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품/거래관행

물품/거래관행

분류 정치/경제/생업 > 시장이란 > 시장의 구성

조선전기에는 대개 자신의 집에서 필요한 물품을 재배하고 그것을 소비하고 난 뒤에 남은 것이 있으면 시장에 내다파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농업생산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 보급되고 유통경제가 발달하면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는 소비를 위한 것이 아니라, 판매를 목적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상업적 농업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전국적으로 이름난 농작물 생산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중에 진안(鎭安)의 연초, 전주의 생강, 임천 · 한산의 저포, 안동 · 예안의 용수전(龍鬚田) 등이 부자들에 의해 이익 독점의 바탕이 된다고 했다. 이외에 특정작물의 재배지로 유명한 곳은 경성 · 개성 · 수원 등 대도시 부근의 채소, 강진의 감저(甘藷 : 고구마), 개성 · 강계의 인삼, 경상 · 전라도 지방과 공주 · 황간(黃澗) · 회덕(懷德) · 황주(黃州) 등지의 면화가 이름난 것들이었다
『임원경제지』에는 전국 각 군현의 시장 가운데 대표적인 한두 곳을 선정하여 그곳에서 거래되는 주요 물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모든 시장에서의 거래상황은 아니라 하더라도, 19세기 초 시장에서의 상품거래 윤곽을 파악 할 수 있어 참고가 된다.

<주요 거래 물품의 시장 수>

구분 경기 호서 호남 영남 관동 해서 관서 관북

시장 수
(A)

92
34

157
59(6)

187
55(2)

269
72(1)

51
26

109
23

145
42

42
14

1052
325(9)



모맥

34
6
6

21
14
8

55
24
19

70
55
55

11
-
-

23
22
22

41
39
39

4
5
11

259
265
160

면화
면호
마포
저포
명주

5
32
20
-
-

11
10
9
6
2

28
40
23
19
8

32
68
49
14
14

6
24
21
-
8

19
23
15
3
5

32
42
-
1
9

2
14
13
-
-

135
253
150
43
46

어염
우독
계돈
연초

27
20
5
18

30
13
-
23

31
18
-
15

67
55
14
45

20
11
-
4

21
23
4
22

39
32
32
41

14
12
2
13

249
184
57
181

철물
부정
유기
지지
자기
토기
목물

9
5
4
2
-
-
11

5
-
2
1
-
-
3

15
6
4
19
17
31
11

16
7
26
18
25
25
16

2
-
-
3
-
1
-

3
3
6
1
8
10
8

41
-
35
3
-
-
36

5
2
4
-
-
-
7

96
23
81
47
50
67
42

*(A)는 한 지역에 2개의 장시에서 거래물품이 적혀 있는 곳이다.

곡물류의 상품화

농촌에서 가장 쉽게 상품화할 수 있었던 것 중의 하나가 곡물이었다. 곡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쌀이었고, 콩· 보리 · 조 등도 상품작물로 재배되었다. 쌀은 말할 것도 없고, 콩은 부식물로서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고, 보리는 묵은 곡물이 거의 다 소비될 때 쯤에 생산되는 데다 지역에 따라 이모작이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이앙법이 보급과 더불어 18세기 이후에 농민들이 상품화를 위해 재배하는 미곡량은 점차 증가했다. 쌀은 다른 곡물에 비해 시장가격이 높았기 때문에, 농민들은 수리관개공사를 하여 밭을 논으로 바꾸는 것이 성행하기도 했다.

직물류의 상품화

직물류는 상품성에 있어서 곡물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직물류에서는 면포 · 마포 · 명주 · 저포 등의 생산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면포는 대다수 민중의 일상생활에서 주된 의류로 이용되었다. 섬유작물 재배는 곡물생산과 함께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부문의 하나였다. 그것은 농촌의 부업적인 수공업으로서뿐만 아니라 세 가운데 포납을 해야 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면포는 상품화의 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농민들 사이에서도 선호하는 품목이었다. 다산 정약용도 목면을 재배하는 것은 오곡보다 이익이 배나 된다고 할 정도로 수익성이 높았다.
면화재배의 중심지인 삼남지방에서 생산되는 전주산 완목, 경상도 진주산 면포인 진주목, 전라도 강진에서 생산되는 면포인 강진목 등은 모두 면화밭 경영을 통해 생산된 것이다.

