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롬본의 역사 -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요약 트롬본(Trombone)은 15세기경에 처음 등장하여 17세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야외에서 팡파르를 울릴 때에는 크게 연주하기도 했다. 넓은 음역과 풍부한 표현력을 지니고 있어 교회에서 합창 성부를 보강하는 악기로 인기 있었고,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편성되어 지하 세계나 초자연적인 사건을 묘사했다. 당시 트롬본 전문 연주자들은 대부분 남성들이었고, 여성 연주자에 대한 기록 역시 매우 드물지만 남아 있다.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의 트롬본은 색벗(Sackbut)이라고도 부른다.

색벗

1. 르네상스 시대

트롬본은 15세기경 처음 등장했다. 당시 트롬본에는 두 개의 U자형 슬라이드가 장착되어 있어, 연주자가 관의 길이를 조절하여 음계를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다.

초기 트롬본을 일컫는 용어는 나라마다 달랐다. 우선 이탈리아에서는 ‘trombone’, 독일어권 나라에서는 ‘Posaune’라고 불렀는데, 둘 다 ‘큰 트럼펫’을 의미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saquebute’, 스페인에서는 ‘sacabuche’, 영국에서는 ‘Sackbut’이라 명명했다. 이 용어들은 ‘밀다’를 의미하는 ‘sac’와 ‘당기다’를 의미하는 ‘bu’를 결합한 것으로, 트롬본을 연주할 때 슬라이드를 움직이는 모습을 묘사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 외, 스코틀랜드에서는 ‘draucht trumpet’(16세기 초에만 이 용어가 등장한다)으로, 라틴어로는 ‘tuba ductilis’라고 명명했다.

필리피노 리피(Filippino Lippi)의 프레스코화 ≪The Assumption of the Virgin≫(1488~93)
트롬본을 상세하게 묘사한 최초의 그림이다.
왼쪽은 트롬본을 연주하는 천사를 확대한 그림 일부이고, 오른쪽은 그림 전체이다.

트롬본이 발명된 시기와 지역이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15세기경 유럽 북부(독일과 플랑드르 지역)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슬라이드 트럼펫(Slide trumpet)이 트롬본의 직접적인 전신이라 여긴다.

초기 트롬본은 모던 트롬본에 비해 관(tubing)의 지름이 더 작고, 두께가 더 얇으며, 벨(bell)의 크기도 더 작았다. 수분을 배출하는 워터 키(water key)는 없었다. 마우스피스(mouthpiece)는 컵의 깊이가 더 얕았고, 림(rim) 부분이 더 납작했다. 현존하는 최초의 트롬본은 뉘른베르크의 악기 제작자 에라스무스 슈니처(Erasmus Schnitzer, 1566년 사망)가 1551년에 제작한 것이다. 뉘른베르크는 16세기와 17세기 초 트롬본 제작의 중심지였고, 슈니처 가문(Schnitzer family)은 당시 가장 명망 있는 악기 제작 가문 중 하나였다.

왼쪽부터 알토, 테너, 베이스 색벗

미하엘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는 저서 『음악대전』(Syntagma musicum, 1619)에서 알토 트롬본, 테너 트롬본, 베이스 트롬본, 더블베이스 트롬본 등 네 종류의 트롬본을 언급했다. 테너 트롬본과 베이스 트롬본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테너 트롬본이 가장 널리 사용되었고, 알토 트롬본은 드물게, 더블베이스 트롬본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17세기 후반경에는 소프라노 트롬본이 제작되었으나,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다.

미하엘 프레토리우스의 『음악대전』에 수록된 트롬본 <출처: Wikimedia>

트롬본의 슬라이드 포지션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음악이론가 아우렐리오 비르질리아노(Aurelio Virgiliano, 1540경~1600경)의 논문 <Il Dolcimelo>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트롬본은 네 개의 슬라이드 포지션을 사용했고, 온음계를 주로 연주했다.

