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가토

타로가토

[ Tárogató ]

요약 타로가토는 헝가리의 민속 관악기이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타로가토가 있는데, 첫 번째는 16세기에 터키인들이 헝가리로 유입한 것으로, 원뿔형의 관을 지닌 겹리드 악기이다. 음량이 크고 음색이 거칠어 주로 군악대에 편성되었고, 17세기와 18세기에 큰 인기를 얻으며 헝가리를 상징하는 악기로 자리매김했으나 그 이후 사라졌다. 두 번째는 19세기 말, 타로가토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에서 탄생한 것으로, 원뿔형의 관에 키워크가 장착된 홑리드 악기이다. 대표적인 제작자로 부다페스트의 야노시 스토바서, 바츨라프 요제프 스쿤다 등이 있다.
타로가토

타로가토

분류 관악기 > 목관악기
호른보스텔-작스 분류 공기울림악기(Aerophone, 氣鳴樂器)
주요 사용 지역 헝가리
주요 사용 명칭 Tárogató, Töröksíp(헝가리어), Taragot, Torogoatã(루마니아어), Turkish pipe(영어)

1. 타로가토

타로가토(Tárogató)는 헝가리의 전통 겹리드 목관악기이다. 음량이 크고 음색이 거칠고 날카로워 주로 전쟁터에서 신호악기로 사용되었다. 타로가토의 몸체는 원뿔형이며, 관의 앞부분에 여섯 개에서 여덟 개의 지공이 있고, 뒷부분에 엄지손가락 구멍이 있다. 나팔꽃 모양의 벨에는 일곱 개의 벤트 홀(vent holes)이 있다.

타로가토를 연주하는 사람

타로가토를 연주하는 사람

고대 그리스의 아울로스(aulos), 이집트의 미즈마르(mizmār), 페르시아의 (surnay) 등 타로가토와 유사한 겹리드 관악기는 전세계 여러 지역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독일 태생의 미국 음악학자인 쿠르트 작스(Curt Sachs, 1881~1959)는 저서 『Geist und Werden der Musikinstrumente』(1929)에서 타로가토를 아시아와 근동 지역에서 불었던 겹리드 목관악기들과 함께 “Kegeloboe”(원뿔형 관의 겹리드 관악기)로 분류했다.

두 대의 타로가토(a와 b)와 터키의 주르나(c)

두 대의 타로가토(a와 b)와 터키의 주르나(c)

타로가토는 “투룩십”(töröksíp)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터키식의” 혹은 “터키의”를 의미하는 “투룩”(török)과 “피리”를 의미하는 “십”(síp)을 결합한 것으로 “터키의 피리”라는 뜻이다. 타로가토는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과 같이,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를 지배했던 16세기경에 터키인들이 중부 유럽으로 유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터키의 전통 겹리드 악기인 (zurna)는 1526년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를 침공했던 당시, , 타악기 (davul)과 함께 군악대에 편성되어 활약했는데, 악기의 외형이 타로가토와 매우 흡사하다.

터키의 주르나

터키의 주르나

오스만 제국의 군악대

오스만 제국의 군악대 『축제의 책』(1720)에 수록된 세밀화, 이스탄불 톱카프 궁 소장

타로가토란 악기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1533년 네덜란드의 학자인 요하네스 무르멜리우스(Johannes Murmellius, 1480년경~1517년)가 쓴 라틴어 사전에서이다. 무르멜리우스는 타로가토를 샬마이(Schalmey)라 정의했는데, 샬마이란 (shawm)의 독일어 이름으로, 15세기와 16세기 유럽에서 불었던 겹리드 악기를 말한다.