명주가 주로 부우층에 의해 소비되는 것이었지만, 그 생산과 상품화는 이미 16세기경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중종대에 중국에서 사라능단과 같은 고급 비단이 부상대고들의 사무역품으로 유입되면서 사치풍조가 유행했고, 민간에서도 명주의 사용이 확산되고 있었다. 그리고 대일무역에 있어서도 명주가 지불수단으로 사용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도시근교에서 채소재배

조선후기 도시근교에서 재배되던 채소도 상업성이 매우 높았다. 상업도시들이 형성 · 발전하면서 도시주민들에게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거래관행

조선시대 중개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양민으로서 재산을 가진 자가 중개인이 되려면 해당 관청에 중개업 허가문서를 받아야 했다. 관의 허가를 받지 않고 거래를 중개하다가 적발되면 곤장 60대를 맞고 받은 구전을 모두 몰수당했다.

또 저울 등 각종 도량형기를 규정대로 만들지 않는 관원도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은 규범적인 법의 테두리를 강조한 몇몇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매우 다양한 거래관행에 따라 상거래가 이루어졌다.

시장에서의 가격 흥정은 곧 시장의 본질적 기능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거래를 직업으로 하는 상인들에게는 고객을 상대로 유리한 흥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인들은 '마수걸이', 즉 그날의 첫 거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첫 거래의 내용을 가지고 그날의 운세를 점치므로 첫 거래가 기분 좋게 이루어지도록 노력한다. 첫 손님이 값을 깍거나 여자인 경우에는 그날의 재수를 안 좋게 보고, 상주나 임산부가 첫 손님이면 그날 장사가 잘 될것으로 기대한다.

고객에 대한서비스

소금을 사는 사람들은 으레 덤을 기대한다. 그래서 소금장수들은 애초부터 덤을 퍼주는 조그만 되를 따로 가지고 다닌다. 외상도 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한 방법이다. 예들들어 상인들은 눈금으로 외상값을 표시하는 '엄대'라는 막대기를 가지고 외상거래를 하였다.

가격을 정하는 방법

가격을 정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경매는 물건의 성격상 가격을 정할 수 없을 때나 팔 물건은 한정되어 있고 살 사람은 많을 때 이루어진다. 우리 나라에서는 갑오경장 이후에 '공박(公拍)'이라는 용어가 생겼는데, 이는 한 번에 값을 25원씩 올려 부르는 경매 방식을 말한다. 두 가지 이상의 물건 값을 한꺼번에 셈하는 '얼러치기', 한꺼번에 통째로 계산하는 '통거리' 또는 '도거리', 값을 여러 차례 나누어 받는 '드림셈', 쌍방간에 사고 팔면서 차액만 지불하는 '덧두리' 또는 '에낌', 팔다 남은 물건을 싸게 떨어 파는 '떨이' 등은 오래 전부터 관행되어온 셈의 방식들이다.

시장가격

시장가격은 같은 날에도 일정하지가 않아, 값이 가장 비쌀 때 사는 것을 '상투 잡았다'고 한다. 요즘은 주식시장에서 이러한 말을 들을 수 있다. 덩치가 큰 상품이 화매(和賣)되면, 즉 서로 군말 없이 흥정이 잘 이루어지면 판 사람이나 산 사람이 술대접을 하기도 한다. 이것을 '성애'라고 하며 이때 마시는 술을 '성앳술'이라고 한다.

흥정을 유리하게 하는 수법

흥정을 유리하게 하려는 상인들의 수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되내기'란 팔 물건을 좋게 또는 많게 보이도록 포장하는 수법이다. 구매자가 이것을 잘 살펴보지 않고 사면 바가지를 쓰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를 '솟보았다'고 한다. '담타기'는 물건을 구입할 때 입은 손해를 구매자에게 그대로 씌우는 것이다. '대봉가치'는 셈할 돈이나 물건을 다른 것으로 대신 채워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