아우렐리오 비르질리아노의 Il Dolcimelo>에 수록된 트롬본 포지션 관련 도표 <출처: Wikipedia>

트롬본 전문 연주자들은 타운 밴드에 소속되거나, 궁정과 교회에 고용되었고, 세속음악과 종교음악을 모두 연주했다.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의 도시에는 관악기로 이뤄진 타운 밴드가 존재했다. 독일의 슈타트파이퍼(Stadtpfeifer), 이탈리아의 피파리(Piffari),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웨이츠(Waits) 등이다. 15세기경에는 숌(Shawm) 연주자 두 명과 슬라이드 트럼펫(slide trumpet) 혹은 색벗 연주자 한 명 등 세 명의 연주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후 그 규모가 점차 커졌다.

하인리히 알데그레버(Heinrich Aldegrever(1502~1555년 이후)의 ≪세 명의 트롬본 연주자들≫(1538) <출처: Wikimedia>

또한 트롬본 연주자들에게 급료를 지불했다는 기록을 통해 이들이 궁정과 교회에 고용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는데, 트롬본 연주자들은 보수를 많이 받는 편이었고 음악가로서의 지위도 높았을 것이라 추정된다.

타운 밴드 음악가들 <출처: Wikimedia>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작곡가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 1532/33~1585), 조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 1554/57~1612) 등은 트롬본 고유의 주법을 활용한 최초의 작곡가들이다. 르네상스 시대 트롬본은 주로 교회 음악 연주에 사용되었고, 이외 야외에서 춤 반주 악기로도 사용되었다.

2. 바로크 시대

바로크 시대에 트롬본은 매우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폭넓은 다이내믹을 구사했는데, 악기를 크게 불어 시끄럽고 날카로운 소리를 낼 수도 있었고, 조용하게 불어 부드럽고 명료한 소리를 낼 수도 있었다. 숌(Shawm), 트럼펫(Trumpet) 등과 함께 팡파르를 울리거나 야외에서 연주할 때에는 큰 소리로 연주했고, 코르넷(Cornett)과 함께 교회나 실내에서 연주할 때에는 조용하게 연주했다. 트롬본은 특히 사람의 목소리와 어울렸기 때문에, 교회에서 합창을 할 때 성부를 중복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트롬본은 극음악에도 편성되기 시작했는데, 주로 죽음, 지하 세계, 슬프고 어두운 감정 등과 결부되었다. 르네상스 후기와 바로크 초기에 활약한 이탈리아 작곡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는 오페라 <오르페오>(L’Orfeo, 1607)에서 트롬본에 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트롬본을 네다섯 대를 편성하여 지하 세계 신들의 음악을 연주하도록 한 것인데, 이후 트롬본은 어두운 측면을 표현하는 악기로 받아들여졌다.

독일 작곡가 하인리히 쉿츠(Heinrich Schütz, 1585~1672)는 <심포니에 사크레>(Symphoinae sacrae, 1629) 중 “내 아들 압살롬”(Fili mi Absalon)에서 트롬본 네 대를 편성했다. 이 작품에서도 트롬본은 죽음, 슬픔 등을 표현한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은 오라토리오 <사울>(Saul), <삼손>(Samson), <이집트의 이스라엘 사람들>(Israel in Egypt) 등에서 장례 행진 장면에 트롬본을 편성했다.

왼쪽부터 알토, 테너, 베이스 색벗

17세기 말부터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트롬본의 인기가 크게 하락했다. 코르넷과 트롬본으로 성악 성부를 중복 연주하는 관습도 차차 사라지고, 새롭게 등장한 현악기 음향을 보다 선호하게 되면서, 트롬본은 유행에 뒤쳐진 악기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독일어권 지역에서는 트롬본을 계속해서 연주했는데, 특히 비엔나의 경우 18세기에도 훌륭한 트롬본 연주자들이 활약했다.