페렌츠 라코치 2세 초상화

페렌츠 라코치 2세 초상화

타로가토가 헝가리를 상징하는 악기로 자리매김한 것은 헝가리인들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헝가리 통치를 반대하며 일으켰던 독립전쟁(1703~1711)을 통해서였다. 당시 헝가리의 귀족 페렌츠 라코치 2세(Rákóczi Ferenc II, 1676~1735)가 전쟁을 이끌었다. 이 시기에 “라코치 노래”(헝가리인들의 불행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억압을 가사로 한 노래들, “라코치 행진곡”이라고도 한다)가 특히 인기 있었는데, 타로가토는 이 노래들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독립전쟁 실패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는 헝가리의 상징과도 같은 타로가토의 사용을 금지했다. 타로가토를 모두 파괴했고, 악기 제작지와 제작에 필요한 모든 도구들을 불태웠다.

2. 타로가토의 복원과 모던 타로가토의 등장

1850년대 초, 타로가토가 다시 등장했다. 콘서트홀에서 타로가토를 연주하기도 했고, 음악 저널에는 헝가리 음악에 타로가토를 다시 편성해야 한다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타로가토에 대한 관심이 회복되면서, 헝가리의 악기 제작자들은 악기를 개량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을 했다. 전통 타로가토는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기에 음량이 너무 크고 음색도 거칠었기 때문이다. 이후 다양한 모양의 타로가토가 제작되었다. 한 예로, 1860년에 페스트(Pest)시의 악기 제작자 알베르트 스크립스키(Albert Skripsky, 1864년 사망)가 13개의 키(keys)가 부착된 타로가토를 제작했는데, 이 악기 역시 음색이 좋지 않아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다.

20세기에 제작된 타로가토 (야노스 스토와서 제작)

20세기에 제작된 타로가토 (야노스 스토와서 제작)

19세기 말, 서로 라이벌 관계였던 부다페스트의 두 악기 제작자가 클라리넷을 본 떠 개량한 타로가토를 선보였다. 먼저, 야노시 스토바서(János Stowasser, 1846~1923)가 1897년 9월 15일 특허권을 신청한 타로가토는 겹리드 대신 홑리드를 사용했다. 원뿔형의 관에는 아홉 개의 톤 홀(tone holes)이 있는데 반음계 연주에 대비해 여러 개의 키(keys)를 부착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1897년 9월 17일, 부다페스트의 악기 제작자 바츨라프 요제프 스쿤다(Vencel József Schunda)가 오케스트라에 편성될 수 있도록 타로가토를 개량하여 특허권을 신청했다. 이 악기 역시 홑리드를 사용했고, 원뿔형의 관에는 키워크(keywork)가 장착되어 있다. 나무로 제작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과도 매우 유사하다.

야노시 스토바서제작한 여러 종류의 타로가토

야노시 스토바서제작한 여러 종류의 타로가토

19세기 말에 등장한 이 타로가토는 이후 모던 타로가토로 자리잡았다. 20세기 초에는 수차례 오케스트라에도 편성되었는데, 무엇보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음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와 인연이 깊다. 타로가토는 1902년 3월에 있었던 <트리스탄과 이졸데> 3막 연주에 편성되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지휘자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1843~1916)가 타로가토를 선호하여 <트리스탄과 이졸데> 공연 시 이 악기를 종종 편성했고, 그 영향으로 파리와 브뤼셀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도 <트리스탄과 이졸데> 연주를 위하여 타로가토를 구입했다고 한다. 현재 타로가토는 헝가리와 루마니아 등에서 주로 민속 악기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 Zoltán Falvy. “Tárogató as Regional Instrument.” Studia Musicologica Academiae Scientiarum Hungaricae T.38 Fasc.3/4(1997): 361-370.
  • “Hungary (Hung. Magyarország).” (Grove Music Online).
  • “Sachs, Curt.” (Grove Music Online).
  • “Tarogato.”
  •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 “Tárogató (Hun. also töröksíp: ‘Turkish pipe’; Rom. taragot, torogoată).” (Grove Music Online).

관련이미지

타로가토

타로가토 출처: 파퓰러음악용어사전 & 클래식음악용어사전

연관목차

379/1344
타로가토 지금 읽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