다

여각(旅閣)

여각은 각 지방의 포구와 상업중심지에서 곡물 · 어염 · 수산물 등의 위탁판매 또는 매입을 주업으로 했고, 여관업을 겸하기도 했다. 여각과 객주를 구분하는 뚜렷한 기준은 없다. 대개 모든 상품을 취급하는 것을 객주, 소금과 해산물을 취급하는 것을 여각으로 구분하거나, 비교적 많은 자본을 가진 것을 여각이라 했지만, 이 또한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각은 대개 물품을 장기보관할 수 있는 큰 창고를 소유하고 있었고, 소나 말을 재울 수 있는 마방(馬房)을 설치한 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마포 · 용산 · 서강 · 서빙고 · 뚝섬 · 한남동 등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주로 해산물과 목재, 곡물들을 취급했다.
한편 동대문에서 종로에 이르는 지역 일대의 여각을 동창여각(東倉旅閣)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사과 · 배 · 밤 · 잣 등 과일을 주로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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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창(西倉)의 여각] 여각(旅閣)은 상인들의 숙소라는 의미로도 쓰였다. 곡물, 어염, 수산물 등의 위탁판매 또는 매입을 업으로 한다. 『시장의 사회사』, 정승모.

거간(居間)

객주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위탁판매다. 그런데 그 위탁판매 업무를 실지로 담당하는 자들은 거간이었다. 거간은 타인의 거래를 매개하는 것으로 업을 삼고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물품의 거래 뿐만 아니라 토지 · 가옥의 매매를 비롯하여 대차(貸借) · 전당(典當) 등의 매개도 했다. 거간은 그들이 주로 다루는 물품에 따라 구분되기도 했다. 가옥이나 토지 등의 거래를 주선하던 부동산 거간, 중국에서 수입되던 물품을 중개하던 당화(唐貨)거간, 금전거래를 중개하던 환전거간 등이 있었다. 그리고 거간 중에서도 미곡 거래에 관여하는 미곡거간이 유명했고, 명칭도 감고(監考) · 두감고(斗監考) · 말감고 · 거매(居買) · 승간군(升看軍)등으로 불렸다.

여리꾼[餘利軍]

거간의 일종으로 서울의 시전과 같은 상점 주의를 서성거리다가 손님을 안내해 물건을 사게하고, 상점주인에게 얼마의 구문을 받았던 사람. 여리꾼은 각종 물품의 상점주인들과 손님유치와 물품판매에 대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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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점(鍮器店)] 가정용 유기(놋그릇류)와 곁들여 갓을 팔고 있다.『생활과 풍속』, 서문당.

도고(都賈)상인

조선후기 상품화폐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상인들이 자본과 자신들의 상술을 바탕으로 상품을 매점 또는 독점하는 형태가 확산되었다. 이와 같은 상행위를 하던 상인이나 상인조직을 도고(都賈)라고 했다. 도고상업은 조선후기 상업사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17세기 말 이래 대외무역의 증대, 금속화폐의 유통과 조세의 금납화, 그리고 상품경제의 발달 등을 배경으로 발생했다.

경강상인

조선시대에는 특히 세금으로 징수된 곡식들이 지정된 바닷길을 따라 서울로 운송되었는데, 처음에는 관에서 운영하는 관선(官船)이 이를 맡았으나 후기로 갈수록 민간선이 맡는 비율이 커졌다. 이것들은 거의 모두 경강선박(京江船舶), 즉 한강의 주요 나루터인 양화진, 서강, 마포, 용산, 노량진, 동작진, 한강진, 두모포, 뚝섬, 송파, 광장 등에 본거를 둔 배들이었다.
배의 임자는 원래 나룻배 주인에서 출발한 자들로 서울 지주들이 지방의 소작인들로부터 받은 소작미(小作米)를 운반하면서 차츰 자본을 축적하여 나중에는 정부가 세금으로 거둔 곡식, 즉 세곡(稅穀) 운반까지 맡게 된 것이다.
이들이 곧 경강상인(京江商人)인데, 이들에 대한 호칭은 다양하여 경강인(京江人), 경강민(京江民), 강주인(江主人), 경강상인(京江商人), 강상부민(江商富民), 선주인(船主人) 등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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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강상인] 1900년대 경강상인들이 마포나루에 옹기를 하치하는 모습. 『시장을 열지 못하게 하라』, 김대길.

의주상인

조선후기 대중국 무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상인들로 의주를 만부(灣俯)로 불렸기 때문에, 만상(灣商) · 유만(柳灣) · 만고(灣賈)라고도 했다. 의주는 지리적으로 국경에 위치하여 조선의 사신들이 본국을 떠나는 곳이며, 동시에 중국 사신이 우리 나라로 들어오는 관문이어서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그리고 명나라나 청나라와의 국제무역이 증대되는 17세기 이후 의주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상인들이 크게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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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무역] 무역로. 『시장을 열지 못하게 하라』, 김대길.

동래상인

일본과의 무역을 주도한 상인층은 왜학역관(倭學譯官)과 동래상인이었다. 조선은 왜학역관과 동래상인에게 대일무역을 담당하도록 했다. 그리고 양국 상인들의 밀거래 과정에서 국가기밀의 누설 등 여러 가지 폐단이 있어 왜관 한 곳으로 거래장소를 한정시켰다. 그리고 왜관 중에서도 개시대청(開市大廳)이라는 곳으로 장소를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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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왜관도] 왜관은 조선시대 일본인이 통상을 하던 무역처. 이곳은 숙박처와 접대처의 기능도 함게 지니고 있었다. 『시장을 열지 못하게 하라』, 김대길.

개성상인

개성사람들의 상당수는 조선왕조의 개창과 더불어 정계에서 소외되면서 고려왕조 이래의 상업전통을 이어 전업적 대상인으로서 전국을 무대로 활동했다.
이익은 개성사람이 상업에 많이 투신하게 된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 그곳이 지리적으로 서울과 가까우면서 서쪽으로 중국무역과 연결될 수 있었던 점, 둘째, 조선왕조 건국 후 개성인들은 이에 불복했으므로 조선왕조 당국에서도 이들을 등용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그곳 사대부의 후예들이 학문을 버리고 상업에 종사한 점 등을 들었다.
상업에 종사하는 개성인들 모두가 유생출신이나 그 후예들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국내의 어느 상인층보다 지식을 갖춘 상인층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상술이 뛰어났고, 따라서 상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경영방식을 개발해갔으며,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治簿法)이라는 특징 있는 복식부기를 발명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이 부기법은 우리 나라 상인들의 오랜 기간동안 경험을 통해 창안하여 전수되어온 고유의 부기관행이었다. 이것은 송도사개치부법 또는 개성부기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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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상인] 전국적인 지점망 송방(松房)으로 조직된 개성상인.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서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